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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초점] ‘나라 망신’ 시킨 MBC의 도덕불감증과 지켜지지 않는 약속


입력 2021.07.27 08:12 수정 2021.07.30 08:31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올림픽 중계서 부적절한 편집으로 논란

나라 안팎으로 강도 높은 비판 이어져

박성제 MBC 사장 기자회견..."올림픽 정신 훼손 사과"

ⓒMBC, SNS ⓒMBC, SNS

MBC가 2020 도쿄올림픽을 중계하면서 거듭 부적절한 화면과 자막을 사용해 국내외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이는 심각한 외교적 결례이자, 국가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행태로 한참 잘 나가던 한류 산업에도 찬물을 끼얹을까 우려도 나온다.


앞서 MBC는 지난 23일 개회식을 중계하면서 우크라이나 선수단이 입장하자 그래픽에 체르노빌 원전 사고 사진을 삽입하고, 아이티 선수단 입장에는 현지 폭동 사진과 함께 ‘대통령 암살로 정국은 안갯속’이라는 자막을 띄우는 등 부적절한 편집으로 논란을 빚었다.


영국의 가디언, 미국 CNN과 뉴욕타임스 등 외신들은 연이어 MBC의 중계 오류를 보도하는 등 큰 이슈가 됐다. CNN은 MBC 중계논란을 한때 인터넷판 톱기사로 게재하며 “한 한국 방송사는 부정적인 편견으로 가득 찬 묘사를 몇몇 국가에 대해 하면서 엄청나게 실패했다”라며 “한국 소개로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세월호 참사의 나라라고 하면 좋겠냐”고 보도했다.


NYT(뉴욕타임스) 역시 “올림픽 개막식 국가 퍼레이드는 각국 시청자들에게 외교 및 글로벌 인식을 키워주며, 미디어는 퍼레이드를 보여줄 때 퀴즈, 운동 선수 프로필 및 지정학적 의미 등으로 방송 시간을 채운다”며 “MBC는 해당 국가에 공격적이거나, 부정적 편견을 강화하는 내용의 이미지를 사용해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NYT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내전이 긴 불안정한 국가’(수단), ‘인플레이션이 살인적인 국가’(짐바브웨) 등 동일한 실수로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징계를 받은 사실도 거론했다. 이밖에도 영국 가디언, 미국 ABC뉴스, 뉴질랜드 헤럴드, 호주 해럴드선, 캐나다 토론토선 등 주요 외신들은 MBC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CNN 홈페이지 인터넷판 ⓒCNN 홈페이지 인터넷판

MBC는 개회식 중계 후 한국어와 영어로 공식 사과문을 내는 등 수습하는 듯 했으나 곧바로 남자 축구를 중계하면서 또 한 번 오류를 범했다. 자책골을 기록한 상대 팀 루마니아의 마리우스 마린 선수를 겨냥해 “고마워요 마린”이라는 자막을 노출하면서다.


MBC노동조합 역시 MBC의 거듭된 중계방송 사고에 대해 “공영 방송이 국민의 재산으로 나라망신을 시킨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노조는 “MBC 내부의 도덕 불감증이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면서 “박성제 사장 등 현경영진이 그렇게 만들었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진짜 원인 제공자를 문책해야 한다. 박성제 사장이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박성제 MBC 사장은 26일 마포구 상암동 MBC 경영센터에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지구인의 우정과 연대, 화합이라는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방송을 했다”며 잇따라 논란을 일으킨 데 대해 고개를 숙였다.


박 사장은 “지난 주말은 MBC 사장 취임 후 가장 고통스럽고 참담한 시간이었다. 급하게 1차 경위를 파악해보니 특정 몇몇 제작진을 징계하는 것으로 그칠 수 없는, 기본적인 규범 인식과 콘텐츠 검수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철저하게 원인을 파악하고 책임도 파악하고 대대적인 쇄신 작업을 하겠다. 방송강령과 사규, 내부 심의규정을 강화하고 윤리위원회, 콘텐츠 적정성 심사 시스템도 만들어 사고 재발을 막겠다”고 약속했다.


ⓒMBC ⓒMBC

이번 논란으로 MBC 내부의 도덕불감증으로 연결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간 ‘실수’로 치부하며 빚어온 물의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올해만 해도 박성제 사장이 공개 행사에서 광화문 집회 참가자들을 ‘약간 맛 간 사람들’이라고 폄훼해 물의를 빚었고, 뉴스 앵커까지 맡았던 한 기자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주변 취재를 한다며 경찰을 사칭해 고발당하기도 했다.


방송 콘텐츠를 만들면서도 MBC 내부의 도덕불감증이 위험 수위까지 치달았다는 지적도 있었다. MBC는 대표 예능프로그램인 ‘전지적 참견 시점’을 방송하면서 ‘[속보] 이영자 어묵 먹다 말고 충격 고백’이라는 자막을 합성한 뉴스 장면을 내보냈는데 이 가운데 두 컷이 세월호 침몰 소식을 전하는 뉴스 화면이었다. ‘어묵’은 극우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참사로 희생된 피해자들을 조롱하는 표현으로 사용된 바 있다.


당시 제작진은 “모자이크로 처리돼 방송된 해당 뉴스 화면은 자료 영상을 담당하는 직원으로부터 모자이크 상태로 제공 받았다”며 “편집 후반 작업에서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방송에 사용하게 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쳤다”고 해명했다. 또 “해당 화면이 선택되고 모자이크 처리돼 편집된 과정을 엄밀히 조사한 후, 이에 합당한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며 “앞으로 자료 영상은 더욱 철저히 검증해 사용하겠다”고도 약속했다.


하지만 MBC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해당 방송 이전은 물론, 이후로도 유사한 물의를 빚은 것에 대해 여러 차례 논란을 만들고, 해명하고 사과하는 ‘형식적’ 과정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올림픽의 경우는 오랜 기간 공들여 준비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단순히 세심하지 못해 벌어진 논란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MBC의 이번 사태는 그간 재미와 경쟁을 추구하는 방송의 풍토에서 비롯된 일이기도 하다. 올림픽은 ‘세계인의 축제’로 불린다. 승리의 짜릿함도 있지만 동시에 최선을 다한 아름다운 패배도 담겨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MBC는 올림픽 정신보다 오락과 흥밋거리에 치중해 타국의 국민들에게 상처를 주고, 한국의 국격을 실추시키는 일을 저지른 것이다.


박 사장은 이날 대국민 사과에서 세 차례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그간 지켜지지 않았던 약속을 다시 한 번 했다. 박 사장은 “스포츠뿐만 아니라 모든 콘텐츠 제작에서 인류 보편적 가치와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권과 성평등 인식을 중요시하는 전사적 의식 개선에 최선을 다하겠다.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를 다하겠다”고 말이다.


최고 책임인 박 사장의 사과에도 여론은 여전히 싸늘하다. 수차례의 거듭된 약속이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번 사과 역시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모양새다. 전 세계 시청자들의 비판에 고개 숙인 MBC가 대책을 내놓겠 내놓겠다고 했지만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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