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이른바 가상인간들의 활약상이 계속 보도돼왔는데 이젠 그 가상인간들이 가수로 데뷔한다고 한다. 먼저 로지(Rozy)가 이달 22일에 싱글을 발매한다. 2022년 2월 22일을 발매일로 잡은 것엔 ‘영원히 늙지 않는 22살’이란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로지는 싸이더스 스튜디오 엑스가 MZ 세대가 선호하는 얼굴형을 모아 3D 합성 기술로 탄생시킨 가상 모델이다. 2020년에 신한라이프 광고를 통해 등장했다.
래아는 윤종신이 이끄는 미스틱스토리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LG전자가 개발한 래아는 처음부터 23살 뮤지션이란 콘셉트였다. 윤종신이 직접 김래아 노래의 프로듀싱을 맡는다고 알려졌다. 래아가 자작곡을 만든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래아는 "단순히 음악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비주얼 아트, 패션 등 다양한 요소를 접목하겠다. 함께 소통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고 한다.
스마일게이트가 자이언트스텝과 손잡고 개발한 한유아는 2월 말에 가수로 데뷔한다. 방시혁 대표의 하이브로부터 40억 원을 투자받았고, 음원 발매에 앞서 YG케이플러스와 전속계약도 체결했다.
이러한 가상인간의 활동에 언론 관심이 뜨겁다. 언론의 기본 속성상 새로운 소재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산업계도 가상인간의 가능성에 큰 관심을 보인다. 사람은 언제 어떤 사고가 터질지 모르고, 소속사와의 계약 문제를 비롯해 통제에도 어려움이 있고, 근본적으로 노화라는 문제가 있다. 반면에 가상인간은 마약, 음주운전 등을 할 리가 없고 소속사의 통제에서 벗어나지도 않을 것이고 늙지도 않는다. 그래서 업계의 관심도 뜨거운 것인데, 이렇게 언론과 업계가 쌍끌이로 가상인간에 대한 관심을 키운다.
하지만 아직은 언론이 보도하는 것만큼 실제 인기가 나타나는 것 같지는 않다. 가상인간들의 인기로 인지도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앞서가는 언론보도에 의해 이들이 유명해지는 느낌이다. 과연 가상인간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가상인간이 정말로 스타가 되려면 두 개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 첫째는 외모다. 1998년 사이버 가수 아담과 류시아는 그래픽이 너무 조악해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픽 기술이 인간의 얼굴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준에 도달했는지가 관건이다.
둘째는 속에 든 생각이다. 가상인간에게 정말 가상인간이라고 할 만한 독자적 사고 능력이 있는가? 그런 게 없다면 그저 그림일 뿐이다. 그전부터 대중이 그림을 좋아하는 현상은 있어왔다. 큰 규모의 시장을 형성한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바로 그렇다. 다스베이더 같은 캐릭터도 그림은 아니지만 어쨌든 영화 스크린에서 구현된 가상의 존재다.
하지만 그런 존재들을 가상인간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저 캐릭터라고 했었다. 지금 등장하는 존재들을 가상인간이라고 특별히 구분하려면, 그 존재들이 스스로 생각하면서 자의식, 주체성, 개성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대중이 그 존재를 사람 좋아하듯이 좋아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가상인간들은 정말로 스스로 생각해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업계의 사람들이 그림을 놓고 그게 사람이라고 강변하면서 상황극을 펼치는 느낌이다. 거기에 언론이 맞장구를 치면서 마치 새로운 가상의 인간이 나타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본질은 그림일 뿐이고 그렇다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그림도 성공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미 많은 애니메이션, 영화 캐릭터들이 사랑받아왔다. 하지만 가상인간이라고 특별히 지칭할 만한 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려면 그 존재가 더 인간에 가까워져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개성을 갖는 단계는 기술발전상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해도, 일단 그래픽만은 지금보다 더 인간적인 표현이 가능해져야 가상인간이라고 할 만한 위상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