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2-0 제압하고 AFF 미쓰비시컵 결승행
5년 동안 함께한 베트남과 마지막 1경기 남겨둬
선수들·팬들 "감독님 꼭 우승컵 안고 떠나셔야" 응원
4만여 베트남 축구팬들이 운집한 가운데 박항서 감독은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다.
박항서 감독이 지휘한 베트남 축구대표팀은 9일 베트남 하노이 미딘국립경기장에서 펼쳐진 ‘2022 아세안축구연맹(AFF) 미쓰비시 일렉트릭컵’ 준결승 2차전에서 전·후반 각각 1골씩 터뜨리며 신태용 감독의 인도네시아를 2-0 완파했다.
1차전 0-0 무승부에 이어 2차전 2-0 승리를 거둔 베트남은 1승1무의 성적으로 결승에 오르게 됐다. 지난 대회서 준우승에 만족해야했던 신태용 감독은 다시 한 번 분루를 삼켰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베트남 주축 선수들은 베트남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박항서 감독님께 우승컵을 안겨드릴 것”이라고 말했고, 박항서 감독은 “(오늘)지면 끝이다. 베트남에서 이렇게 끝낼 수 없다”며 승리를 다짐했다.
비장한 각오 속에 경기를 시작한 베트남은 3분 만에 띠엔린의 골로 1-0 리드를 잡았다. 골이 터지자 박항서 감독은 특유의 주먹 세리머니를 펼친 뒤 벤치에 앉아 기도했다. VIP석에서 지켜보던 응우옌 쑤언 푹 국가주석도 참모들과 하이파이브 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관중들은 베트남 금성홍기와 태극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오프사이드 판정으로 두 차례 골 찬스를 날리긴 했지만 베트남은 후반에도 주도권을 잡고 인도네시아를 몰아붙였다. 코너킥 찬스에서 다시 한 번 띠엔린이 헤더골을 터뜨려 2-0으로 달아나자 베트남 홈팬들도 승리를 예감했다.
경기 내내 베트남 선수들과 박항서 감독의 이름을 연호했고, “박항서 감독님 감사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가리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인도네시아는 베트남에 눌려 1개의 유효슈팅도 기록하지 못한 채 0-2 패배를 받아들였다. 승리를 확정하며 결승에 진출하자 하노이뿐만 아니라 베트남 곳곳에서 펼쳐진 거리응원에서는 붉은 물결이 넘실거렸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팬들과 거리응원에 나선 베트남 국민들은 “박항서 감독님의 마지막 대회다. 반드시 우승컵을 들고 활짝 웃으면서 떠날 수 있기를 바란다. 선수들이나 팬들이나 모두 그 마음뿐이다”라고 입을 모았다.
박항서 감독은 이번 대회를 끝으로 지휘봉을 내려놓는다.
2017년 베트남 축구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박항서 감독은 2018 스즈키컵 우승, 2019 아시안컵 8강 진출, 2022 FIFA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진출,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4강, 2019 SEA게임 금메달 등 굵직한 성과를 거두며 베트남 축구 영웅으로 등극했다
지난 5년 동안 베트남은 축구에 푹 빠졌다.
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 다수의 베트남 기업과 공장들이 1~2시간 단축근무를 시행했다. 2002 한일월드컵 당시 대한민국이 광화문을 붉게 물들인 것처럼 9000만 명 베트남 국민들은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단체응원도 펼쳤다. 총리가 그라운드로 내려와 대표팀을 축하하며 박항서 감독에게 격려금을 전달했고, 푹 국가주석은 박 감독을 초청해 만찬도 가졌다.
화려한 길을 함께 걸어왔던 선수들도 마지막 대회서 박항서 감독에게 우승컵을 안기겠다는 각오다. 결승에서는 김판곤 감독이 이끄는 말레이시아와 격돌할 가능성도 높다. 말레이시아는 지난 대회 우승팀 태국을 상대로 준결승 1차전에서 승리해 유리한 고지에 있다. 말레이시아가 결승에 올라오면 대회 사상 최초로 한국이 감독의 결승 맞대결이 성사된다.
박항서 감독이 마지막 경기에서 우승컵을 들고 포효하며 베트남과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