'혹성탈출' 변칙 개봉 논란…영화계 '충격·분노'
제협 "상도의에 어긋나는 행위" 맹비난
배급사 "미국 개봉일과 맞춘 것" 억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이하 '혹성탈출')이 개봉일을 돌연 일주일 앞당긴 것과 관련해 영화계가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대규모 상영관을 점유할 할리우드 대작이 개봉 계획을 변경함에 따라 비슷한 시기에 극장에 내걸릴 영화들이 영향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혹성탈출' 측은 "영화가 16일에 개봉할 계획이었으나 미국 개봉일에 맞춰 10일로 앞당겼다"고 4일 발표했다.
이 영화는 전작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11)의 속편으로 치명적인 바이러스 그 후 10년, 시저가 이끄는 유인원들이 지구를 점령한 가운데 멸종 위기 인류와 진화한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생존 전쟁을 그린다.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이 1편보다 더 업그레이드됐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올여름 최대 기대작 중 하나로 꼽혔다.
이에 다른 영화들은 '혹성탈출'을 피해서 개봉 전략을 짰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갑작스럽게 개봉일을 변경하자 개봉을 앞둔 중소 규모 영화사들은 이를 변칙 개봉으로 규정하며 반발했다. 변칙 개봉으로 인해 경쟁작들의 스크린 수가 축소될 뿐만 아니라 개봉 전략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는 이날 즉각 성명을 내고 '혹성탈출'의 변칙 개봉 중단을 촉구했다.
제협은 "충격을 넘어 분노"라며 "한국영화 제작사와 중소 영화사들이 깊은 혼란에 빠졌다"고 토로했다.
이어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갑작스러운 개봉 변경은 상도의에 맞지 않는다"며 "이는 영화 시장의 기본 질서를 혼란스럽게 한다"고 강조했다.
제협은 변칙 개봉은 국내 영화계의 배급 관행을 깨는 행위라고 맹비난했다. 영화는 제작에서 상영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노력, 비용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또 적지 않은 마케팅 비용을 들여 개봉일정을 잡는다.
이 때문에 배급사 및 제작사들을 수개월 또는 1년 전부터 배급하는 영화에 대한 라인업을 공유한다는 게 제협의 설명이다.
제협은 "관련 회사는 개봉 예정 영화의 라인업을 바탕으로 배급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른 영화의 후반 작업 및 광고비의 집행 등 막대한 경비를 조달하면서 배급을 준비한다"며 "만약 누군가 변칙적인 방법으로 개봉 계획을 변경할 경우, 배급계획에 대한 심각한 혼란이 빚어질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손실을 입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 '혹성탈출'의 변칙 개봉은 내가 먼저 살고 남을 죽이려 하는 이기적인 행위"라며 "이를 묵과할 경우 한국 영화 유통질서에 큰 위기가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외화 '사보타지'의 수입사인 메인타이틀픽쳐스의 이창언 대표도 공개 성명을 내고 변칙 개봉을 비난하고 나섰다.
이 대표는 "저뿐만 아니라 10일로 개봉을 확정한 다수의 영화사는 충격을 넘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며 "변칙 개봉은 영화시장의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하며 관객들에게 폭넓은 영화 선택의 기회를 앗아가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거대 자본의 논리로 중소 영화사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변칙 개봉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사보타지' 외에도 지난 2일 전야 개봉한 정우성 주연의 '신의 한 수'와 10일 개봉할 지성 주지훈 주연의 '좋은 친구들'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혹성탈출'의 배급사인 20세기 폭스코리아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20세기 폭스코리아는 "변칙 개봉은 아니다"라고 못 박은 뒤 "CG 작업이 많아서 심의 일정 등을 고려해 개봉일을 늦춰 잡았는데 심의가 지난 3일에 나와 개봉일을 앞당기게 됐다"고 해명했다.
이러한 변칙 개봉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2년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갑작스럽게 개봉일을 앞당겨 잡음을 낳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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