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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타임 놓친 규제 완화…생보사 해외투자 뒷걸음


입력 2020.12.03 06:00 수정 2020.12.02 10:55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외화 유가증권 자산 108.7조…보험업법 개정 후 도리어 3.7조↓

족쇄 풀리고 나니 코로나19 역풍…투자 효율 개선 기대 '물거품'

국내 생명보험사 외화 유가증권 자산 추이.ⓒ데일리안 부광우 기자

국내 생명보험사들이 해외 투자의 발목을 잡아오던 규제가 풀린 이후 도리어 관련 자산을 4조원 가까이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투자에 대한 제한 해제는 생명보험업계의 오랜 희망사항이었지만, 막상 족쇄가 풀리고 나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금융시장에 불안이 확산돼 있었던 탓이다. 정치권이 수 년 간 입씨름만 벌이면서 결국 규제 완화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 꼴이 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가뜩이나 재무적 부담에 고심하고 있던 생보사들의 주름살만 한층 더 깊어지게 된 모양새다.


3일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국내 24개 생보사들의 외화 유가증권 보유 금액은 올해 8월 말 기준 총 108조6685억원으로 지난 5월 말(112조3567억원)보다 3.3%(3조6882억원)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변화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는 보험업계의 해외 투자 한도가 확대된 이후 도리어 그 규모가 축소 흐름을 보인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국회에서는 보험사가 운용할 수 있는 해외자산 비율을 이전보다 크게 늘릴 수 있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개정안은 보험사의 해외자산 운용 비율을 총자산의 30%에서 50%로, 특별계정은 총자산의 20%에서 50%로 각각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


생보사별로 봐도 대부분 추세는 비슷했다. 우선 해외 투자의 파이가 가장 큰 보험사인 한화생명은 같은 기간 외화 유가증권 자산을 26조4277억원에서 24조4072억원으로 7.6%(2조205억원) 줄였다. 교보생명 역시 해당 금액이 21조3497억원에서 20조9596억원으로 1.8%(3901억원) 감소했다. 빅3 생보사 중에서는 삼성생명만 외화 유가증권 보유량이 17조9403억원에서 18조5419억원으로 3.4%(6016억원) 증가했다. 이밖에 NH농협생명도 외화 유가증권 자산을 12조9755억원에서 11조9614억원으로 7.8%(1조141억원) 줄이며 감소폭이 큰 편이었다.


규제 해소에도 불구하고 생보사들이 이렇게 글로벌 투자에 소극적인 자세를 고수하고 있는 건 코로나19에 따른 부정적 여파를 염려해서다. 코로나19로 전 세계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면서 선뜻 돈을 굴리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언제 상황이 급변할지 예측이 어렵다 보니 해외 자산운용 위험을 분산하기 위한 환헤지의 방향을 설정하기조차 힘겨운 실정이다.


이처럼 규제 완화에도 발걸음을 재촉하기 어려운 여건은 생보업계에서 보기에 아쉬움이 큰 대목이다. 해외 투자 비중을 확장해주는 보험업법 개정안은 생보업계의 오랜 숙원이었다.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이 다가오면서 이자 역마진에 대한 걱정이 커지면서, 자산운용 이익률을 높이고 재무 건전성을 개선하기 위한 카드로 해외 투자가 부각되면서다.


2023년 시행이 예고돼 있는 새 국제회계기준 IFRS17이 적용되면 현재 원가 기준인 보험사의 부채 평가는 시가 기준으로 바뀌게 된다. 저금리 상태에서도 고금리로 판매된 상품은 가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이자가 많은데 IFRS17은 이 차이를 모두 부채로 계산한다. 과거 고금리를 메리트로 내세운 저축성 보험을 대거 판매했던 생보사들로서는 이에 따른 역마진을 메꾸기 위해 투자 수익률 개선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런 와중 코로나19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유래 없는 제로금리가 현실화하면서 해외 투자에 대한 생보사들의 수요는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금리가 떨어질수록 자산운용 수익률도 함께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게 되는데, 이는 고객들로부터 받은 보험료를 잘 굴려 다시 돌려줘야 하는 보험사에게 악재일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3월 코로나19 여파가 본격 확대되자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로 한 번에 0.50%포인트 인하하는 이른바 빅 컷을 단행했다. 우리나라의 기준금리가 0%대까지 떨어진 건 올해가 처음이다. 이어 한은이 5월에도 0.25%포인트의 추가 인하를 결정하면서 현재 기준금리는 0.50%로 역대 최저치를 다시 한 번 경신한 상태다.


이 때문에 생보업계에서는 규제 완화가 조금 더 빨리 진행됐어야 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한 타이밍만 앞서 해외 투자 한도가 풀렸더라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다. 그리고 이런 의견에는 정치권을 향한 비판도 담겨 있다. 보험업계의 끊임없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해당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넘는 데에는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가 이를 발의한 건 2017년 5월의 일이었다.


지난 국회에서부터 관련법 개정을 반대해 온 더불어민주당 쪽에서는 해외 투자가 지나치게 확장되면, 글로벌 금융 시장의 불안 요인이 국내 보험사로 전이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 왔다. 이로 인해 무리나라 보험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해석이었다. 하지만 보험업계는 30%인 해외투자 제한 비율은 금융권의 글로벌 스탠다드를 반영하지 못한 수치로, 보험사의 효과적 자산운용·투자는 물론 산업 전반의 자율성에 제약이 되고 있다며 맞서 왔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포화 상태로 접어든 국내 시장의 여건 상 상품 영업을 통한 보험업계의 성장에 한계가 분명해지면서, 투자 성적의 중요성이 한층 부각되고 있다"며 "특히 IFRS17을 앞두고 역마진 완화를 위한 자산운용 효율 개선이 절실했던 생보사들 입장에서 보면, 지금의 보험업법 개정은 늦은 감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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