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EFA가 실제로 블래터 회장과 FIFA에 본격적으로 반기를 들고 나설 경우, 월드컵을 비롯한 FIFA가 주관하는 거의 모든 국제대회는 치명타를 입게 된다. ⓒ 게티이미지
국제축구연맹(FIFA) 제프 블래터(79·스위스) 회장이 5선에 성공했다.
블래터 회장은 30일(한국시각) 스위스 취리히 FIFA 본부서 열린 ‘제65회 FIFA 총회’에서 4년 임기의 회장에 당선됐다.
경쟁 후보 알리 빈 알 후세인(40) 요르단 왕자와의 선거 1차 투표에서 133-73으로 앞섰지만, 209개 회원국의 3분의 2를 넘는 140표 이상을 얻어야 당선되는 규정으로 무효 처리되어 2차 투표를 하게 됐다. 하지만 알리 왕자가 2차 투표를 앞두고 돌연 후보에서 사퇴, 블래터 회장의 당선이 확정됐다.
최근 미국연방수사국(FBI)이 뇌물 수수 혐의로 FIFA 간부 7명을 체포하면서 블래터 회장도 비리 의혹에 휩싸였지만 일단 연임에 성공했다. 이처럼 블래터 회장이 무리수라는 주위의 반대에도 5선에 성공했지만 그의 앞에 놓인 길은 어느 때보다 험난하다.
스위스 법무부에 따르면, 체포된 FIFA 간부들은 1억 달러(약 1100억원) 이상의 뇌물수수에 연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뇌물 수수 등의 비리 계획이 모의된 장소가 미국이었으며 돈도 미국 은행을 통해 오갔기 때문”이라는 명분으로 나선 미국의 칼끝이 향하고 있는 목표점이 블래터 회장이라는 사실이 문제다.
따라서 FIFA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지닌 모든 세력들로부터 FIFA 부패 스캔들의 몸통으로 지목받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4년의 임기를 제대로 채울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블래터 회장의 5선에 일찌감치 반기를 들고 있던 유럽축구연맹(UEFA)나 FIFA 안팎의 반(反) 블레터 세력들이 FIFA의 부패 스캔들 수사와 관련, 줄기차게 블래터 회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한편, 앞으로 FIFA에서 추진하는 여러 프로젝트에 제동을 걸고 나설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영국 축구협회 그렉 다이크 회장은 지난 27일 블래터 회장의 사퇴를 요구했고, 영국 위팅데일 문화·언론·체육부 장관도 이날 블래터 회장이 연임하면 FIFA 탈퇴도 고려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여기에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까지 나서 블레터 회장의 사임을 요구했다.
특히, UEFA 미셸 플라티니 회장은 29일 공식 기자회견에서 “블래터 회장이 연임에 성공하면 다음 달 베를린서 열리는 UEFA 총회서 FIFA와의 관계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할 계획”이라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둘 것이다. 잉글랜드 포함 유럽 국가들이 2018 러시아월드컵에 보이콧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열린 FIFA 회의에서 부패 혐의로 일부 FIFA 간부들이 체포된 것과 관련, 블래터 회장의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제 블레터 회장이 5선에 성공한 상황에서 UEFA와 UEFA 회원국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해진다. 플라티니 회장 말대로 유럽 국가들이 월드컵을 보이콧 할 경우 지금까지 봐 왔던 월드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 일각에서는 유럽이 빠진 월드컵을 ‘반쪽 짜리 월드컵’이라고 표현했지만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유럽이 빠진 월드컵은 사실상 월드컵이 아니다.
UEFA가 실제로 블래터 회장과 FIFA에 본격적으로 반기를 들고 나설 경우, 월드컵을 비롯한 FIFA가 주관하는 거의 모든 국제대회는 치명타를 입게 된다. 여기에 현재 블래터 회장에 칼을 겨누고 있는 미국을 위시한 북중미 지역이나 FIFA 정몽준 명예부회장을 위시한 다른 대륙의 반 블래터 세력까지 가세한다면 FIFA는 기능적으로 사실상 마비 사태에 빠질 수도 있다.
실제로 정몽준 FIFA 명예부회장은 이번 회장 선거 당일 “FIFA는 세계에서 가장 불신 받는 단체 중의 하나가 되어버렸다”며 “안타깝게도 FIFA의 부패는 구조적이고 뿌리가 깊다. 블래터 회장이 FIFA의 수장으로 지낸 기간 FIFA의 부패 문제는 더욱 심화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블래터 회장이 FIFA를 개혁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축구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블래터 회장이 사임하는 것 뿐”이라며 블래터 회장이 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사임할 것을 촉구했다.
블레터 회장이 5선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프리카와 같은 표가 많은 대륙 국가들의 지지 덕분이었지만 그가 실질적으로 가장 큰 협조를 얻어야 하는 유럽이 그에게서 완전히 등을 진 상태고 정몽준 명예부회장 같은 ‘막후 강자’가 공개적으로 사임을 촉구할 정도라면 블래터 회장이 FIFA의 수장으로서 앞으로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FIFA 부패 스캔들에 대한 국제적인 수사 움직임이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블래터 회장 임기 내에 지속적으로 FIFA 부패 문제는 불거질 것이고 그 때마다 블래터 회장의 이름이 오르내릴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블래터 회장이 미국이 됐든 스위스가 됐든 그 어느 국가의 사법 당국으로부터 소환조사를 받고 실질적인 부패 스캔들의 책임자로 지목될 경우 ‘식물 회장’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FIFA의 회장을 뽑는 선거전은 끝이 났고, 그 전쟁의 승자는 블래터 회장이었다. 하지만 블래터 회장이 치러야 할 진짜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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