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침체된 극장가, 명감독의 귀환 기다려
찌뿌둥한 마음과 몸엔 심장 뛰는 윤종빈 영화가 제격
‘배우 윤종빈’ 주연작 ‘춘몽’ 보다가 연출작 고대 커져
감독 윤종빈의 연출작을 본 지 만 2년이 훌쩍 넘었다.
2018년의 5월, 제71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서 ‘공작’을 보며 ‘이게 왜 비경쟁 섹션인가’ 생각될 만큼 깊이와 완성도, 메시지와 스타일을 두루 갖춘 작품에 박수가 절로 나왔다. 경쟁부문에 초청됐다면 윤종빈 감독을 비롯해 배우 황정민, 이성민, 조진웅, 주지훈 가운데 누구 한 명은 트로피를 받지 않을까, 아쉬웠다.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 영화관계자들도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총성 없는 액션”이라며 남북관계를 독특하면서도 묵직하게 풀어낸 영화에 외신들은 호평 일색이었고, 110여 개국 수출로 이어졌다.
티에리 프레모 칸 집행위원장은 “다음은 경쟁”이라는 말로 ‘공작’에 대한, 그것을 연출한 윤종빈 감독에 대한 존중을 표했다. 윤종빈 감독은 숨을 골랐다. 제작사 월광픽쳐스의 대표이기도 한 그는 큰 박수와 뜨거운 영광 뒤 내처 자신의 연출작으로 달려가기보다는 후배 감독들의 연출작에 힘을 실었다. 영화 ‘돈’과 ‘클로젯’을 제작했다.
그리고,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이 판데믹이 도래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고, 영화계는 꽁꽁 얼어붙었다. 특히나 제작현장의 시계는 멈추시다시피 됐다. 이미 제작해 놓은 것도 개봉 시기를 확정하지 못하고 하염없이 미루는 판국에 신규 제작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상황이 한동안 계속됐다. 중소규모 영화는 어려움 속에서도 개봉을 강행하고, 대작들은 개봉을 내년으로 넘기거나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로 직행했다. 어떻게서든 제작비를 보전하려는 고육지책이다.
관객, 소비자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어서 어서 코로나19가 풀려 영화계가 살아났으면 바라는 것과 동시에 우리가 이미 그 실력을 확인한 감독들의 신작을 보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다. 코로나19 상황이 반년 이상 지속하면서 작지만 알찬 영화, 유아인을 비롯해 몇몇 좋은 배우들의 호연을 볼 수 있는 영화들이 극장에 나오긴 했으나 세계 어디에 내놔도 뿌듯했던 한국영화의 진면목을 만끽할 수 있는 영화들을 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이 힘겨운 시기 ‘강철비2’라는 대작이 블록버스터의 맛을 보여주었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로 스타 배우를 만났다.
영화들이 개봉해도 형언하기 힘든 갈증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렇다면 어느 감독의 영화가 가장 보고 싶은가를 생각한다. 순전히 개인의 취향이라는 전제하에 많은 감독과 연출작이 눈앞을 스친다. 관객을 위해 단 1mm의 미장센에도 허술함을 허락하지 않는 박찬욱 감독, 한계 상황에서 누군가를 구하는 ‘따뜻한’ 일에 관심이 많은 김성훈 감독, 우리의 이야기로 우리를 웃고 울게 하는 김용화 감독, ‘집콕’ 생활의 무료함을 시원하게 날려줄 이야기꾼 최동훈 감독, 작은 점에서 큰 것을 발견해 새로운 세계로 안내하는 봉준호 감독 그리고 남다른 아이디어와 재기발랄한 표현력으로 보는 이의 심장을 뛰게 할 줄 아는 윤종빈 감독. 이들이라면 최근작들에서 느낀 결핍을 해소해 줄 것이다. 특유의 집요함과 낮은 자기관용도를 바탕으로 완성된, 구멍 숭숭 나지 않은 영화들을 어서 보고 싶다.
그 가운데 윤종빈 감독의 연출작이 보고픈 이유는 세 가지다. 먼저, 코로나19로 꾸물꾸물해진 마음의 날씨와 경직돼 가는 몸의 근육에 한꺼번에 ‘리듬감 있게’ 시동을 거는데 제격인 감독이기 때문이다. 윤종빈 감독의 평소 화법은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말로 바꾸면 이렇게 될까 싶게 재미있으면서도 위트(말이나 글을 즐겁고 재치 있고 능란하게 구사하는 능력) 있다. 윤 감독이 연출한 ‘비스티 보이즈’의 한 캐릭터인 듯 리듬감과 유머가 넘친다. 영화도 윤종빈 감독을 닮아있다. 지나치게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알맞은 무게감, 개성과 멋을 살린 스타일, 유쾌함이 스며 있는 윤종빈 특유의 영화가 그립다.
또, 박찬욱 감독과 김용화 감독은 각각 ‘헤어질 결심’과 ‘더 문’의 촬영을 예고했고,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은 촬영 막바지이고, 김성훈 감독의 ‘킹덤 외전’은 촬영 중이고, 봉준호 감독은 지난해 ‘기생충’을 봤으니 신작 잉태기일 터. 윤종빈 감독은 이미 연초에 ‘용서받지 못한 자’(2005) ‘비스티 보이즈’(2008)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1) ‘군도-민란의 시대’(2014)를 함께한 배우 하정우와 호흡을 맞출 드라마 ‘수리남’의 연출 소식을 알렸다. 감독 윤종빈이 연출하는 첫 드라마라 기대되고, 2007년 ‘하트’ 이후 간만에 드라마에 출연하는 하정우도 보고 싶다. 어서 촬영을 시작한다는 희소식이 들려오기를 고대한다.
세 번째 이유는 매우 개인적인데, 최근 영화 ‘춘몽’을 봤다. 코로나블루가 짙어진다 싶을 때 다시 보면 크게 웃을 수 있고 순수하게 행복해지는 영화다. ‘춘몽’의 연출은 장률 감독이다, 윤종빈은 주연배우다. 이름 그대로 종빈, 예리(한예리 분)가 세 들어 포차를 하는 건물주 역할인데 간질이 있고 약간 모자라다 싶을 만큼 순진하고 착하다. 목을 젖히는 틱 장애가 있고, 자꾸만 허리춤을 긁고 다리를 떠는데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콧물닦개 손수건을 손목에 두른 모습, 모자라도 마음이 넉넉한 종빈은 영화에 재미와 활력을 부여한다.
배우 윤종빈은 자신이 연출한 ‘용서받지 못한 자’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류승완 감독이 연출한 ‘베를린’에 조연이나 단역으로 나온 바 있지만 주연은 처음인데, 연출력만큼이나 연기력도 매우 안정적이고 개성 있다. 배우 윤종빈의 ‘춘몽’을 보며 즐거워하다 감독 윤종빈의 연출 신작을 보고픈 마음이 물씬 솟았다.
처음에 잘했는데 계속해서 잘하기란 쉽지 않다. 감독 윤종빈은 대학교 졸업작품이자 장편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로 칸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됐고, ‘공작’으로 13년 만에 다시 칸에 갔다. 칸이 모든 것을 판가름하진 않지만, 감독으로서의 올곧은 행보를 증명하는 것도 사실이다. 다시 칸에서 그를 만나고 싶다, 경쟁부문에 진출해 트로피를 받는 감독 윤종빈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