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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독점했던 사람들이 옷값을 왜 숨기나


입력 2022.03.28 08:04 수정 2022.03.28 08:05        데스크 (desk@dailian.co.kr)

인격은 치장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죽하면 네티즌들이 나섰을까

남은 세상에 조리돌림 시켜놓고

ⓒ온라인커뮤니티

조선 인조(仁祖)의 큰 고모 정명공주가 며느리를 맞는 잔칫날이었다. 임금이 고모를 생각해서 중신들에게 함께 참여하여 잔치를 빛내주라는 명을 내렸다. 고관대작의 부인들이 모여들었다. 모두 옷차림에 호사(豪奢)를 다했다. 그야말로 백화난만(百花爛漫), 화려한 꽃밭을 이뤘다.


그런데 이 귀한 집의 잔치에 허름한 가마를 타고 온 노파가 있었다. 옷도 수수해서 여염집 늙은이로 보였다.


“저런 사람이 여기 웬 일이지?”

“어느 댁에서 심부름 보낸 하인인 모양이지요, 뭐.”

인격은 치장에서 나오지 않는다

의상 자랑을 한껏 하고 있던 부인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마뜩찮아 하는데 집 주인인 정명공주가 황망히 내려가 정중히 맞아들였다. 대접도 융숭했다. 패션 쇼하러 나온 부인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저마다 한마디씩 수군댔다.


“공주님께서 저런 것을 극진히도 대하시는 군요.”

“인자하셔서 그러시겠지만 좀 과하신 것 같네요.”


한참 후에 노파는 가봐야 하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늦지 않았는데, 좀 더 노시다가 가시지요.”


공주가 만류했다.


“아닙니다. 어서 가서 저녁을 지어야지요. 저의 집 대감이 약원도제조로 일찍 대궐에 들어갔습니다. 큰아들은 이조판서이니 일이 많아서 역시 입궐했지요. 둘째는 승지인데 마침 입직하는 날이고요. 그러니 제가 빨리 가서 저녁을 마련해 들여보내야 합니다.”


이 노파가 바로 좌의정 월사 이정구의 부인이었던 것이다. 모두가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인물고, 한국기담일화집 재인용).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해방 후 미국에서 귀국했을 때 기거할 곳이 마땅치 않아 지인들이 마련해준 집이 이화장이다. 그는 대통령이 되어 경무대에 들어간 후에도 가끔 이 집을 찾았다고 한다. 1960년 4·19혁명으로 인해 하야한 뒤 4월 28일 이곳으로 옮겼다. 5월 29일 하와이로 떠났는데 자신은 신병치료차 가는 것으로 알았다고 한다. 피해서 망명한 게 아니라 쫓겨 간 셈이었다. 귀국을 간절히 원하다가 1965년 7월 19일 하와이에서 영면했다.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1970년 귀국 후 1992년 별세할 때까지 이 집에서 지냈다.


19년도 더 전에 거기 가본 적이 있다. 이 전 대통령 내외의 유품이 전시돼 있었다. 군데군데 천을 덧대어 기운 러닝셔츠가 눈을 파고들었다. 기운 자리에 또 구멍이 났던지, 2중으로 덧대져 있기도 했다. 손가락 마디만한 몽당연필들과 이를 끼워서 쓴 붓 대롱, 양말 기울 때 쓰는 백열전구, 하와이 시절 장롱으로 썼다는 골판지 상자…. 봐 나가다가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다. 그것이 한국인 박사 1호, 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 한성정부 집정관 총재, 노령정부 국무총리, 대한민국임시정부(통합정부) 초대 대통령의 살림형편이었다. 그 지위와 명성을 생각하면 이분들의 검약은 거의 초인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코트만 24벌, 롱재킷 30벌…”


이런 제목의 기사가 27일 조선일보에 났다. “靑 옷값 공개 거부에, 네티즌 직접 카운트”라는 부제가 달렸다.

오죽하면 네티즌들이 나섰을까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씨 이야기다. 한국납세자연맹이 지난 2018년 6월 ‘김 여사의 의상·액세서리·구두 등 품위 유지를 위한 의전 비용과 관련된 정부의 예산편성 금액 및 지출 실적’ 등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청와대는 “국가 안보 등 민감 사항이 포함돼 국가 중대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거부했다. 특활비 사용 내역 모두를 공개하라는 게 아니다. 대통령 부인의 몸치장이 국가 안보 및 국가 중대 이익과 직결돼 있다니! 007도 울고 갈 상상력 아닌가.


납세자연맹은 정보공개청구소송으로 맞섰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10일 “청와대 주장은 비공개 사유가 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법률가 대통령 측은 즉각 항소했다. 확정판결이 나오기 전에 관련 기록들은 대통령 기록관에 보내진다. 대통령 지정기록물로 분류되면 최장 15년(사생활 관련은 최장 30년)간 봉인된다. 기록물을 생산한 대통령만 열람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러니 공개를 원하는 국민들로서는 울화가 치밀게 마련이다. 그래서 네티즌들이 직접 세보겠다고 나섰다.


“26일까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네티즌들이 언론 보도 사진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김 여사가 그동안 공개 석상에서 입은 옷은 코트 24벌, 롱재킷 30벌, 원피스 34벌, 투피스 49벌, 바지슈트 27벌, 블라우스와 셔츠 14벌 등 총 178벌이다. 이외 액세서리로는 한복 노리개 51개, 스카프·머플러 33개, 목걸이 29개, 반지 21개, 브로치 29개, 팔찌 19개, 가방 25개 등 총 207개였다”(조선일보 같은 기사).


많기도 하다. 유명 여배우나 탤런트의 소품 목록인가 착각할 정도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라고 한다.


“가장 최근까지 자료를 업데이트한 네티즌은 ‘(아직까지) 총정리 한 거 아니다. 너무 많아서 정리하다 힘들어서 포기했다’라고 했다”(위 기사).


물론 문 대통령이 부인을 호사시키고 싶어서 자기 돈으로 사줬을 수도 있다. 법무법인 대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두 차례, 시민사회수석비서관 한 차례, 그 위에 비서실장까지 역임했다. 국회의원을 거쳐 5년 가까이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다. 통 크게 선물할 수 있는 여건은 된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부인의 옷, 액세서리, 구두, 가방 등의 가격이 수십억 원에 이르리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만큼 개인 재산으로 감당하기는 버거운 규모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 시장에 가서 싼 값으로 샀을 가능성도 영 없지는 않다. 목걸이 반지 등은 모조품, 가방, 구두는 짝퉁이었다고 한다면 금액은 훨씬 줄어들 수 있다. 그렇지만 이 경우엔 대통령 부인으로서의 체통이 무너지고 짝퉁으로 인해 세계적 비난의 대상이 된다는 위험부담이 따른다. 아무래도 제값 다 치르고 산 명품들이라고 보는 게 진실에 가까울 듯하다.

남은 세상에 조리돌림 시켜놓고

문 대통령이 지난 17년 대선 후보 등록을 하면서 중앙선관위에 신고한 재산은 18억6000여만원이었다. 올해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 신고한 재산변동 내역에서 보면 전 재산이 21억6000여만원이었다. 그러니까 5년 동안 3억원이 늘어난 셈이다. 그렇다면 아귀가 맞지 않는다. 의상비 등을 지출하고 남은 돈이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빚만 잔뜩 늘어난 것으로 신고 됐어야 설명이 될 텐데, 오히려 더 늘었으니 의상비 등은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봐야 하나? 아니면 누군가 사다 바친 것일까?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캠프 측에서는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 대해 “검소하지 않다”고 비판했었다. 자기 돈으로 옷을 사 입었는데도 흠을 잡아 공격을 한 것이다. 24일 국립서울현충원을 거쳐 대구에 갈 때 입었던 남색 코트는 7년 전부터 국내 행사는 물론 해외에 나갈 때도 입었던 옷이라고 한다. 그러니 설령 재임 중 옷을 여러 벌 샀다 하더라도 김정숙 씨에 비할 바는 못 될 것 같다. 게다가 ‘대통령’과 ‘대통령 부인’은 애초에 비교 대상일 수가 없다.


화려하게 치장한 모습을 보인 적 없는 박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의상비 등 특활비로 7억원을 썼다고 해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누구는 검소하게 살고도 유죄가 되어 감옥살이를 하고 누구는 부인에게 엄청난 호사를 시켜주고도 변호사답게 법망의 뒤쪽으로 피해버린다고 해서는 말이 안 된다(박 전 대통령에게 특활비를 줬다는 이유로 전직 국가정보원장 셋이 아직도 복역하고 있는 것은 또 어쩌고),


문 대통령과 그의 정권은 혁명의 아들을 자처하며, 자신들이 불의의 세력으로 지목한 사람들을 정의의 이름으로 징치(懲治)했다. 그냥 사법적 징벌만 가한 게 아니라 온 세상에 조리돌림 시켰다. 그 정의감으로, 대통령 부인을 위해 쓰인 의전비용을 지출내역까지 곁들여 국민에게 밝힐 일이다. 대통령이 아닌 일반인이라 해도 그러는 게 인간적인 도리다. 국고 손실을 끼치지 않았다면 아니라고 말하면 된다. 법적으로 허용된 범위 안에서 썼다면 그걸 밝히면 그만이다.


어느 남편인들 자신의 아내를 호강시키고 싶지 않으랴. 마음으로는 간절하지만 형편이 따라주지 않으니까, 그 ‘한없는 심사’로 심한 속앓이를 한다는 걸 정말 모르는가. 대통령의 특별한 지위를 부정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있는 그대로 밝히라는 것일 뿐이다. 국민 돈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든지, 국민 돈을 썼으면 어디에 얼마나 왜 썼는지를 공개하라는 것인데 거부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퇴임 전에 부부가 함께 무궁화대훈장을 받는다는 보도가 있었다. 최고 등급의 훈장이다. 그 명예로운 훈장을 받을 때는 마음에 한 점 부끄럼이나 거리낌이 없어야 하리라고 여겨진다. 문 대통령과 그 참모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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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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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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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찬성순
  • 반대순
  • 월호 2022.03.28  10:57
    앞으로 김정숙과 문재인 상판대기 들어내지 말라! 선량한 국민들이 스트레스받아 쓰러질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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