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홍종선의 캐릭터탐구㉜] 법이냐 쩐이냐, ‘가족’이 중한 사람들


입력 2023.02.06 11:01 수정 2023.02.06 11:01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은용 역의 배우 이선균 ⓒ사진 출처=이하 SBS 드라마 '법쩐' 홈페이지 '포토갤러리'

드라마 ‘법쩐’(연출 이원태·함준호, 극본 김원석), 제목부터 잘 지었다. 법률서나 법규집을 말하는 ‘법전’의 읽는 소리 그대로 쓰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법과 돈의 대결을 묵직하게 보여줄 것 같은 기대감이 일었다.


궁금하기도 했다. 법 대 쩐(錢, 돈 전). 법이 이길까 돈이 이길까, 법을 집행하는 자가 이길까 돈을 운용하는 자가 이길까. 아니 법을 제멋대로 부릴 수 있는 자가 이길까, 돈을 한계 없이 맘껏 쓸 수 있는 자가 이길까.


드리마를 보다 보니 법과 ‘쩐’의 대결이 아니다. 가족을 마음의 중심에 둔 사람들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가족도 안중에 없는 사람들의 대결이다.


명 회장 역의 배우 김홍파 ⓒ

‘법쩐’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가족 따윈 필요 없는 사람들의 선두는 명인주 회장(김홍파 분)이다.


돈만으로는 부족해 ‘법과 쩐의 카르텔’을 만들기 위해 황기석 검사(박훈 분)를 사위로 삼아 서울중앙지검 차장검사까지 키워 놓고도 자신에게 쏠린 바우펀드 주가조작, 살인 교사, 위증 교사, 교도관 뇌물죄를 면하기 위해 대검 감찰부 남재욱 부장검사(서영삼 분)와 짜고 사위에게 덮어씌워 직위해제 시킨다. 법쩐 카르텔의 ‘법’이 꼭 사위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사위면 좋았던 이유는 제 돈 잘 지키는 ‘개’로 쓰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점점 자라 상투를 잡으려 하니 내칠 이유로 충분하다. 사실 상투를 잡으려 했던 건 황기석의 뜻보다 그의 아내 명세희(손은서 분)의 의자가 컸다.


명세희 역의 배우 손은서 ⓒ

명세희는 명 회장의 딸답게 세상 모든 걸 가지려는 욕심이 대단한데, 가장 갖고 싶은 게 ‘대통령 부인’이라는 자리다. 남편은 제 뜻대로 착착 ‘정의롭고 용기 있는 검사’로 부상해 가고 이대로 가면 정치권 진출은 따 놓은 당상에 대권도 손끝에 잡힐 듯한데, ‘비리 덩어리’ 아버지 명 회장이 눈엣가시다. 명세희는 아버지의 전 재산을 빼앗고 감옥에 보낼 계획을 세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아버지도 버릴 수 있으니 그 아버지에 그 딸이다.


욕심 크고 독하기만 할 뿐 아직은 아버지보다 몇 수 아래라 결국 명 회장에게 집 한 칸 남김없이 재산을 뺏기고, 자신에게 영부인 자리를 선물할 남편의 날개마저 다름 아닌 제 아버지의 손에 꺾인다.


명 회장이 딸, 사위와 싸우는 자는 아니다. 그저 제가 갖고 싶은 걸 법과 제도의 제약 없이 다 가지면 되는데, 도움이 되면 ‘개’로 부리고 걸림돌이 되면 제거할 뿐이다. 토사구팽 된 ‘개’가 ‘깨갱’ 하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와도 싸울 일이 없다는 식인데, 세상 모두가 천치바보일 리 없다.


박준경 역의 배우 문채원, 은용 역의 배우 이선균, 장태춘 역의 배우 강유석(왼쪽부터) ⓒ

명 회장이 휘두른 칼에 가족을 잃고 가족 같은 친구를 잃은 자들이 뭉쳤다. 그편에도 법도 있고 ‘쩐’도 있다. ‘쩐’은 은용(이선균 분)이고, 법은 장태춘 검사(강유석 분)이다. 과거 촉망받던 검사였던 박준경(문채원 분), 돈 좀 굴릴 줄 아는 홍한나(김혜화 분)도 있다. 인천지검 형사부 부장검사 함진(최정인 분), 서울중앙지검 남상일 수사계장(최덕문 분)도 든든하게 힘을 보탠다.


이들이 뭉친 계기와 심적 배경에는 ‘가족 의식’이 있다. 먼저 윤혜린 블루넷 대표(김미숙 분)가 명 회장과 황기석 검사의 ‘법쩐 카르텔’에 희생양이 되고, 딸 박준경이 엄마인 자신을 구하기 위해 문서위조를 하고 황 검사 쪽에 협조한 것을 알게 된 윤 회장은 모든 것을 자기가 안고 가겠다며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 검찰에 사표를 내고 육군 법무관 소령이 된 준경은 복수를 준비한다.


은용에게 윤 대표는 소년원 출신인 자신을 믿어 주고 따뜻한 된장찌개를 내준, 사회적 엄마이자 가족 같은 사람이다. 윤 대표가 미처 끝내지 못한 싸움을 이어가는 이유도, 딸 준경의 복수극에 위험을 무릅쓰고 함께하는 이유도 윤 대표와 준경을 이미 ‘가족’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천재적 숫자 감각과 기억력으로 과거 불법용역과 사채업을 하는 명 회장 아래서 일했던 은용은 자신을 제거하려 했던 명 회장에게 사적 원한도 지니고 있다.


홍한나 역의 배우 김혜화(오른쪽) ⓒ

은용은 이 싸움에 누나의 아들, 조카인 장태춘 검사를 불러들인다. 장태춘에게 은용은 ‘외삼촌’이라 쓰고 아버지라 읽어야 할 만큼, 물적 심적 대부였다. 아빠 같은 삼촌의 일이라 박준경의 복수를 돕는 건 아니다. 지방대 출신으로 설 곳 없는 검찰조직에 오롯이 자신의 자리를 만들고 싶은 야망이 있고, 세상의 공정을 바로잡고 싶은 정의감이 있다.


체인지 사모펀드의 홍한나 대표는 은용에게 무한 신뢰를 가진 ‘경제 가족 공동체’이다. 웬만한 가족보다 끈끈한 의리로 좋을 때뿐 아니라 은용이 위기에 처했을 때도 물심양면 돕는다. 타협 없이 전진해서 ‘꼴통’이라 불리는 서울서부지검 함진 검사는 오래전 출산 후 힘겹게 검사 생활을 이어가던 시절, 검사시보 준경이 음으로 양으로 도왔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 준경을 돕다 인천지검으로 보내지고서도 계속해서 결초보은한다.


남상일 수사계장과 장태춘 검사는 ‘식구’이다. 밥도 술도 같이 먹으며 속을 나눈다. 직군이 다르지만 진정한 ‘검찰 식구’가 된 두 선후배는 노련한 수사능력과 젊은 패기를 합해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


오창현 역의 배우 이기영, 명세희 역의 배우 손은서, 황기석 역의 배우 박훈(왼쪽부터) ⓒ

사실 ‘명 회장 라인’도 막강하다. 전직 검사장이었던 오창현 GM뱅크 대표(이기영 분), 대검 감찰부 남재욱 부장검사를 비롯해 고위급 검사들, 사위인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부장검사 황기석, 황기석이 차장검사로 승진할 때 그 자리를 물려받은 이영진 부장검사(박정표 분), 검사 출신의 이수동 변호사(권혁 분), 명 회장의 오른팔 김성태(이건명 분) 그리고 은용의 친구였지만 명 회장 수하가 된 이진호 실장(원현준 분)이 명 회장을 위해 움직였다.


그런데 10회까지 방영된 현재 오창현도, 황기석도, 김성태도 명 회장 곁에 없다. 아예 쓸모가 없어진 것도 아닌데, 사냥이 끝난 것도 아닌데, ‘득보다 실이 크다’고 생각해서 명 회장이 직접 제거했다. 이수동도 없다. 명 회장이 자신의 죄를 뒤집어씌우려 감금시켜 놨으나 혼란을 틈타 도망쳤다.


이진호조차 없다. 명 회장이 직접 내친 게 아니다. 박준경이 납치했지만, 늘 친구 은용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품고 있던 진호가 제 목숨을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은용을 구할 ‘장부’와 바꿨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은용과 준경 곁으로는 조력자가 몰리는데, 명 회장과 황기석 검사 옆에는 사람이 줄어간다. 이진호도 ‘가족 같은’ 은용을 위해 명 회장을 등졌고, 이영진 검사는 출세욕을 위해 자신을 키워준 황기석 검사를 배신한다.


황기석 역의 배우 박훈 ⓒ

남이지만 상대에게 ‘가족’ 같은 마음을 지닌 이들은 끝까지 서로를 돕고, 뜻과 죽이 착착 맞아 온갖 악행을 함께했던 이들은 언제고 배신하고 배신당한다.


배우가 지닌 기품과 무게감에 어울리지 않게 ‘명 회장의 개’ 황기석을 연기한 박훈이 장인에 의해 버려지자 팬들은 ‘선역’으로의 재등장을 기대한다. 거칠게 생겨서는 선함이 묻어나는 눈빛과 따스함이 배어 있는 목소리를 지닌 원현준 배우가 연기한 이진호가, 은용의 죽마고우가 마침내 ‘우리 편’에 서자 시청자들이 환영한다.


엉뚱한 기대와 환영의 심적 기저에는 ‘가족 같은 연대’에 대한 응원이 자리하고 있다. 은용과 준경 진영의 인물들이 모두 선한 것도 아니고 그들이 쓰는 방법이 다 정의로운 것이 아님에도 편든다. 우리가 ‘은용 라인’을 가족 같은 마음으로 지지하게 된 건 아닐까.


이진호 역의 배우 원현준 ⓒ

11회를 기다리면서 9회에서 이진호가 마지막으로, 은용에게 남긴 말을 곱씹어본다. 사람은 죽음 앞에 거짓말하지 않는다.


“소년원에 있을 때 니 나한테 했던 말 생각나나. 이 지옥 같은 데서 버틸 수 있는 이유가 가족 때문이라고. 사는 게 암만 지옥 같아도 니는 꽃밭이라이. 니한테는 장태춘이도 있고 서울 법대(박준경)도 있다 아이가. 나는 인자 우리 할매 보러 갈란다. 친구야, 보고 싶네. 건강해라.”


자신에게 담배를 처음 가르쳐 준 은용이 삼촌이라며 장태춘이 울고, 같은 열망을 지녔지만 다른 길을 걸어야 했고 끝내 함께하지 못했음에도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건 친구를 은용은 비통함 속에 추억한다. 조카를 아들처럼 키우더니, 은인의 딸을 동생처럼 아끼게 된 은용, 그를 살아있게 하고 살고 싶게 하는 바탕은 ‘가족애’라는 걸 진호가 선명히 한다. 출발은 같았으나 다른 길을 갔던 진호는 생의 마지막에 은용의 형제이자 태춘의 삼촌이 됐다.


종착역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드라마 '법쩐' ⓒ

그리고 마침내 은용이, 배우 인생의 ‘새로운 절정’을 보여주고 있는 이선균을 빌어 말한다. 남은 두 회분의 이야기, 결말을 예고하는 선언이다.


“진실은 여전히 은폐돼 있고 정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쥐약을 먹었다, 명 회장의 탐욕이 명 회장을 끝장낼 거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