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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해?] '어른아이' 김향기의 낯선 얼굴…영화 '영주'


입력 2018.11.13 08:44 수정 2018.11.13 08:51        부수정 기자

차성덕 감독 장편 데뷔작

유재명·김호정 힘 보태

'영주'는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고 동생과 힘겹게 살아가던 소녀가 자신의 부모를 죽게 한 사람을 찾아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CGV아트하우스

영화 '영주' 리뷰
배우 김향기 주연


자신의 부모를 죽게 만든 사고의 가해자를 만나면 어떨까. 당신은 그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영화 '영주'는 용서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금 되짚는 작품이다. 한날한시에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영주(김향기)는 남동생 영인(탕준상)과 둘만 남는다. 도움받을 곳 없이 힘겹게 살던 찰나 영인이 사건에 휘말리면서 영주는 돈이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주변에서 도와주는 이는 없다.

결국 영주는 절박한 마음에 이끌려 가해자 상문(유재명)이 운영하는 가게를 찾아간다. 상문은 아내 향숙(김호정)과 함께 두부 가게를 하며 살아간다. 영주는 처음부터 자신을 살뜰히 챙기는 향숙에게 마음을 열고, 그동안 받아보지 못한 따뜻한 정을 느낀다. 부부는 영주를 친딸처럼 챙기고, 영주 역시 부부를 따르며 오랜만에 미소를 짓는다.

사실 이들 부부에겐 아픈 아들이 있다. 아들은 식물인간 상태다. 이를 본 영주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그러던 어느 날 영인은 영주가 부모의 사고 가해자와 만나는 걸 알게 되고, 갈등하던 영주는 부부에게 사실을 털어놓는다.

'영주'는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고 동생과 힘겹게 살아가던 소녀가 자신의 부모를 죽게 한 사람을 찾아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의 스크립터로 활동하고, 단편 '사라진 밤'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차성덕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이 영화엔 뜻하지 않은 사고로 상처과 결핍을 겪는 인물들이 나온다. 사고로 부모를 잃은 영주·영인 남매. 이 사고로 인해 죄책감에 시달리고, 아픈 아들을 둔 상문·향숙 부부 등이 그렇다.

'영주'는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고 동생과 힘겹게 살아가던 소녀가 자신의 부모를 죽게 한 사람을 찾아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CGV아트하우스

이들에게 상처와 결핍을 극복하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다만 저마다의 방식으로 상처를 안고, 묵묵하게 살아갈 뿐이다. 상처가 많은 사람은 상처가 있는 사람에게 애써 묻지 않는다.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향숙이 영주를 처음부터 받아들였던 것처럼 말이다. 향숙은 아픈 아들에 대한 상실감을 영주로부터 채운다.

영주 역시 이들의 결핍에 대해 캐묻지 않는다. 지켜볼 뿐이다. 죽도록 미울 것 같았던 상문에게 마음을 연 것도 상문의 상처를 봤기 때문이다.

영주는 이들이 서로의 관계를 알고,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아울러 상처를 직시하고 묵묵하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한 소녀를 보여주며 희망을 얘기하기도 한다.

차 감독은 "'영주'는 오랫동안 생각한 이야기"라며 "극 중 영주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10대 때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었다. 스무 살 무렵 첫 작품을 구성할 때 '부모를 죽게 한 사람 얼굴 한번 보고 싶다'였다. '그 사람을 만나면 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에서부터 이야기를 확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상실을 겪은 사람들, 살면서 예기치 않은 비극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며 "'애도'는 평생의 과정이고 이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내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모든 성장에는 애도가 따른다"면서 "애도와 성장은 우리 생이 다할 때까지 계속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영주'가 상처받은 아이를 끌어안은 채 어른이 되어가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편지가 됐으면 한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영주'는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고 동생과 힘겹게 살아가던 소녀가 자신의 부모를 죽게 한 사람을 찾아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CGV아트하우스

영화는 가해자를 마냥 폭력적인 인물로 그리지 않았다. 감독은 "가해자의 아픔과 선의에 집중하며 캐릭터를 설정했다"며 "가해자도 사고 때문에 고통을 받는 점을 담았다. 그래야 영주와 교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다. 김향기는 주인공 영주 역을 맡아 상처와 결핍을 입은 소녀의 모습을 준수하게 연기했다.

영주 부모의 사망 사고 가해자 상문은 유재명이, 상문의 아내 향숙은 유호정이 연기했다. 둘 연기는 섬세하고도 실감하다. 미워할 수밖에 없는 사고의 가해자이지만, 오롯이 그들의 사연과 아픔에 집중하게 하는 힘을, 배우들은 표현해냈다.

유재명은 "'영주'는 사람이 사람을 보는 영화"라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았고, 용서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주인공 영주를 통해 자기를 맞닥뜨릴 수 있는, 서글프지만 따뜻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영화 제목이자 주인공 이름인 '영주'는 단단한 구슬이라는 뜻이다. 감독은 영화와 영주 자체가 그런 의미를 담았다고 했다.

영화는 지난달 4일 개막한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공식 초청되기도 했다.

11월 22일 개봉. 12세 관람가. 100분.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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