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0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누구나 아는 이름, 하지만 누구도 그의 진짜 얼굴은 알지 못한다. 조선의 마지막 국모이자 대한제국의 첫 황후가 된 명성화후의 이야기다.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는 명성황후(1851~1895)의 사진이 남겨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착안된 팩션(Faction) 사극이다.
지난 5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한 ‘잃어버린 얼굴 1895’는 벌써 다섯 번째 시즌을 맞았다. 극은 1910년 8월29일 한·일 강제병합일 저녁, 막 문을 닫으려는 한성의 한 사진관을 방문한 노인의 모습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조선왕조의 명성황후의 사진을 찾고, 사진사 ‘휘’는 왕비의 사진이 없을 거라고 답한다. 이후 두 사람이 왕비에 대한 서로의 기억을 돌아보면서 극은 1897년 명성황후의 국장일로 관객을 이끈다.
특히 가상인물인 ‘휘’를 만들어내면서, 그의 시선이 명성황후를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창구가 되어 준다. 우유부단한 고종과 강압적인 대원군 사이에서 처절하게 싸우던 국모, 몽매한 백성을 일깨워주겠다며 포악한 면을 보이는 왕비, 또 아이를 잃은 어머니 등 명성황후라는 인물에 입체성이 부여된다.
명성황후 뿐만 아니라 무대의 주축을 이루는 오브제인 ‘액자’를 통해 모든 인물들을 편견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틀로 다시 볼 수 있게끔 한다. 등장인물들은 무대 위에 내걸린 다양한 크기의 액자 안을 들고나면서 역사 속에 갇혀 있던 감정들을 하나 둘 내보인다.
무엇보다 이런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힘을 보태는 건, 무대예술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잃어버린 얼굴 1895’는 가무극으로, 춤과 노래를 기본 수단으로 전통의 현대적 해석과 동시대성을 동시에 아우르는 종합 무대 예술이다. 실제 작품에는 살풀이춤 등 무속신앙 요소가 담기는 동시에 현대적인 의상과 화려한 영상미술이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있다.
무대 구조를 활용하는 방법도 입체적이다. 공연장 깊숙한 뒤편 공간까지 무대로 활용하면서 더 웅장하고, 힘 있는 작품을 완성해냈다. 또 여러 층으로 나눠져 끊임없이 높낮이를 달리하며 궁궐, 논밭, 호수 등을 묘사하는 바닥무대도 인상적이다.
‘명성황후’ 역은 2013년 초연부터 이번까지 모두 네 차례 무대에 오르며 정교한 캐릭터 구축과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여 온 차지연과 초연 당시 소천 역을 맡으면서 해당 작품에 참여해왔던 하은서가 나눠 연기한다. ‘고종’ 역에는 지난 시즌에 이어 김용한이, ‘민영익’ 역에는 최인형이, ‘휘’ 역에는 윤태호가, ‘김옥균’ 역에는 이동규가, ‘선화’ 역에는 이혜수가, ‘대원군’ 역에는 금승훈이 캐스팅됐다. 3월20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