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무력화하면 원한 풀리나
오죽하면 꽃바구니 자랑일까
장관의 치기 대통령이 제어해야
문재인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권 실세들과 그 핵심지지세력이 집권 제1의 과제로 인식했던 게 무엇이었을까? 그건 자기들 표현으로 ‘적폐청산’,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구(舊) 보수정권 숙청’이었다. 좌파정권의 등장을 만천하에 알리고 그 진면목을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의욕에 넘쳤을 것임은 불문가지다. 그 근원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사건이 있었다고 추측된다. 따라서 검찰에 대한 원한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에 추동되었을 법하다. 그게 ‘검찰개혁’으로 포장됐다.
검찰 무력화하면 원한 풀리나
문 대통령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그 작업을 이끌 적임자로 여겨 발탁했던 것으로 보인다. 상부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윤 총장의 스타일이 우려되기도 했겠지만 문 대통령에 대한 의리만은 확고하리라고 믿지 않았을까. 보수 정권 숙청 과정에서 직접 칼을 휘두른 만큼 현 정권과 등지는 일은 절대로 못할 것이라는 판단도 한몫했을 터이다.
윤 총장 또한 문 대통령과 의기투합할 수 있다는 신뢰와 기대를 가졌음직하다. 문제는 문 대통령이 조국 민정수석을 법무장관으로 기용해서 ‘좌 국 우 석열’ 체제로 국가 검찰권 체계를 재구성하겠다고 한 데서 비롯됐다. 윤 총장이 보는 조국은 장관 부적격자였다. 문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나 자신의 명분을 생각해서나 이 일만은 막아야 한다고 결심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반응이 기대 밖이었다. 윤 총장은 대통령을 위하는 일이라 여겨 인사의 부적절성을 부각시켰는데 적대감이 느껴질 정도의 싸늘한 반응이 돌아왔다. 문 대통령이 조국을 포기했거나 윤 총장이 숙이고 들어갔더라면 지금과 같은 법‧검 혈전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너무 자신만만했고, 윤 총장에겐, 자신의 말처럼 ‘정무적 감각’이 없었다. 그 바람에 상황은 악화일로를 치달았다.
문 대통령의 상황대처는 감정적이고 안이했다. 국정최고책임자로서 위신과 권위를 지키면서 정부 내의 질서를 회복할 방법은 분명히 있었다. 청렴성과 원숙함을 두루 갖춘 사람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해서 윤 총장에 대한 지휘권을 자연스럽게 회복하도록 했어야 했다. 그런데 감정이 앞섰다. 윤 총장의 기세를 제압하고 축출할 수 있는 사람을 택한 것이다.
오죽하면 꽃바구니 자랑일까
추미애 장관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링에 올랐다. 한방이면 나가떨어질 것이라고 여겨 기세 좋게 인사권을 휘둘렀다. 조직과 직제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그런데 윤 총장은 주눅 든 빛도, 물러날 생각도 없어보였다. 추 장관은 분기탱천해서 윤 총장에 대한 노골적 축출시도를 거듭했다. 실력은 부족하고 의욕은 넘쳐서 칼을 마구 휘둘러대는 바람에 자신은 물론 정부의 이미지가 난도질당하는 상황이 초래됐다. 반면, 윤 총장에게는 국민적 격려가 쏟아지고 있다.
윤 총장을 응원하는 화환이 대검찰청의 담벼락은 물론, 서울고검 및 중앙지검 담벼락에까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채워졌다. 정권에 의한 정치적 학대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에서도 윤 총장은 3강에 들 정도로 위상과 인기가 크게 높아졌다. 때릴수록 상대는 커진다는 것을 추 장관이 모르지 않을 것인데도 스스로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어쩌면 그러는 게 그의 성격적 특성인지도 모르겠다.
윤 총장에 대해 거듭된 수사지휘권 발동, 동시 다발적인 감찰 지시, 끊임없는 비난 발언(이런 행위는 숫제 사냥이다)도 아직은 이렇다 할 효과를 못 내는 듯하다. 그래서 좀 의기소침해진 것일까. 20일 페이스북에 “국민적 열망인 검찰 개혁의 소명을 안고 올해 초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한 지 아직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마치 몇 년은 지나버린 것 같아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친다”고 썼다.
그 이틀 전인 지난 18일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지지자들로부터 받은 꽃바구니 사진을 공개하며 “법무부의 절대 지지 않는 꽃길을 아시나요”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자신에게도 꽃을 보내는 지지자들이 많다고 과시한 것일 텐데 자신의 성정이 얼마나 좀스러운가를 광고하는 것 같아 안쓰럽기까지 하다. ‘지지 않는 꽃길’은 또 뭔가. 자신에 대한 지지는 영원할 것이라는 뜻일까? 윤 총장 몰아낼 때까지 검찰 개혁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는 경고인가?
장관의 치기 대통령이 제어해야
장관이라는 사람이 이런 치졸하고 군색한 대응을 하는데 윤 총장 지지자들이 그냥 두겠는가. 법무부로 ‘근조화환’을 보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법무부 담벼락을 따라 놓이기 시작한 조화들을 보면서 추 장관은 또 무슨 대응책을 생각할까? 윤 총장 쪽으로도 그런 조화를 보내달라고 지지자들에게 호소하는 일은 없으리라 믿지만, 워낙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장관 권한을 과시하는 그의 스타일 때문에 차후 행보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진다.
이런 치기어린 행동은 대통령이 아니면 제어할 수가 없다. 국민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인데, 그렇더라도 한 가지는 부탁해야 할 것 같다. 추 장관이 ‘국민적 열망인 검찰 개혁’ 운운했는데 거기서 ‘국민적’이라는 표현을 빼주든지 아니면 ‘우리 편 국민의’라고 쓰든지 해 주시라.
국가의 검찰권 행사 자체를 포기할 것이라면 몰라도 생뚱맞게 공수처라는 초법적 기관을 창설하는 것은 문제 해결 방법이 아니다. 검찰의 힘을 빼기 위해 더 큰 권력기관을 만든다는 것을 어떻게 납득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해서 임기 말 통치권 누수를 막으면서 임기 후의 안전을 도모한다는 게 문 대통령의 계산이라면 지금이라도 포기할 일이다.
칼에는 의도가 없다. 그 칼을 쥔 사람의 의도에 따라 휘둘러질 뿐이다. 내후년의 대선에서 다시 좌파가 정권을 잡을 것으로 믿고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위험부담이 큰일은 저지르지 않는 게 좋다. 이미 법치는 크게 손상되고 정치는 불신과 조소에 휩싸여 있다. 더 이상 국가의 정체성이 훼손되기 전에 멈춰야 옳다. 우리만 살고 말면 그뿐인 나라가 아니지 않은가.
우리 후세대들이 안전하고 번영된 나라에서 긍지를 갖고 살도록 해주는 것이 부모 세대로서의 도리다. 인구 5200만명의 대국을 경영하는 사람들이 골목대장 노릇에 탐닉하는 행태는 국가의 장래에 중대한 장애를 조성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지금 정부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폭적 권력 과시는 추한 역사적 기록으로 남게 마련이다.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을 사냥하듯 하는 이런 정부가 있어도 되는지 문 대통령이 답해 주시라.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