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살인도구 된 '악플'…국회서 잠만 자고 있는 '설리법'


입력 2022.02.10 05:16 수정 2022.02.21 13:11        김효숙 기자 (ssook@dailian.co.kr)

배구선수 김인혁 '악플 고통' 호소 후 극단 선택

작은 실수에도 악플러 몰려 '죽음의 댓글' 난발…연예인급 관심 속 '악플 사각지대' 즐비

국회 '악플방지법' 계류中…헌재 위헌 판단 '본인확인제'와 비슷하다 논란과 무관심만 반복

전문가 "처벌수위 강화 보다 손해배상액·양형기준 높이는 게 현실적…온라인 학대 생태계 제재해야"

BJ잼미로 활동한 조장미씨 ⓒ조씨 SNS

악플에 지속적으로 시달리던 유명 유튜버와 배구선수 등의 극단적인 선택이 잇따르면서 도넘은 악플러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수차례 발의된 각종 악플방지법들은 위헌 논란과 무관심 속에 여전히 국회에서 공전하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단순 악플이 아닌 집단적인 온라인 학대, 폭력 행위에 대한 제재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양형기준 및 손해배상액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4일 프로배구 남자부 삼성화재 소속 김인혁(27)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어 5일에는 유명 유튜버이자 스위치 스트리머인 잼미(27·조장미)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생전에 악플로 인한 고통 호소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조씨의 경우 남성 혐오 제스처를 했다는 의혹으로 2020년부터 악성 댓글을 받아왔으며, 조씨의 모친도 이로 이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전해졌다.


앞서 악플로 인해 2019년 가수 설리, 구하라가 세상을 떠난 데 이어 2020년 유튜버 BJ박소은, 배구선수 고유민이 극단선택을 했다.


악플러들을 강경 처벌해 달라는 공분은 들끓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유튜버 모녀 사망 관련 가해자 유튜버 등을 강력히 처벌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9일 오후 기준 15만 8000여명에 달하고 있다.


특히 소속사가 나서서 악플 문제에 강경하게 대응해주는 연예인과 달리, 연예인급 관심을 받는 운동선수나 유튜버 등 유명인들은 제대로 된 보호 테두리가 없어 '악플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유튜브 애용자라는 시민 이모(34)씨는 "공인처럼 관심을 받는 이들은 작은 실수에도 '사이버렉카' 유튜버, 악플러들이 달려들어 논란과 갈등을 불필요하게 키운다"며 "댓글창을 보면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갈 만큼 잔인한 댓글들이 많은 데도 제재가 되지 않아 놀랄 때가 있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유튜버나 프로선수들도 연예인처럼 관심을 받으면서 과도한 악플로 인해 심리적 위협까지 느끼고 있다"며 "다만 이들이 소속된 구단과 플랫폼 기업들이 이들을 적극 관리하고 인격을 보호해주는 시도나 장치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BJ잼미 사건 관련 유튜버, 악플러 강력 처벌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청와대ⓒ

국회에서도 일명 '설리법'이라 불리는 '악플방지법'이 수차례 발의됐으나 통과되지 못하고 모두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020년 10월 '인터넷 준실명제(본인 확인을 거친 아이디, IP주소를 공개)'를 골자로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같은 해 8월 온라인 차별·혐오 표현으로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경우 이렇게 만든 사람에 대해 자살방조죄와 비슷하게 처벌하자는 내용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냈다. 두 법안 모두 상임위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현재 계류 중이다.


박 의원 측은 "상임위 소위까지는 논의가 됐으나 전체회의에서 여야 합의가 안 돼 법사위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준실명제'는 2012년 8월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판단한 본인확인제와 비슷하다는 우려로 반대 의견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4월 27일 과방위 소위 회의록에 따르면 당시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인터넷기업협회,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위헌 가능성,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우려를 표하고 있는데, 법사위로 보내보자는 건 무책임 하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전 의원 안의 경우는 법안이 상정된 2020년 9월 8일 과방위 전체회의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논의되지 않았다. 전 의원 측은 "많은 법안들이 그렇듯 사건 당시보다 화제성, 관심도가 떨어지다 보니 상임위 안건으로 올라가지 않은 것 같아 저희도 아쉽다"며 "온라인 모욕·폭력은 1대 다수로 공격 하는 상황임에도 가중처벌이 되지 않는 맹점이 있는데, 이를 더욱 보완해 입법을 다시 추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지금도 높은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것보다는 민사상 손해배상액과 양형기준을 높이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현실적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천주현 형사전문변호사는 "악플은 대개 '사이버명예훼손죄(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벌되는데, 허위사실로 비방할 시에는 최대 징역 7년 정도를 받는다"며 "다만 피해자가 세부적으로 이 댓글이 비방 목적을 가졌으며 피해를 입었다고 직접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고,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외국 회사는 사이버 폭력 수사 협조에 잘 응해주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천 변호사는 "지금도 현행법상 처벌 수위는 높은 편이기 때문에 처벌을 높이는 입법으로 실효성을 보장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전제하고 "사이버명예훼손죄는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만큼 피해가 큰 만큼, 현재 1000만원 수준에 그치는 민사상 손해배상액을 징벌적 성격으로 확 높이거나 형사법상 양형기준을 높이는 방법 등을 고민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유튜브 중심의 뉴미디어 환경에서는 단순 악플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또 다른 유튜버들이 루머나 억측들을 영상으로 만들어 올리면서 폭력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윤 교수는 이어 "루머나 낙인찍기를 막을 대책도 유튜브에 마련돼 있지 않아 온라인 학대 생태계가 조성된 것"이라며 "단순 악플이 아닌 집단적인 온라인 학대, 폭력 행위에 대한 제재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김효숙 기자 (ssoo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김효숙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