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시간씨름과 훼방꾼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1.09.16 09:10  수정 2021.09.16 09:08

미국의 시간씨름 스킬

북한의 시간싸움 스킬

문제는 스포일러들

ⓒ데일리안 DB

북한은 지금 국제사회 특히 미국과 시간씨름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시간은 누구에게 유리할까를 놓고 북한과 미국이 전략게임을 하고 있다.


미국의 시간씨름 스킬


미국과 국제사회는 2017년에 확실하게 구축한 대북제재 국제 레짐을 통해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대북 경제제재가 허점이 많기 때문에 그 효과가 핵포기를 견인하기는 역부족이라고 제제무용론자들은 주장한다. 이에 대해 서울대 김병연 교수는 대북제제의 효과는 ‘제재의 강도×지속시간’이라는 수식으로 명쾌하게 일축한 바 있다. 제재의 강도가 물샐틈없이 강력해서 북한이 금방 항복하고 핵을 포기하면 좋겠지만, 제재의 강도가 다소 미흡하더라도 지속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고통은 위력을 발휘한다고 보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조선시대 극형 중 하나인 ‘도모지(塗貌紙)’와 같다. 죄수를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놓고 얼굴에 물 적신 한지를 한 장씩 붙이는 잔인한 형벌이다. 그 장수가 늘어날수록 숨쉬기는 어려워지지만, 한 장을 붙였어도 시간이 지날수록 호흡량의 줄어 마찬가지 효과가 나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북한의 셀프 국경폐쇄는 2019년 4월 김정은 총비서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에서 하노이 미북정상회담 실패의 충격을 수습하며 선언했던 민족번영의 보검 ‘자력갱생’을 위한 기초체력도 무너뜨려 버렸다.


북한의 시간싸움 스킬


그렇다면, 시간은 미국의 편이기만 할까? 북한은 2018년 6월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전후에도 강선단지에서 우라늄 농축활동을 하며 은근히 미국을 압박했다.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 뭔가 새로운 움직임이 있을까 기대했던 북한은 제재 완화는 입도 뻥긋하지 않으면서, ‘외교적 관여’ ‘대화의 문은 항상 열려있다’라는 외교적 수사만 되풀이하자, 올해 7월부터는 5MW 영변원자로를 재가동하면서 시간이 결코 자신에게 불리하지 않음을 국제사회에 보여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국제사회가 주목했던 9월 9일 00시에 개최된 북한 정권창건 73주년 행사는 제목을 ‘민간 및 안전무력 열병식’으로 정하고, 기세등등한 정규군과 신형 전략무기 퍼레이드 없이, 말 탄 사회안전군, 세퍼트를 끌고나온 군견수색종대, 북한의 유명한 연예인들을 총출동시킨 문화예술인 노농적위대 등의 행진으로 볼거리를 보여주며, 내부단속에 심혈을 기울였다. 김정은도 아이의 이마에 입 맞추는 서양식 인사와 북한주민들을 향한 교황식 손흔들기만 보였을 뿐이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지난 9월 11일과 12일 연이어 사거리 1500km의 장거리 순항미사일 발사를 선보이며, 일본 요코타 주일미군기지를 정밀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했다. 그리고 영변 5MW 원자로 뿐 아니라, 강선 단지에서의 우라늄 농축활동도 시작했다. 시간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반발 제스처도 강렬해 질 것이다.


문제는 스포일러들


이렇듯이 북한과 미국 간의 시간씨름은 누가 더 불편할까의 싸음이 되고 있다. 북한이 시간씨름에서 어려워질수록 핵문제의 근원적 해결에 가까워진다. 반면 시간씨름에서 김정은이 이기게 되면 외교적이고 평화적 해법을 통한 북핵해결의 문이 닫히게 된다. 그래서 대한민국에게 어쩌면 운명을 좌우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김정은의 시간씨름에서 훼방꾼이 있다. 알다시피 첫번째는 중국이다. 지금도 중국은 유엔안보리에서 코로나를 핑계 삼아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의 부분적 해제 필요성을 주장한다. 두 번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김정은과 세번이나 만나고 밥 우드워드에 의하면 최소한 28번의 친서를 교환하며, 북한 핵문제를 성공적으로 통제했다고 믿는 트럼프 대통령이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바이든 흔들기 차원에서 미북협상 중단 상태를 비판하며 대화를 촉구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반도 핵문제의 핵심 당사자인 대한민국이 중심을 잡으면 시간씨름은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유리한 형국을 만들 수 있다. 의지가 안 보일 뿐이지, 우리에겐 그 정도의 국력이 있다. 그런데 2022년 베이징 올림픽 계기 남북정상회담 기회가 북한의 참가자격 박탈로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 대통령이 또다시 유엔총회에서 ‘수석대변인(top spokesman)’ 역할을 하며, 북한 감싸기를 시도하지 않을까 대통령의 5연 연속 유엔총회 참석 예정이라는 보도를 보며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남의 일을 망치면 훼방꾼이지만, 우리 일을 망치면 뭐라고 해야 할까?


글/이인배 협력안보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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