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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최악의 예산 편성”…세금 ‘314억’ 버리는 온라인 공연장 조성


입력 2020.09.06 12:32 수정 2020.09.06 12:32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뉴시스 ⓒ뉴시스

정부가 온라인 공연장을 만들겠다고 공표한 이후 대중음악업계 관계자들의 한숨은 더 깊어졌다. 온라인 공연에 대한 지원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는 정부에 관계자들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탁상행정이라고 꼬집어 왔지만, 이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정부가 짓는 온라인 공연장에는 약 300억원의 예산이 편성됐는데, 사실상 활용 가능성이 적어 ‘버리는 돈’이 될까 우려도 깊다.


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2021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문화예산으로 온라인 케이팝 공연장 조성 등을 위한 신규예산 314억원이 편성됐다. 세부적으로는 공연제작을 위한 스튜디오 조성에 200억원, 공연제작 지원에 9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해 공연장을 찾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생생한 케이팝 콘서트를 집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온라인 공연 자체가 문제라는 건 아니다. 실제로 몇몇 아이돌그룹의 공연은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방탄소년단은 온라인 공연 ‘방방콘 더 라이브’를 진행했는데, 세계 107개 지역에서 동시접속자 75만7000여명을 모았다. 1회의 공연으로 방탄소년단은 250억의 매출을 달성했다. SM엔터테인먼트와 JYP엔터테인먼트가 함께 만든 온라인 전용 콘서트 전문회사 ‘비욘드 라이브 코퍼레이션’도 성공적으로 공연을 올리고 있다. 첫 주자였던 슈퍼엠은 1회 공연으로 약 25억가량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자본력과 전세계적인 팬덤이 형성되어 있는 상위 1%의 기획사에서나 가능한 그림이다. 인디 레이블의 아티스트들은 물론이고, 어느 정도 국내외의 팬덤을 가지고 있는 회사들조차도 온라인 공연으로 인한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온라인 공연장을 정부에서 만들어 지원해주겠다고 하면 당연히 반겨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20여년 동안 홍대에서 자리를 지키며 아이돌 그룹(가수), 인디 아티스트 등의 공연과 쇼케이스 등의 무대를 올린 공연장 브이홀의 주성민 대표는 “(온라인 공연장 조성은) 최악의 사업”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그는 “기존에 있던 공연장들은 코로나19로 거의 반년 이상을 영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임대료는 계속 높아지고, 매출은 그대로인 상황이라 최근에 문을 닫는 공연장들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또 세금을 들여 공연장을 짓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수백억의 예산을 공연장 조성에 사용한다는 건 공연장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과 경쟁을 하자는 것 밖에 안 된다. 오히려 공연 문화 상권을 무너뜨리는 상황을 맞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주 대표는 “물론 정부에서 공연장을 지어서 영세한 뮤지션을 도와주는 형태로 된다면 그 자체는 나쁘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인디 아티스트의 경우 공연장이 지원된다고 해도 온라인 공연에 대한 수요가 없기 때문에 사실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정부에서도 실적을 내야 하기 때문에 이슈가 되는 유명 아이돌을 섭외할 것이고, 공연장은 그들만의 공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정부에서도 이슈가 될 만한 지원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실 정부가 짓는 이 공연장은 ‘아이돌을 위한 공연장’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지만, 아이돌 기획사 입장에서도 이 사업에 대해 그리 긍정적이진 않다. 앞서 언급한 상위 1% 기획사의 경우는 이미 소속 아티스트들을 위한 온라인공연 플랫폼을 만들고,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운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이 공연장을 이용할 필요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다만 정부의 ‘보여주기식’ 참여 요청에 한 번쯤은 응할 수는 있지만 말이다. 또 코로나 시국에만 적용될 수 있는 ‘일시적 사업’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한 아이돌 기획사의 대표는 “코로나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지만, 국경이 열리고 오프라인이 가능한 시기가 오면 홍보를 위한 콘텐츠가 아닌, 돈을 주고 보는 콘서트 형식의 온라인 공연이 얼마나 활성화 될지 의문”이라며 “지금은 코로나라는 변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온라인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지만 사실상 몇몇 대형 기획사 아이돌 외에는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는 부분이라 다수의 기획사에서는 온라인 공연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의미가 없는 사업”이라고 꼬집었다.


또 이 대표는 “정부에서는 기존에 없던 온라인 전용 공연장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고 유명 아이돌로 성과를 내려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그 아이돌 그룹의 소속사들이 과연 이 공연장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용할지도 장담할 수도 없다”고 내다봤다.


결국 이 사업은 대중음악업계 어떤 쪽의 사람들도 반길 수 없는 사업이라는 말이다. 일각에서는 “쓸데없는 곳에 쓸 돈이 있으면 차라리 돈으로 달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만큼 대중음악업계는 코로나19 이후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한 관계자는 “사실상 수입이 99%가 줄어들었다”고 하소연했다. 그럼에도 이를 유지할 수 있는 지원 대책은 마련되지 않고 누구에게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업에 수백억의 예산을 투입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주성민 대표는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단순히 온라인 공연장을 짓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는 지원을 해줘야 문화예술의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지금의 홍대 공연 문화도 순전히 아티스트와 기획자들의 기획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문화예술이 유지가 되고 성장할 수 있게 하려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온라인 공연장 조성보다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줬으면 한다. 지금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생업 자체를 이어나갈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를 실현할 수 없는 처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윤동환 대표 역시 “온라인 공연은 결국 생방송 음악방송일 뿐이다. 지금 정부가 온라인 공연장을 만든다는 건 현재 시청률 1%도 나오지 않는 음악방송을 위한 방송국 스튜디오를 만든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면서 “온라인 공연은 단순히 장소와 장비만 있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실질적으론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탁상행정이다. 지원사업을 만들고 이미 자리 잡은 가수들의 실적만 가져가는 그림이 그려질 게 뻔하다. 제발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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