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 키워 소형~준중형 SUV 수요 공략…1.35T 엔진으로 경쾌한 드라이브
ACC·핸즈프리 등 편의사양은 고무적이나 탁월성은 '글쎄'
지난해 한국 자동차 시장은 소형 SUV '왕좌의 게임'이나 다름 없었다. 신차가 줄줄이 나오는데 2013년 출시 이후 풀체인지(완전변경) 모델이 없는 트랙스나 가격 경쟁력이 낮은 이쿼녹스의 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한국GM에겐 이 둘을 뛰어넘을 주력차종이 절실했다.
경쟁 브랜드들은 뛰어난 디자인이나 첨단 안전· 편의 사양, 착한 가격 중 하나라도 앞세워 소비자들을 어필한다. 한국GM은 이 3가지를 모두 갖춘 트레일블레이저를 출시, 경쟁이 치열한 소형 SUV 뿐 아니라 준중형 SUV까지 아우를 수 있도록 아예 타겟층을 넓혔다.
트레일블레이저는 쉐보레의 장점인 개성있는 디자인과 주행성능을 유지하면서 단점으로 지목되던 첨단 안전· 편의 사양을 대거 탑재한 것이 특징이다. 차체 크기를 트랙스 보다 크게 만들었음에도 기본트림 가격을 1995만원으로 책정해 2030세대가 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했다.
젊고 스타일리쉬한 디자인에 동급 대비 커진 차체
한국GM은 16일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클럽 '크로마'에서 트레일블레이저 미디어 쇼케이스 및 시승행사를 열었다. 이날 시승 코스는 크로마에서 출발해 북인천 IC를 지나 경기 김포시 인근의 카페에 도착한 뒤 다시 크로마로 돌아오는 왕복 90km 거리였다.
기자가 탄 차량은 최상위 트림인 RS 모델로, 랠리 스포츠(Rally Sports)의 앞 글자를 따왔다고 한다. 바디 컬러는 스노우 화이트 펄, 루프 컬러는 모던 블랙으로 튀지 않으면서 무난했다. 최대 출력 156마력, 최대토크 24.1kg.m인 E-Turbo 1.35T 엔진이 탑재됐다.
첫인상은 '콤팩트(compact) SUV스럽다'였다. 소형 SUV 보다 전장(4425mm)·전고(1660mm)·전폭(1810mm) 휠베이스(2640mm) 모두 큰데 확실히 2열 레그룸은 170cm 정도의 성인이 앉기에 넉넉했다. 다만 머리 위 여유 공간은 크지 않았다.
전면부는 쉐보레 특유의 듀얼 포트 그릴을 적용하면서 다크 크롬으로 상하 경계를 나눴다. 위아래로 각각 주간주행등, 헤드램프를 배치해 기능을 분리해 전체적으로 날카롭고 슬림한 디자인을 완성했다.
입체적인 측면 캐릭터 라인은 후면부 가장자리에 위치한 쉐보레 블랙 보타이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후면은 버티컬 리플렉터와 하단에 라운드 타입 듀얼 머플러 팁을 탑재해 역동적인 느낌을 살렸다. 타이어는 RS 전용 18인치 알로이휠이 적용됐다. 트레일블레이저를 언급하다 보니 짧게 '트블리'라고 부르는 기자들도 생겼다.
"쉐보레가 미쳤어요"…첨단 편의사양 업그레이드
그간 쉐보레는 경쟁차종 보다 첨단 편의·안전사양이 적다는 지적이 있었다. 아무리 외관이 훌륭해도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떨어지거나 찾는 편의사양이 없으면 아쉽기 마련이다.
쉐보레는 미디어 쇼케이스 현장에서 스마트폰과 인포테인먼트를 무선으로 연결하는 기능을 선보였다. 사회자가 아이폰으로 노래를 켜자 바로 옆에 위치한 트레일블레이저에서 같은 곡이 흘러나왔다.
아쉽게도 기자를 포함해 동승자들 모두 안드로이드를 쓰고 있어 똑같이 재현할 수는 없었다. 쉐보레는 구글 정책에 따라 추후 적용하겠다는 계획으로, 안드로이드폰 유저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센터페시아 하단엔 스마트폰을 무선으로 충전하는 공간이 있다. 휴대폰을 그 위에 올려놓으니 1초 정도 지나자 충전이 시작됐다. 다만 오래된 버전의 휴대폰은 적용되지 않으니 참고해야 한다.
간단한 킥모션으로 트렁크를 열 수 있는데 차키를 주머니에 넣거나 손에 들고 발을 트렁크 하단으로 차는 시늉을 하면 테일램프 불이 들어오면서 '딸각'하는 소리와 함께 트렁크가 열린다. 실제로 2~3회 해보니 열 때는 곧 잘 반응하는 데 바로 인식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경쾌한 주행감은 기본…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도 있네
D자형 스티어링휠은 운전자가 주행감을 즐길 수 있도록 RS트림에만 적용됐다. 시동을 걸고 출발하니 쉐보레에 없던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보였다. 자동차 모양의 아이콘은 앞차를 인식하는 것으로 사이 거리가 줄어들수록 기존 녹색에서 주황색-빨간색으로 변한다.
트레일블레이저의 장점 중 하나는 각종 사양을 센터페시아 중앙에 배치해 쉽게 조작할 수 있도록 한 점이다. 특히 오토스탑이나 차선 유지, AWD 모드, 스포츠 모드 변경 버튼을 같은 라인에 배치해 트레일블레이저를 처음 타더라도 익히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했다.
100km를 넘어가자 스포츠모드로 전환했다. 스포츠 모드에선 기어 한 단이 내려가면서 성능을 높이기 위해 RPM이 즉각적으로 올라간다. 스티어링휠은 그립감이 무거워져 스포티한 주행감을 더 느낄 수 있다.
속력을 150km로 높여도 소음은 크지 않았는데 정숙한 실내 환경을 제공하는 액티브 노이즈 캔슬레이션 시스템이 적용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7개 보스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이 탑재돼 음악을 듣는 즐거움도 있었다.
설정된 속도를 유지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어댑티브 쿠르즈 컨트롤(ACC) 기능을 켰다. 시속 96km로 달리다 스티어링휠왼쪽에 위치한 스크롤 버튼을 한 단계 아래로 누르니 해당 기능이 작동중이라는 영어로 된 알림이 떴다. 브레이크를 떼자 계기판 숫자가 97km로 바뀌는 것을 보니 오차 범위가 있는 듯 했다.
차선 이탈 방지 시스템도 정상 작동했다. 차선을 이탈할 때 마다 '삐삐' 경고음을 내며 안쪽으로 튕겨내는 데 체감상 밀어내는 강도는 그리 크지 않았다.
좌회전 구간시 속도를 내면서 앞차에 따라 붙으니 헤드업 디스플레이에 주황색 충돌방지 신호가 떴다. 당시 앞차와의 간격이 그다지 좁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이 속도로 운전하면 앞차와 부딪친다'는 경고신호로 여겨진다. 시승을 마친 후 주행거리는 93.9km, 평균연비는 11.0km/ℓ였다. 정속운행을 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무난했다.
'끝판왕' 트레일블레이저, 내수 '팀킬' 넘고 수출 '구원투수'될까
한국GM 경영진들이 "트레일블레이저가 출시되더라도 트랙스와 이쿼녹스간 판매간섭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지만 판단은 소비자들의 몫이다. 트랙스가 2013년 출시된 이후 풀체인지가 없는 데다 트레일블레이저와의 기본 트림 가격차는 170만원으로 '쏠림' 가능성은 커보인다.
내수도 살려야하지만 수출은 더 중요하다. 지난해 한국GM은 내수와 수출을 합쳐 트랙스 23만2962대를 판매했다. 전년 성적 보다 10.8% 떨어진 수치다. 해마다 성적이 떨어지는 한국GM은 이번 트레일블레이저의 성공이 절실하다.
가능성은 크다. 매력적인 디자인에 정통 SUV다운 퍼포먼스, 무난한 연비에 기존 쉐보레에 없던 편의·안전사양도 갖췄다. '착한 가격'은 가장 큰 장점이다. 기존 쉐보레 매니아는 물론이거니와 생애 첫 차를 고민하는 2030세대나 1~2인 가족, 세컨카를 고민하는 소비자들까지 충분히 아우를 것으로 보인다.
트레일블레이저가 잘 팔리려면 무엇보다 부평공장의 생산체제가 안정적으로 구축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임단협 타결은 극복해야 할 숙제다. 결국 트레일블레이저의 성공은 한국GM 정상화 속도에 달려있는 셈이다. 범람하는 소형 SUV 시장에 트레일블레이저가 '끝판왕'으로 자리매김해 다시금 한국GM의 부흥을 일으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