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대금 다 받은 건설사 자금난 공사 중단
대출상환 부담 많아 란웨이러우 입주자 급증
전국 모기지 상환거부·보이콧 통보 320여건
부동산업, 국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 29%
중국 후베이(湖北)성 황스(黃石)시의 한 아파트 내부, 콘크리트 바닥 위에는 이불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다. 창이 없는 창틀만 있고 주방도 거실도 없다. 요리는커녕 버너로 간신히 밥만 해 끼니를 때우고 있다. 밤에는 낮에 태양광 발전으로 모아둔 전기로 전등을 밝히고, 용변은 양동이에 보고 내다 버린다. 이곳에 거주하는 40대 여성 리(李)모의 가족은 난민과 같은 팍팍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에 아파트가 완공돼 입주할 예정이었지만,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로 건설업체가 자금난에 빠지지는 바람에 공사가 중단된 탓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닛케이)신문이 지난 25일 중국에서 짓다 만 아파트를 뜻하는 ‘란웨이러우’(爛尾樓)에 입주한 시민들 들이 급증하고 있다며 중국 부동산 시장의 어두운 이면을 집중 조명했다.
리는 “아들의 결혼 준비를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70만 위안(약 1억 3600만원)짜리 이 아파트를 분양 받았다. 그런데 대출상환 총액이 한 달에 1만 2000위안을 넘는 통에 전 거주지의 집세를 낼 수 없게 돼 결국 가족 모두 이곳으로 이사 오게 됐다”고 털어놨다. 란웨이러우는 멀리서 보면 멀쩡한 것처럼 보이지만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물도 나오지 않으며, 승강기는 말할 것도 없고 하수시스템마저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미완공 아파트를 뜻한다.
중국에서 경기침체와 코로나19 직격탄으로 자금난에 시달리는 부동산 개발업체가 분양대금을 다 받고도 아파트 공사를 중단한 란웨이러우가 크게 늘어나면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부동산담보대출(모기지)을 받아 새 아파트를 샀다가 제때 인도 받지 못한 소비자들이 모기지 상환 거부(보이콧) 운동, 단체소송 등 집단행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타임스(MYT)·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중국 전역의 100여개 도시에서 수십만 명의 란웨이러우 소유자들은 연합해서 모기지 보이콧 운동을 벌이고 있다. 비공식 통계에 따르면 분양받은 이들이 대출상환을 거부하는 건설 현장은 장시(江西)성과 허난(河南)성, 후난(湖南)성, 후베이(湖北)성, 광시(廣西)장족자치구, 저장(浙江)성, 쓰촨(四川)성, 산시(山西)성, 장쑤(江蘇)성 등 중국 전역 200~300곳에 이른다.
모기지 상환거부는 중국 부동산 경기가 곤두박질치면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공사를 중단한 가운데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기 악화와 실직, 급여삭감 등의 악재와 맞물리면서 분양 받은 일부 아파트 구입자들이 주택담보대출 상환을 거부하면서 시작됐다. 후난성의 아파트 소유자들이 지난 7월 현지 은행과 후난성 관리들에게 보낸 공문을 통해 “생활이 극도로 어렵고 우리는 더 이상 매달 모기지를 감당할 수 없다”며 “건설사들이 아파트를 완공하지 못하면 다음 달 말부터 위험을 감수하고 대출금 상환을 중단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날린 것이다.
이에 따라 공산당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가 운영하는 행정관련 제언사이트에는 “우리가 고생해 번 돈이 다 어디로 갔는가?”라며 한탄하는 게시물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고 닛케이는 보도했다. 이와는 달리 저장성 루이안(瑞安)시와 쓰촨성 난충(南充)시에서는 공사가 중단된 아파트의 완공을 위해 입주민들이 돈을 모아 건설사에 전달하기도 했다고 홍콩 명보(明報)가 전했다.
모기지 보이콧을 하는 이들은 중국 내 300개가 넘는 부동산 개발사업에서 아파트를 구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픈소스 온라인 공유 플랫폼인 깃허브(GitHub)에 따르면 아파트 구입자들이 모기지 상환거부를 시작하거나 보이콧을 하겠다고 통보한 부동산은 전국적으로 326건에 이른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중국에서 상환 거부된 대출 규모가 1450억 달러(약 194조원)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더욱이 모기지 상환거부는 은행업계에 커다란 압력으로 작용한다. 중국 은행업의 부동산 부문 리스크는 다른 산업보다 훨씬 높은 탓이다. 인민은행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은행권에는 39조 위안의 미상환 주택담보대출과 13조 위안의 개발업자 대출이 남아 있다. 이런 만큼 최악의 경우 중국 은행권이 주택담보대출 총액의 6.4%인 356억 달러 규모의 모기지 손실을 볼 수 있다고 S&P는 경고했다. 천즈우(陳志武) 홍콩대 금융대학원 교수는 “은행업계가 중간에 끼어 있는 만큼 부동산 개발업체들을 도와주지 않으면 더 큰 손실을 볼 수 있다”며 “도와주면 부실 아파트에 대한 위험부담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중국에서는 부동산이 가계자산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중요하고 믿을 만한 투자수단이다. 가격급등으로 투자수익률이 높은 데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정부가 구제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광둥(廣東)성 잔장(湛江)시에서 아파트를 구입한 린(林)모)는 완공 예정일이 2년 이상 지났음에도 “공사를 이어받는 기업이 나타나거나 정부가 사태수습을 위해 나설 것으로 본다”고 낙관했다. 하지만 이 같은 낙관은 오히려 부동산 버블(거품)을 키우는데 일조했다. 닛케이에 따르면 2020년 중국의 주택 시가총액을 추산한 결과 95조 6000억 달러에 이른다. 중국과 국토 면적이 비슷한 미국의 2.6배 규모다. 지난 10년간 중국 부동산 시세는 평균 3배 가량 급등해 같은 기간 미국의 1.7배를 크게 웃돌았다.
부동산 버블을 우려한 중국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 기업의 부채비율에 따라 신규 대출을 제한하는 이른바 ‘3대 레드라인’을 도입했다. 3대 기준을 모두 넘긴 헝다(恒大)그룹 등 10여개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가 만기가 된 대출을 새 대출로 롤오버(전환)하지 못하면서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졌고 잇단 디폴트로 시장심리가 악화되자 기업들의 재무상태는 더 나빠져 공사중단 사례가 속출했다.
문제는 부동산 산업이 중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분의 1에 이를 정도로 비중이 크다는 점이다. 케네스 로고프 미 하버드대 교수에 따르면 중국 GDP에서 부동산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29%로 추산됐다. 2010년대 금융위기에 빠진 스페인이나 아일랜드의 최고치를 웃도는 수치로 중국 부동산 부문이 20% 줄어들면 중국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에 빠질 수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중국의 부동산 시장은 개발업체가 한 번에 여러 아파트 분양사업을 실시하고, 아파트 구입자들에게 받은 자금을 아파트 완공을 위해 사용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모기지 상환반대 운동이 확산될수록 부동산 투자나 임대·중개서비스는 물론 건물에 들어가는 가전산업과 건축자재까지 연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글로벌 경제분석기관인 캐피털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중국 내에서 란웨이러우 분양을 완료하는 데는 4440억 달러가 필요하다. 줄리안 에반스-프리차드 캐피털 이코노믹스 중국 선임연구원은 “중국 당국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지난 30년간 중국 경제는 부동산 산업에 크게 의존했다”며 “중국의 고성장 시대는 아마도 이제 막을 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 정부는 란웨이러우 대응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인민은행은 곧 부동산 개발업체에 2000억 위안 규모의 특별대출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미리 흘렸다. 농업개발은행 등 정책은행을 통해 제공되는 이 특별대출은 란웨이러우의 완공을 위해 부동산 개발업체에 지원될 것으로 알려졌다. 인민은행과 재정부, 주택·도농건설부는 앞서 19일 공동성명을 통해 특별대출 제공의지를 밝힌 바 있다. 란웨이러우 사례가 늘어나면서 부동산시장의 신뢰가 낮아지고 부동산시장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우려한 까닭이다.
인민은행은 이와 함께 부동산 경기부양을 위해 22일 사실상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1년 만기대출 우대금리(LPR)와 주택담보대출의 기준금리인 5년 만기 대출 우대금리를 각각 0.05%포인트, 0.15%포인트 인하했다. 5월에 이어 3개월 만에 다시 인하했다. 모기지 금리를 연달아 낮춰 부동산 경기부양을 위한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중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코로나19 봉쇄와 부동산 경기침체 등으로 0.4% 증가에 그쳐 극심한 침체 상태에 빠졌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2020년 1분기 -6.8% 성장 이래 최저치다.
글/김규환 전 서울신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