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이자 마진 불구 표정관리
비난 여론 뒤에 가려진 정책 실패
은행권이 실적 발표 시즌을 앞두고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4대 금융그룹의 연간 순이익은 1년 새 4조원 가까이 불어나며 15조원에 육박할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리딩뱅크 경쟁을 벌이는 KB금융과 신한금융은 사상 처음으로 순익 4조원 클럽에 가입하며 달라진 금융권의 위상에 정점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대실적에도 웃지 못하는 분위기다. 막대한 이익의 배경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이후 불어난 대출과 그에 따른 은행의 이자 마진이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 탓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고통이 금융사의 배만 불리고 있다는 비난마저 감수해야 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자세한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우선 살펴봐야 할 대목은 대출이 빠르게 불어난 이유다. 당연히 가장 큰 요인은 코로나19의 영향이다. 자영업자 등을 중심으로 은행 빚을 내 자금난을 버티는 서민들이 많아지면서다.
아울러 코로나19 계기로 열린 제로금리 시대는 이런 흐름을 더욱 부추겼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대로 내리고 이자 부담이 적어지자 대출에 손을 대는 이들이 늘었다. 싼 이자로 빚을 내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하는 이른바 '빚투'도 대출 확대를 이끌었다.
여기에 금융당국이 제동을 걸면서 상황은 더 복잡하게 꼬여갔다.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연간 가계대출 증가율을 5%대로 묶으라고 요구했다. 말 그대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알아서 대출을 옥죄란 엄포였다.
그렇다고 은행이 대출 창구를 닫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출 실수요자는 반드시 보호해야 한다는 금융당국의 방침에 반기를 드는 모양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은행이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를 맞추기 위해 전세대출을 중단하며 논란이 일자, 금융당국의 수장인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물론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사태 진화를 약속하고서야 악화된 여론을 진화할 수 있었다.
은행이 꺼내들 수 있는 카드는 대출금리 인상이었다. 물건의 가격을 높여 수요를 억제시키는 전략이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은행권이 대출 증가세를 조절하고자 할 때 사용해 온 방식이다.
금융당국의 규제와 은행의 선택이 맞물린 결과는 역대급 이자 마진이었다. 금융당국의 압박에 따라 대출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속도조절에 나서야 했던 은행권 입장에서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뤄진 현실이다. 결론만 보면 국민적 비난을 피하긴 어렵겠지만, 은행 입장에서도 억울한 면이 있다는 뒷말이 나오는 이유다.
더구나 이런 부작용을 초래하면서 원하던 목표마저 달성하지 못한 현실은 더욱 뼈아픈 대목이다. 지난해 전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율은 7%대로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을 넘어섰다.
문제 해결은 무엇이 문제인지를 바르게 인식하는데서 출발한다. 분명한 건 은행의 폭리 뒤에 정책 실패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움과 증오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