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방어선 창고 영화마저 바닥난 한국 영화계 [D:영화 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04.20 04:06  수정 2025.04.20 04:06

팬데믹 이후 한국 영화계는 일명 '창고 영화'에 의존해 가까스로 극장가의 온기를 유지해왔다. 팬데믹과 제작비 급등, 투자 위축 등으로 인한 신작 가뭄 속에서, 과거 제작됐으나 개봉하지 못한 영화들이 뒤늦게 관객과 만나는 방식으로 상업영화 라인업을 꾸려온 것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는 신호가 뚜렷해지고 있다. 창고 영화가 더 이상 산업을 떠받칠 수 없는 시점이 임박한 것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 바이포엠

지난해 말부터 올해 4월까지 개봉한 주요 창고 영화는 '소방관',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 '말할 수 없는 비밀', '히트맨2', '브로큰', '스트리밍', '승부' 등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2020년부터 2022년 사이에 제작을 마쳤으나, 코로나19로 인한 개봉 연기, 투자사 정리, 배우 스캔들 등 다양한 이유로 뒤늦게 개봉했다. 이들 작품은 상업영화의 붕괴된 라인업을 메우는 역할을 일정 부분 해왔다.


물론 시의성이나 작품을 보는 눈이 높아진 관객들에게 모두 선택을 받은 것은 아니나, '소방관', '히트맨2', '말할 수 없는 비밀', '승부'는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박스오피스를 견인했다.


하지만 이제 이마저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2021년에 촬영을 마쳐 4월 30일 개봉하는 마동석 주연의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와 2019년 기획돼 오랜 기간 잠들어있던 '바이러스'가 5월 7일 황금연휴에 맞춰 개봉하고 나면, 유아인의 마약 혐의로 개봉을 묵혔던 '하이파이브' 정도가 남아있다.


이처럼 극장의 온기부터 신작이 제작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던 창고 영화들이 소진되는 사이, 아직 한국 영화계는 새 작품을 선보일 체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팬데믹 이후에도 영화 제작이 꾸준히 이어져야 했지만, 현실은 투자 회수 불능에 대한 두려움, OTT 중심의 제작 쏠림, 중간 규모 상업영화의 실종으로 이어지며 제작 시스템 자체 정체를 떠안게 됐다.


또한 국내 시장에 그치지 않고 한국 영화의 해외 진출 동력 약화로도 이어진다. 최근 칸 영화제는 한국 영화가 경쟁, 비경쟁 부문 진출에 모두 실패했으며 추가로 발표된 정유미 감독의 애니메이션 ‘안경’을 비평가주간 부문에 선정하는 데 그쳤다.


한국 영화의 경쟁 섹션 진출이 끊긴 상황에서, 글로벌 무대에서의 존재감 약화는 산업 전체의 경쟁력 저하를 반영하는 상징적인 시그널이다.


한 영화 관계자는 "한국 영화 산업이 이제는 '다음'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신작 제작을 위한 안전망, 중소 제작사에 대한 리스크 분산형 투자 모델, 극장 외 유통 전략 다변화 등이 병행되어야만 한다. 최근 정부에서 중급 영화에 대한 지원을 결정한 것도 그 흐름의 일부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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