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드라큘라' 초연부터 네 시즌 모두 참여
"세월따라 무대에 은은히 남고 싶어"
아이돌 그룹 출신인 김준수는 이제 ‘뮤지컬 배우’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 정도로 한국에서 최고의 티켓파워를 지닌 배우가 됐다. 2010년 뮤지컬 ‘모차르트!’로 데뷔해 이후 ‘엘리자벳’ ‘드라큘라’ ‘엑스칼리버’ ‘도리안 그레이’ ‘데스노트’ 등의 작품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한국 대표 뮤지컬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그에게서 ‘아이돌 출신’이란 편견을 지울 수 있게 된 작품은 ‘드라큘라’다. 1897년 발행된 아일랜드 소설가 브램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를 원작으로, 4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여인만을 사랑한 드라큘라 백작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김준수는 2014년 국내 초연부터 올해까지 총 네 번의 시즌에 개근했다.
“모든 작품이 소중하지만 ‘드라큘라’는 더 소중하죠. 뮤지컬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김준수라는 이름을 알릴 수 있게 된 작품이기 때문에 각오가 더 남다른 것 같아요. 작품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지만 배우로서 계속 함께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이미 수많은 국가에서 공연된 작품이지만, 한국의 ‘드라큘라’는 다른 나라의 같은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뮤지컬보다 가장 완성도 있는 버전이라고 생각해요. 함께 하는 배우로서 매우 뿌듯하죠.”
네 시즌 개근으로 이제 ‘드라큘라’에서 김준수는 빼놓을 수 없는 아이덴티티가 됐다. 더 치명적이고, 더 애절한 드라큘라를 그려내는 그의 이름을 붙여 ‘샤큘’(시아준수+드라큘라)이라는 별칭까지 생겼다. 한 번도 빠짐없이 출연한 만큼 부담감도 있었다.
“가장 많은 회차를 한 뮤지컬이자 한 번 도 빠짐없이 한 작품이에요. 그래서 초연작을 하는 것과는 또 다른 부담감이 있어요. 할 때마다 좋은 반응이 나온다고 안주해버리면 이미 보셨던 분들, 즉 회전문 관객(같은 공연을 여러 번 보는 관객)들에게 같은 감동을 드릴 수 없잖아요. 재관람하는 하는 경우가 워낙 많아서, 거기에서 오는 부담과 중압감이 엄청나요. 시나리오부터 무대까지 거의 모든 게 똑같기 때문에 그 안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그 기준을 이겨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어요.”
이 부담감을 김준수는 본인만의 차별화된 연기로 이겨냈다. 실제 관객들은 “샤쿨 공연은 매 시즌마다 달라진다” “어제 공연과 오늘 공연에서도 디테일이 다른 배우”라는 평을 남겼다. 김준수는 매 시즌, 매 회차마다 디테일을 달리 하면서 회전문 관객들에게 또 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회전문 관객들에겐 김준수의 디테일 변화를 찾아내는 것이 또 하나의 재미로 작용하고 있다.
“배우마다 큰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자율성이 허용돼요. 같은 대사 타이밍에도 서로 다른 대사를 하기도 하죠. 예전에는 애드립 부분을 제외하곤 있는 그대로 연기를 했어요. 그런데 시즌을 거듭할수록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상대 배우가 주는 다른 해석에 따라 저도 거기에 맞춰 연기하기도 하고, 제 당일 컨디션에 따라 대사가 달라지기도 하고요. 사실 하루하루가 다르다고 봐야죠(웃음). 그게 여러 차례 공연을 보시는 분들에 대한 보답차원이기도 하고요. 특히 이번 시즌에선 강약 조절에 더 신경 쓰고 있어요.”
초연부터 이어온 ‘붉은 헤어’라는 파격적인 비주얼 역시 드라큘라의 새로운 상징이 됐다. 사실 그간 ‘드라큘라’는 어두운 블랙 컬러에 잘 빗어 넘긴 포마드 형태의 스타일이 연상된다. 그런데 김준수가 만들어낸 강렬한 컬러는, 대체적으로 어두운 무대의 배경과 대비가 되는 동시에 핏빛을 연상케 하면서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약간 후회를 하긴 하는데….(웃음) 초연 당시 그럴 생각은 없었어요. 당연히 블랙 컬러의 스타일을 하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 ‘프레시 블러드’라는 넘버를 듣고 생각이 바뀌었죠. 노인을 벗어나서 400년 전의 젊은 모습으로 돌아가는 그 씬을 할 때 비주얼적인, 시각적인 요소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피로 젊어졌다는 걸 표현하는데 있어서 백발이 피를 마셔서 피 색깔로 변하는 시각적인 효과를 주고 싶었죠. 제작자 분도 흔쾌히 오케이를 해주셨어요. 참 감사한 일인데, 한 편으론 네 시즌을 하게 되면서 두피 관리를 엄청 신경 써야 하는 처지가 됐네요. 하하”
김준수는 전동석, 신성록과 드라큘라를 나눠 연기하고 있다. 각자가 해석하는 드라큘라, 그들이 보여주는 매력은 모두 다르다. 김준수는 “사이코적인, 광기 어린 드라큘라”라고 자신만의 매력을 어필했다. 실제로 김준수의 드라큘라는 강렬함으로 관객들의 순간적인 몰입을 이끈다. 그 역시도 드라큘라에 온전히 빠져야 가능한 일이다.
“부모님조차도 너무 오열하는 제 모습을 보고 걱정하시더라고요. (배역에) 너무 깊게 빠져든 것 같은데 괜찮냐고요. 하지만 저는 무대에서의 삶과 밖에서의 삶이 전혀 달라요. 감정적인 소모도 없고, 빠지는 성격은 아닌 것 같아요. 다만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 조명이 켜지는 순간 드라큘라가 되는 건 맞아요. 무대를 끝내고 내려오면 내가 공연을 어떻게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들어갈 땐 완전 빠지고, 나올 땐 편하게 나오는 편인 것 같네요(웃음).”
뮤지컬 배우로 벌써 10여년간 무대에 오른 김준수는 여전히 새로운 꿈을 꾸고, 또 세월의 흐름과 맞춰 그 모습 그대로 무대에 남길 희망한다. 누구나 욕심을 낼 법한 ‘상을 받는 것’보다 그는 ‘무대에 남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를 두고 있다.
“사실 전 항상 새드엔딩이었던 것 같아요. 뮤지컬 ‘킹키부츠’를 보면서 이렇게 행복한 엔딩이 있을 수 있는데 왜 난 매일 울고 끝나는 걸까 생각도 했어요. 다같이 춤도 추고, 박수도 치면서 노래하면서 끝나는 그런 뮤지컬을 해보고 싶어요. 저 춤도 자신 있거든요. 하하.”
“예전엔 뮤지컬 배우로서 상을 받고 싶다는 마음이 컸는데, 지금은 전혀 욕심이 없어요. 앞으로 내 나이, 내 모습에 맞는 역할, 세월의 흐름에 맞게 배우로서 무대에 계속 은은하게 남아있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이런 마음으로 매회 무대에 최선을 다해야겠죠. 그게 저의 목표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