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의 도피행각 벌이지 않았나!
촛불로 자기 집을 태워버릴 수도
떳떳하면 영장 실질심사 받으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말이 갈수록 엉뚱해진다. 검찰의 수사가 진전되면서 심리적으로 많이 흔들리는 인상이 역력하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더러 (당선되면) 대장동 특검을 할 거냐고 한 자리에서 몇 차례나 재우쳐 물으며 상대를 (대장동 의혹의) ‘몸통’이라고 몰아세우던 기개는 어디에다 버렸을까?
필사의 도피행각 벌이지 않았나!
그는 대선에서 패배했다. 그렇지만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진입했고, 거대정당의 대표직까지 꿰찼다. 그 이후 이 대표가 ‘대장동 특검’을 추진한다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물론 민주당도 입을 닫았다. 대신 ‘김건희 특검’을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억지인 줄은 자신들이 더 잘 알 일이지만 이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남이 뭐라든 자기 말만 하는 화법에 숙달됐다. 그게 논쟁의 본질을 피하면서 말싸움에서 이기는 수법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선과 보궐선거가 끝나고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하자 이 대표는 부인(否認)으로 일관했다. 물론 자신이 했다고 말한 부분도 있기는 하다. “성남시민을 위해 1820억원을 환수했다”라는 것이다. 이렇게 잘한 일을 검찰이 범죄라고 모함한다는 주장을 계속해 왔다. 이상하게 ‘이재명 사건’(부인 김혜경씨 법인카드 유용 사건 포함)에 연루됐다고 알려진 인사들의 극단적 선택이 잇따랐다.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현 포천도시공사 사장)의 사망과 관련, 이 대표는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조속히 특검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했지만 이를 추진한 바는 없다. 이어 자살한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에 대해서는 ‘성남시장 땐 몰랐던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와 민주당, 그러니까 ‘특검’을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이를 추진하지 않는 건 그야말로 불가사의다.
이처럼 말이 되든 안 되든 당당하기 이를 데 없던 이 대표가 검찰에 몇 번 불려 간 후 구속영장까지 청구되자 구차스럽기 짝이 없는 태도를 보인다. 그는 지난 14일 ‘검찰의 영장 청구 임박’ 소식에 “제가 어디 도망 간답니까”라며 반발했다. 도주 우려가 없는 사람인데 무슨 ‘구속영장’이냐는 의미였을 것이다. 도주는 안 하더라도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거나 사안이 중대할 경우도 영장 청구의 요건이 된다. 그는 뭐든 ‘나는 아니다, 나는 모른다’ 식의 태도로 일관한 만큼 증거인멸 우려가 없지 않다. 게다가 고위공직자로서 엄청난 규모의 비리 사건을 주도했거나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다. 구속영장이 청구되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니겠는가.
그리고 ‘도망’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행선지를 알리지 않고 잠적하는 것만이 도망은 아니다. 여러 범죄혐의를 받고 있으면서 기어이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통해 의원직을 확보하고 거대 제1야당의 대표직까지 차지한 일련의 행위도 검찰 추적으로부터의 ‘도피’다. 그는 성남시장을 두 번, 경기도지사를 한번 역임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을 선거구’야말로 그의 텃밭이다. 그런데 이곳을 피해 인천 계양을 선거구에 출마해서 당선됐다. ‘필사의 도피’가 아니었다고 할 것인가?
촛불로 자기 집을 태워버릴 수도
그는 이미 도망한 사람이다. 만약 민주당이 이 대표 체포동의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기로 당론을 정한다면, 그 이전에 이 대표 자신이 법원에 가서 영장 실질심사를 받기로 한다면 ‘도피 의심’을 면할 수 있다. 그게 아니라 체포동의안 부결을 당 차원에서 기도하고 있는 한, 그리고 27일 실제로 부결될 경우 이 대표의 그간 행각이 ‘도망’이었음을 본인은 물론 당 차원에서 인정하는 게 된다.
(그가 실제로 도망의 전력이 있다는 사실도 언론 보도로 드러났다. 과거 사회운동을 하던 시절 그는 구속을 피해 두 차례나 도망을 다녔다고 자서전에 자랑삼아 회고했다. 경찰 검문을 동생의 인적 사항을 이용해 넘겼다거나 연락해야 할 곳 모두 연락한 뒤 휴대폰 배터리를 제거했다는 등 수법도 예사롭지 않았다.)
그는 17일 당 국회 본관 앞에서 소속의원 및 당원 3000명(주최 측 추산)과 함께 ‘윤석열 정권 검사독재 규탄대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외쳤다.
그렇다면 그 대수롭잖은 권력을 쥐자고 그처럼 안간힘을 쓰고 온갖 무리를 저질렀다는 건가? 이 대표 자신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기에 대통령을 향해 ‘겁이 없다’라고 을러대는가.
말하자면 그의 규탄대회 격문이라 하겠다. 광화문 촛불집회의 추억을 되살리겠다는 의도인 모양인데 이건 위험한 선동이다. 촛불을 잘못 다루면, 정권 이전에 자기 집부터 잿더미가 된다는 것을 몰라서 그런 충동질인지 의아하다. 말만 번지레할 뿐, 인성에는 아무래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비유도 아주 어색하다. 촛불을 강물로 바꾸는 마술이라도 부리겠다는 건가? 이런 억지스러운 비유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떳떳하면 영장 실질심사 받으라
‘유검무죄 무검유죄’라는 말도 하던데, 이 대표만이 아니라 국민 대다수는, 그 표현대로라면 ‘무검’이다. 그는 검찰 소환에 응하기는 했지만, 날짜 시간을 자기가 일방적으로 정해서 갔다. 일반 피의자는? 천만의 말씀이다. 시키는 대로 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차별은 당연하다고 여기는가?
이 대표와 민주당 사람들이 얼마나 가식적이고 위선적인지는 너무 쉽게 간파할 수 있다. 그는 “10원 한 장 받은 바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지지자들은 그걸 앞세워 검찰을 공격한다. 10원은커녕 1원 한 장 받은바 없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이 대표가 그런 말을 해 준 적이 있었던가? 되레 ‘구속수사’를 압박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현직 대통령직을 박탈당하고 4년 9개월이나 복역해야 했던 박 전 대통령보다 이 대표 자신이 더 억울한가.
박지현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을 촉구했다고 해서 출당과 징계를 요구하는 당원 청원이 3일 만에 1만5000여명의 동의받았다고 한다. 당 대표는 무조건 면죄가 되어야 한다면 법이 왜 필요한가? 노무현 대통령의 홍보수석비서관이던 조기숙 교수가 이 대표더러 ‘영장 실질심사’를 받으라고 권했던데 이분에 대해서도 비난의 융단폭격을 가할 것인가?
어느 날 변방의 정객 이재명이 중앙 정치무대에 출현했다. 요즘 ‘도장 깨기’ 프로그램이 인기인 것 같던데 어쨌든 그도 주로 운(運)의 도움을 받고 또 경쟁자들을 격파하기도 하면서 당을 장악, ‘이재명가(家)’를 개창했다. 당주(當主)이자 당주(黨主)가 된 그는 들어올 때 매고 왔던 무거운 보따리 여러 개를 바닥에 내던지며 말했다.
“다들 이것들을 깨끗이 정화하시오. 그래야 여러분에게는 미래가 있게 될 거요.”
당 소속 의원들과 당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보따리를 풀어봤더니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온갖 부정·부패·비리 혐의라는 걸레들이 튀어나왔다. ‘이재명의 사건이 민주당의 사건’으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민주당 사람들은 그 빨래 해내느라 등골이 휘었다. 이 대표의 눈길도 무서웠지만 ‘개딸’들의 벼르는 소리가 더 두려웠다고 그때의 사람들은 숨죽여 토로했다. 군중은 그렇게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을 와해시켰다. 그리고 부활한 권위주의적 통치 권력에 자신들도 핍박받는 신세가 됐다. 살짝 들춰본 훗날의 ‘촛불국(國) 전설’이다.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