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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의 금융노트] 정치권에 내준 '공매도 논의'


입력 2020.08.24 07:00 수정 2020.08.24 04:39        이충재 기자 (cj5128@empal.com)

금융당국, '한시적 금지' 여론수렴 외부에 맡겼다가 정치이슈로 확산

개미표심 자극한 정치권에 속수무책…'기울어진 운동장' 먼저 다져야

금융위원회가 '공매도 한시적 금지' 조치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자료사진)ⓒ데일리안 금융위원회가 '공매도 한시적 금지' 조치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자료사진)ⓒ데일리안

금융위원회가 '공매도'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코로나19로 인한 주식시장 급락에 대응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시행한 공매도 금지 조치가 오는 9월 15일 종료되는 가운데 논의의 주도권을 정치권에 뺏겼기 때문이다. 시장논리로 풀어야할 금융정책이 정치논리에 빠진 형국이다.


애초에 금융당국이 휘발성 강한 공매도 이슈를 외부에 맡겨놓고 팔짱을 끼고 있다가 불길을 키운 측면이 크다. 금융위원회는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취지에 따라 전문가를 초빙해 공매도 관련 공청회를 열었고, 관련 연구용역도 외부 경제‧경영학 연구팀에 맡겼다. 학계를 비롯한 외부인사들이 찬반논쟁을 벌이는 사이 금융당국은 논란에서 비켜 있을 수 있는 판을 벌여놓은 셈이다.


이는 공매도 제도를 시장에 연착륙시키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다. 금융위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공매도를 국내 시장에서만 규제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주가 하락을 부추길 수는 있지만, 과열 조정 등 공매도의 순기능이 더 크다고 보는 것이다. 학계나 금융연구소 등 전문가 집단에서도 이 같이 보는 기류가 강하다.


문제는 공매도 금지를 꺼내긴 쉽지만, 다시 집어넣을 때는 개인투자자들의 반발 등 극심한 진통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현재 금융위가 진행 중인 '여론수렴'의 궁극적 목표도 '여론수습'에 가깝다.


그사이 개미표심의 냄새를 맡은 정치인들이 몰려들었다. 대권행보를 본격화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공매도 추가 연장"을 주장했고, 박용진‧홍성국·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공매도 축소' 방향의 관련 법안을 쏟아내며 정치 이슈로 증폭시켰다.


평소 금융정책이나 주식시장과는 거리가 멀던 정치인들이 공매도 이슈에 뛰어든 배경에는 '천만 개미'가 있었다. 리얼미터가 지난 7~8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국민 10명중 7명 이상은 공매도가 공매도를 폐지하거나 금지기간을 연장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결국 금융당국은 정치권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처지다. 최근 만난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공매도 논의가 가진 '비대칭성'으로 제도 유지를 주장하는 쪽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공매도 금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거봐라 공매도 없으니 주가가 뛰지 않느냐'고 큰소리 칠 수 있다. 정치권에서도 요즘 개미들의 환호성을 받고 있지 않나. 설령 주가가 빠지거나 변동성이 커지더라도 '공매도가 없어서 그나마 이 정도였다'고 주장할 수 있다.


반면 공매도 유지쪽에서는 버블을 걷어내고 시장을 안정시키는 등의 순기능을 당장 눈앞에서 증명하기도 어렵다. 주가가 하락하면 '이게 다 공매도 때문이다'고 원성 듣기에 안성맞춤이다. 찬반 논의의 비대칭성이 깔려있는 것이다."


실제 시장에서도 공매도를 재개해야 한다는 쪽에선 개미들의 거센 반발에 목소리를 제대로 내기 어려운 환경이다. 이번 공매도 공청회에 참석할 토론자를 섭외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의 판단은 공매도 금지 연장 쪽으로 무게가 쏠리고 있다. 예정대로 오는 9월 공매도 금지 조치를 해제할 경우, 활기를 찾은 주식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효과를 낼 수 있는데다 증시 상승세를 이끌고 있는 동학개미들의 거센 반발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여론을 의식한 정치인들이 금융당국 수장의 자리까지 위협할 수도 있다.


금융권에선 이제라도 금융당국이 정무적 감각을 발휘해야할 때라는 지적이 많다. 그러기 위해선 여론부터 다시 살피는 게 정석이다.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활동한 전직 의원은 "금융당국이 뻣뻣한 자세를 벗고, 여론의 요구를 어떻게든 맞추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고 했다. 개미들의 목소리를 정책으로 수용하면 외풍도 자연스럽게 차단될 공산이 크다고도 했다.


당장 주식카페 등 관련 커뮤니티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공매도 전면 폐지하라"와 같은 급진적인 주장을 제외하더라도 금융당국이 검토해볼만한 의견이 적지 않다. "공매도 완전한 폐지가 어렵다면 중소형주나 취약한 종목에 대해 선별적으로 금지하는 것도 방법이다", "공매도를 외국인과 기관의 전유물에서 개인에게도 플레이가 가능하도록 장벽을 낮춰달라", "그런데 금융위는 외국인‧기관과 개인 간 차별을 해소할 고민이나 해봤는가"….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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