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리 주연의 '문영'은 카메라로 세상을 담는 말 없는 소녀 문영의 이야기를 담았다.ⓒKT&G 상상마당
배우의 존재감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지난해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로 최고 라이징 스타가 된 김태리가 기어이 데뷔작을 소환했다.
단편영화 '문영'은 김소연 감독이 2015년 발표한 작품으로 제41회 서울독립영화제를 시작으로 제21회 인디포럼, 제6회 프라이드 영화제 등에 초청됐다. 영화제가 먼저 알아본 '문영'은 예매 때마다 매진을 기록해 보기 힘든 영화로 꼽힌 바 있다.
이번에 세상 빛을 보게 된 데는 김태리의 공이 크다. '아가씨' 숙희 역으로 그해 신인여우상을 싹쓸이한 김태리는 지난해 영화계 최고 수확 중 하나다. 데뷔작을 2년이나 지나서 개봉하게 만든 김태리는 그를 최고 스타로 만든 '아가씨'에서든, 데뷔작에서든 스크린 위에서 반짝반짝 빛났다.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열여덟 여고생 문영(김태리)은 세상과 단절된 채 홀로 외롭게 지낸다. 엄마는 어렸을 적 떠났고 의지할 친구도, 친척도 없다. 말 한마디 하지 않는 문영은 수화로 의사소통을 한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문영은 혼자다.
문영은 소형 캠코더로 사람들을 찍는다. 엄마를 찾기 위해서다. 사람들의 모습을 찍은 영상을 일본에 있는 이모에게 보내면 이모가 엄마인지 아닌지 답을 해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모는 문영의 이메일조차 확인하지 않는다.
김태리 주연의 '문영'은 카메라로 세상을 담는 말 없는 소녀 문영의 이야기를 담았다.ⓒKT&G 상상마당
어느 날 문영은 연인과 울며 헤어지는 희수(정현)를 몰래 찍다가 들키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희수는 문영과 다르게 긍정적이고 밝다. 사람과 관계 맺기를 꺼리던 문영은 유쾌한 희수와 친구가 된다.
'문영'은 카메라로 세상을 담는 말 없는 소녀 문영의 이야기를 담았다. 충무로의 샛별 김태리의 첫 주연 데뷔작. 단편 '너에게 가까이'(2009), '너는 거지란다'(2011) 등을 만든 김소연 감독이 연출했다.
영화는 상처 많고 마음의 문을 닫은 문영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문영은 말을 할 줄 알면서도 말을 하지 못하는 척한다. 상처받지 않으려 더 큰 상처를 내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사람과의 소통을 거부한 채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문영. 결국 그는 사람을 통해 말문을 연다. 상처의 근원지는 사람이지만, 상처를 극복하는 매개체도 사람이다.
복잡한 사회에서 많은 사람과 엮이는 우리에게 소통은 필연적이다. 상처와 고통을 혼자 짊어지려 하기보다는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다른 사람과 마음을 나누고 손을 맞았을 때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다고 영화는 얘기한다.
문영이가 말을 하지 못하는 척하는 지점이 흥미롭다. 김 감독은 "세상에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는데 다들 문영이처럼 행동하진 않는다"면서 "캐릭터 설정은 치기 어린 문영이를 보여준다. 문영이는 작은 상처를 감추려고 더 큰 상처를 만드는 인물이다.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선 '아프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문영이는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태리 주연의 '문영'은 카메라로 세상을 담는 말 없는 소녀 문영의 이야기를 담았다.ⓒKT&G 상상마당
그러면서 "미성숙한 아이가 희수를 만나서 지금보다 성숙하게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며 "상처를 혼자 감내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과 소통하면 더 낫다는 걸 보여주고자 했다"고 전했다.
김 감독의 말마따나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외쳐야 하지 않을까. 상처를 껴안기만 하면 결국엔 곪아 터져버린다. 아무리 아프더라도 상처를 있는 그대로 직면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날 보듬어줄 누군가는 있다는 삶의 이치를 영화는 일깨워준다.
앳된 얼굴의 김태리는 방황하는 열여덟 청춘을 자연스럽게 연기했다. 실제 밝은 성격의 김태리는 어두운 문영을 자기만의 색깔로 표현했다. 순수하고, 아름답고, 또 한편으로는 어딘가 슬픔이 있는 듯한 얼굴을 가진 배우다. '문영'은 김태리가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배우가 아니란 걸 증명했다.
김 감독은 "김태리는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배우"라며 "현장에서는 구체적인 디렉션 없이 서로 이야기한 걸 바탕으로 연기했다. 김태리를 통해 많이 배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영화가 개봉할 수 있었던 건 김태리에 대한 관심 덕"이라며 "나중에 김태리와 함께 GV(관객과의 대화)를 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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