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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다큐플렉스’의 헛발질이 만든 또 다른 피해자 최자


입력 2020.09.11 13:00 수정 2020.09.11 13:02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최자 향한 도넘은 악플 논란

ⓒMBC

고인이 된 누군가의 생애를 다룬다는 건 매우 민감한 일이다.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진짜 내면의 이야기를 제 3자의 입을 통해 그려내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MBC ‘다큐플렉스’는 지난해 10월, 만 2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고(故) 설리의 생애를 담아내겠다고 예고했지만, 사실상 이야기의 방향성을 잘못 설정하면서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 냈다. 고인에게도, MBC가 만들어낸 또 다른 피해자 최자에게도 이 방송은 ‘무례함’ 그 자체였다.


지난 10일 ‘다큐플렉스’는 ‘설리가 왜 불편하셨나요?’ 편을 통해 설리의 삶을 조명하면서 설리 엄마 김수정 씨의 인터뷰를 다수 내보냈다. 처음 설리가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방송가에 발을 들이게 된 과정과 아이돌 그룹 에프엑스(f(x))의 멤버로 합류하게 된 계기, 그리고 탈퇴과정까지 김씨의 입을 통해 내면을 살폈다.


하지만 설리가 수년전 병원에 실려 갔던 상황의 실체를 이제서 공개한 의도는 이 다큐의 방향성을 의심케 했다. 굳이 그 때의 상황을 다시 들췄어야 했을까. 설리의 병원 소식을 전한 건 이미 방향성을 잃은 다큐에서 고인의 전 연인이었던 최자라는 인물을 소환해 낼 하나의 방법으로밖에 작용하지 않는다.


본격적으로 이 방송은 설리의 죽음에 대한 추모보다는, 누군가와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힘든 과정을 꿋꿋이 이겨내고 배우로서, 또 가수로서 성공적으로 성장한 설리의 모습을 조명하다가 갑자기 최자와의 열애 이후 설리가 각종 악플에 시달리게 된 것처럼 꾸며냈다.


한 대중문화 칼럼니스트는 ‘최자’의 활동명의 의미가 악플을 부추겼다고 평했다. 여기에 최자와의 만남을 반대했던 어머니 김씨 인터뷰까지 더했다. 다분히 의도적인 편집으로 이 다큐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방향성을 ‘자극적인 가십’으로 전락시킨 셈이다.


그러면서 제작진은 ‘연애와 함께 엄마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선언한 설리’라는 자막을 띄웠고, 보는 이들로 최자가 모녀사이를 멀어지게 한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의심이 될 만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심지어 이들의 갈등을 설명하면서 설리와 만나기 전, 2009년에 발표했던 노래 ‘죽일놈’까지 욱여 넣어가면서 노랫말이 마치 두 사람의 어긋난 관계를 설명하는 듯한 연출까지 선보였다.


7분여를 넘는 짧지 않은 분량에 최자와의 관계와 제3자의 시선, 그리고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던 단어들, 두 사람과 전혀 관계없는 음악들이 뒤섞이면서 또 다른 ‘공격 대상’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예상했던 대로 방송 이후 최자의 SNS에는 수많은 악플러들이 몰려들었다. 생전 설리의 SNS가 그랬던 것처럼.


MBC는 이런 상황에도 그저 ‘자체 최고 시청률 경신’이라는 프로그램의 화제성에 심취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뒤늦게 한 매체를 통해 최자에 대한 악플이 쏟아지는 것에 그 역시 피해자라면서 “(논란을)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교묘한 편집으로 한 순간에 최자가 설리를 타락의 길로 이끈 사람으로 비치게끔 한 건 명백한 제작진의 실수다.


방송을 내보내기 전 시사 과정을 거쳤음에도 방송 이후 다수의 대중이 느끼는 이 불편함을 누구 하나 잡아내지 못했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적어도 고인에 대한,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절대 벌어지지 않았을 논란이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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