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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환대에 감격해서 친미로 선회했나


입력 2021.05.24 08:30 수정 2021.05.24 07:40        데스크 (desk@dailian.co.kr)

트럼프의 오만이 준 트라우마

55만 명분 백신 ‘깜짝 선물’ 자랑

대기업 공공의 적 취급 하더니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2018년 5월 22일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트럼프는 문 대통령의 답변에 대해 “통역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전에 들은 말일 테니까”라고 했든 “좋은 말일 것”이라고 했건 그건 상대방을 무시하는 오만이었다. 그 이틀 후 트럼프는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이던 미북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알려지기로 트럼프는 이미 21일에 이 사실을 트위터에 올리려 했다가 미뤘다. 문 대통령은 그것도 모르고 한반도 운전자인지 중재자인지의 역할에 열심이었던 것이다.


트럼프의 오만이 준 트라우마


그 다음해 4월 11일에 있었던 한·미정상회담은 ‘2분 독대’라는 해괴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단독 정상회담이 당초 15분으로 예정됐으나 29분간 이어졌다. 이것만이라면 문 정권이 자랑해 마지않을 성과였을 터이다. 그런데 영부인들이 합석한 채였다. 상식적인 의미의 ‘단독 정상회담’은 이미 아니었다. 게다가 모두발언에 16분이 소요됐다. 그러고도 11분간 트럼프와 기자들의 문답이 이어졌다. 그 이후 2분 만에 정상회담은 끝났다.


6월 30일 판문점에서 트럼프다운 정치쇼가 펼쳐졌다. 그 전날 방한했던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판문점 회동을 트윗으로 제의했고 북측은 5시간 만에 이를 수용했다. 2‧28 하노이 노딜로 꽉 막혀버린 미‧북 비핵화 협상에 돌파구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던 게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기를 바랐으나, 문 대통령은 3자회동으로 만들기에 필사적이었다.”


존 볼턴 당시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회고록에 쓴 내용이다. 문 대통령은 이 같은 악조건 하에서도 끈기를 발휘해 기어이 판문점에 갔고, 장시간 대기한 후에 김정은을 배웅하는 자리에 낄 수 있었다.


지난 21일(현지시간)에는 문 대통령과 미국의 조 바이든 새 대통령 사이에 한·미정상회담이 열렸다. 다음날 조지아주 애틀란타 인근에 건설중인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방문한 다음 귀국길에 오른 문 대통령은 SNS에 이렇게 적었다.


“최고의 순방이었고, 최고의 회담이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 등과의 만남에 대해 이런 글도 올렸다.


“무엇보다 모두가 성의 있게 대해주었다. 정말 대접받는다는 느낌이었다. 우리보다 훨씬 크고 강한 나라인데도 그들이 외교에 쏟는 정성은 우리가 배워야할 점이다.”


트럼프만 상대했던 그로서는 바이든의 환대가 감격스러웠을 만도 하다. 트럼프 이전의 대통령들이 당연히 그러했을 손님접대에 문 대통령은 시쳇말로 ‘감동을 먹고’ 들뜬 표현을 SNS에 남겼다. 트럼프의 오만으로 맺힌 게 많았던 마음이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홀대’ ‘무시’ 등의 표현이 담긴 언론 보도를 보지 않게 됐다는 사실로 안도했을 수도 있다.


55만 명분 백신 ‘깜짝 선물’ 자랑


“결과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기대한 것 이상이었다.”


당사자가 그렇게 자평하는데 굳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난처하다. 그런데 무엇을 기대했기에 그 이상이었다고 하는지가 궁금하다.


“미국이 우리의 입장을 이해하고 또 반영하느라고 신경을 많이 써줬다. ‘백신 파트너십’에 이은 백신의 직접지원 발표는 그야말로 깜짝 선물이었다. 한국에 왜 우선적으로 (백신을) 지원해야 하느냐는 내부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고 하는데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특별히 중시해주었다.”


그 깜짝 선물이 55만 명분의 백신이었다. 주한미군과 접촉이 많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한국군을 위한 것이다. 자국군 보호조치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고맙다. 그렇지만 백신 기근에 떨며 기다렸던 국민들의 기대에는 터무니없이 모자라는 물량이다. 그걸 두고 엄청난 선물이라도 받은 양 호들갑스레 자랑하다니!


그는 성김 대북특별대표의 임명발표에 대해서도 ‘깜짝 선물’이라고 했다. 인권 대표 임명에 앞서 대북특별대표를 임명한 것은 인권보다 비핵화 협상을 우선한다는 뜻이라고 본 모양이다. 이로써 다시 북한에 대해 미국과의 협상을 종용하는 한편 ‘한반도 운전자’론을 다시 꺼내들 핑계가 만들어졌다는 생각일까?


양국 정상은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남북 판문점 정상회담 등에서 추구된 외교 및 대화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 방법론에 입장을 같이 했다. 바이든은 남북대화와 관여, 협력에 대한 지지의 뜻을 밝혔다. 이 점이 문 대통령을 크게 안심시키고 새로운 희망을 갖게 만들었을 것이다. 자신의 방법론이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과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 나갈 동력을 확보했다는 사실에 너무 감격해서 극상의 자평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기는 한데 미국의 대북 비핵화 원칙이 변화하고 있다는 조짐은 장문의 공동성명문 그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공동의 약속과 북한의 핵·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다루어나가고자 하는 양측의 의지를 강조하였다. 우리는 북한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유엔 안보리 관련 결의를 완전히 이행할 것을 촉구하였다.”


대기업 공공의 적 취급 하더니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이 전제돼야 협상이 진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바이든은 문 대통령을 중국에서 떼어놓는 데 일단은 성공했다. 의외라고 여겨질 정도로 문 대통령은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 측의 입장에 동조했다. 임기 말에 비로소 국제정세와 우리의 입장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별일이라고 여겨지는 대목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한국 방어와 한미 연합 방위태세에 대한 상호 공약을 재확인하고,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가용한 모든 역량을 사용하여 확장억제를 제공한다는 공약을 확인하였다.”


이 부분도 예상 밖이다. 문 정권 안에서 ‘동맹’을 죄악시 하는 말을 공공연히 하는 사람이 있고, 문 대통령의 안보정책도 그런 인식의 틀 안에서 입안·추진되는 경향을 보였던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방향 선회다. 문 대통령이 ‘더할 수 없이 좋은 결과’였다고 했으니 스스로 원한 변화라고 보는 게 옳겠다. 바람직하긴 한데 한편으로는 긴가민가 의심이 없지도 않다.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현대차 등 국내 대기업들이 44조원에 이르는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한 사실도 개운찮은 뒷맛을 남겼다. 문 대통령이 중요한 외교 교섭에 대기업을 앞세우다니! 도무지 어울리지 않은 조합이다.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공정거래위원장 시절 경제장관회의에 출석하면서 ‘재벌들 혼내주느라’ 늦었다”고 교만을 떨었다. 그게 문 정권 기업정책의 근간이다.


대기업에 대한 이미지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면서 필요한 땐 동원하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다. 후안무치가 권력의 속성이라고 이해한다 해도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경제민주화’운운하지만 정권이 기업을 종 부리듯 하는 풍토에선 어림없는 기대다. 대기업의 횡포보다 더 무서운 건 권력의 횡포다.


다시는 그 우물의 물을 마시지 않을 것처럼 침을 뱉어대던 사람들이 두레박 들고 모여드는 모습은 그로테스크하기 까지 하다. 앞으로 남은 11개월 여 임기동안 문 대통령의 기업 인식 어떻게 바뀔지 지켜볼 일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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