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내가 죽던 날'·장혜진 '애비규환'으로
12일 같은 날 개봉해 관객들과 만나
2019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장편영화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한 '기생충'으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이정은과 장혜진이 각각 영화 '내가 죽던 날'과 '애비규환'으로 관객들과 만난다.
흥미로운 점은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오른 봉준호 감독과 작업했던 이들이, 스크린 복귀작으로 선택한 두 영화가 신예 감독의 입봉작이라는 점이다.
'내가 죽던 날'은 박지완 감독의 첫 장편작이다. 영화 홍보사 마케터로 시작해 단편 '여고생이다' '곰이 나에게'를 연출하며 감독으로 데뷔했다. 상업, 장편영화 경험이 전무한 박 감독은 '내가 죽던 날' 시나리오를 써서 이정은에게 건넸다. 당시 이정은은 '기생충'의 성과로 영화, 드라마에서 많은 곳에서 러브콜을 받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정은은 정서적 연대와 이야기에 공감해 박지완 감독의 손을 잡았다.
이 작품은 유서 한 장만 남긴 채 절벽 끝으로 사라진 소녀와 삶의 벼랑 끝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내민 무언의 목격자까지 살아남기 위한 그들 각자의 선택을 그린 이야기로, 이정은은 줄거리에 소개된 무언의 목격자 순천댁으로 출연해 말을 하지 못하는 캐릭터를 눈빛과 표정으로 감정의 깊이를 표현했다.
이정은은 '내가 죽던 날' 홍보 인터뷰에서 전세계가 주목하는 봉준호 감독 이후, 신예 감독과의 작업하게 된 배경에 대해 "연출을 하려면 투자도 어렵고, 기다리는 시간도 길다. 한 번의 실력을 보여주는 것도 어려운 것이 감독들이다. 저는 작품만 좋다면 작거나, 감독들의 입봉작도 가리지 않고 힘을 많이 실어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장혜진 역시 '기생충'으로 이름을 알린 후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산후조리원' 등에 출연하며 쉴새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는 장혜진이 이번에는 신예 최하나 감독의 데뷔작 '애비규환'에서 토일(정수정 분)의 엄마 역으로 등장한다. '기생충'에서 보여줬던 생활력이 강한 엄마의 모습에서 힘을 빼고 보통의 엄마의 정서로 관객들에게 다가간다.
'애비규환'을 연출한 최하나 감독은 92년생으로, 이 작품은 학교 졸업 작품으로 쓰게 된 시나리오다. 하지만 장혜진은 부수적인 것은 걷어내고 '애비규환' 시나리오가 주는 신선함에 집중했다. 자신에게 디렉션을 주고 전체적인 그림을 보는 영화 감독이란 타이틀에 나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장혜진은 최근 인터뷰에서 최하나 감독과의 작업에 대해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다만 젊다는 인식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감독의 나이가 중요한 건 아니기 때문"이라며 "내게는 봉준호 감독이나 최하나 감독이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똑같은 감독이다. 나는 그들의 선택에 의해 연기를 해야하는 입장이다. 모든 배우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정은과 마찬가지로 신예, 저예산인 것을 떠나 좋은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작은 힘이라도 된다면 만족한다고도 덧붙였다.
앞서 이정현, 이나영 등 유명 배우들은 신예 감독 혹은 저예산 영화에 출연하며 힘을 실었다. 안국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3억원의 저예산으로 제작됐으며 이정현을 비롯 많은 스태프들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했다. 이 작품으로 제36회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이정현은 앞으로도 저예산 영화라도 시나리오만 좋다면 무조건 출연할 것이라고 의사를 표했다.
이나영 역시 2018년 '하울링' 이후 6년만의 스크린 복귀작을 독립영화 '뷰티풀 데이즈'로 선택했다. 그는 저예산 작품인 걸 감안해 출연료를 받지 않고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이나영은 당시 "워낙 독립영화를 좋아한다. 거칠지만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면서 "노개런티 이야기가 알려진 건 조금 민망하다. 워낙 저예산 영화라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어 고민 없이 선택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고현정, 김향기, 장동윤, 심은경, 성유리 등이 저예산 영화에 출연해 필모그래피를 다양하게 채웠다
한 제작사 대표는 "이름 있는 배우들이 시나리오 하나만 보고 출연을 결정해준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그들도 쉽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유명 배우가 출연한다고 하면 대중도 한 번 더 관심을 가져주고, 그러면서 좋은 작품이 빛을 볼 기회가 자연스레 생긴다. 앞으로 작은 영화에도 관심을 가져주는 배우들이 점점 더 많아져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