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8월 출범…원조 '신토불이'
2011년 신경 분리 후 성장 '가속도'
농협이 올해 환갑을 맞았다. 한 갑자의 세월만큼 쌓은 경험을 상징함과 동시에 새로운 출발선 앞에 다시 섰다는 의미다. 농협의 시간은 곧 농민의 피땀이 밴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동안 농협이 쌓아온 발자취를 되짚어 보고, 앞으로의 100년을 꿈꾸는 농협의 미래를 그려본다.<편집자주>
농협이 창립 60주년을 맞으면서 농민과 함께 울고 웃으며 일궈 온 지난 역사도 재조명을 받고 있다. 가정마다 한 줌씩이라도 쌀을 모아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보자는 민초들의 정신으로 일어선 농협은 현재는 자산 500조원이 넘는 거대 조직으로 성장했다.
전 국민이 배불리 먹는 게 가장 큰 숙제였던 시절부터 중앙회 산하 2지주사 체제로 거듭난 지금에 이르기까지 농협은 쉬지 않고 변화하며 농민을 위한 길을 모색하고 있다.
농협의 출범 기점은 1961년 8월 15일 농업은행과 농업협동조합의 통합이다. 닻을 올린 이듬해인 1962년 말 국내 전체 농가 경영주의 90%인 약 222만명이 농협 조합원으로 가입한다. 1965년에는 시·군 조합으로부터 정부의 비료·농약과 농사자금 공급 사업을 이관 받았다. 1960년대 말에는 농협 하나로마트의 뿌리인 연쇄점이 첫 발을 뗐다.
비슷한 시점에 조합원 간 자금을 융통하는 상호금융이 시작되며 농협 조직은 변곡점을 맞는다. 밥을 지을 때마다 부엌에 마련해 둔 절미함에 한 줌씩의 쌀을 넣는 절미운동에 기반 한 서민들의 저축 노력이 비로소 농협의 금융 시스템과 결합하며, 농촌 경제에 새 지평을 연 것이다.
1980년대는 농협에도 민주화의 바람이 불었다. 이전까지 농협중앙회장은 줄곧 주무부처 장관의 승인을 받아 임명돼 왔다. 그런데 1988년 12월 31일 개정 농협법이 공포되면서 농협 설립 약 26년 만에 중앙회장과 조합장 직선제가 전격 도입됐다.
1990년대 들어 농협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진전에 따른 우리 농업 보호와 쌀 개방 저지를 외치며 사회의 주목을 받는다. 당시 농협이 우리농산물 애용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처음 사용한 신토불이란 구호는 이제 모두에게 익숙한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재계 10위 거대 조직으로 '우뚝'
2000년 7월 1일 통합농협의 공식 출범은 농협 역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사건이었다. 김대중 정부의 협동조합 개편 정책에 따라 농협과 축협, 인삼협 3개 협동조합이 농협의 깃발 아래 하나로 뭉치게 된 것이다.
그리고 2011년 농협은 중앙회의 신용·경제 사업 분리, 이른바 신경분리를 단행한다. 종합농협 체제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농협중앙회 산하에 경제지주와 금융지주가 자리하는 지금의 1중앙회 2지주사 체제가 마련됐다.
이를 토대로 농협의 성장에는 한층 속도가 붙게 된다. 농협경제지주는 2014년 농우바이오를 인수해 종자산업 부흥을 이끌었고, 2015년에는 농협하나로유통을 세워 유통 부문을 이관했다. 농협금융지주는 2014년 우리투자증권과 우리아비바생명, 우리금융저축은행을 자회사로 편입하며 금융그룹으로 도약했다.
현재 농협은 국내 다른 거대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대 조직으로 성장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올해 기업집단 발표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농협의 자산은 519조3412억원에 이른다. 재계 순위는 10위까지 올라섰다.
이제 농협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위기에 빠진 농가를 돕는데 온 힘을 쏟으면서도 디지털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함께 60년을 넘어 새로운 100년을 향한 청사진을 그리는 농협의 행보를 둘러싼 기대감은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농민과 함께 60년②]에서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