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9일 오후 이낙연 장인상 조문
선대위 해단 이후 13개월만의 대면
"위로와 귀국 이후 일정 물어보는 정도
정치적인 이야기를 할 것 같지는 않다"
더불어민주당의 잠재적 대권주자인 이낙연 전 대표와 이재명 대표가 13개월만에 대면한다. '한 산에 두 호랑이'의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이지만 상주와 조문객의 입장에서 만나는 것인 만큼, 당장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대화가 오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9일 오후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이낙연 전 대표의 장인 고 김윤걸 전 교수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전날 조문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재명 대표와 지도부는 내일(9일) 오후에 빈소를 찾고 조의를 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낙연 전 대표와 이재명 대표의 대면은 지난해 3월 이 대표의 대선 패배 직후 있었던 선대위 해단식 이후 13개월만의 일이다.
이 전 대표와 이 대표는 이른바 '산 하나에 호랑이 둘이 양립하고 있는 관계'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관측이다. 이 대표는 지난 2021년 경선에서 이 전 대표를 누르고 대선후보 자리를 차지한 뒤 지난해 대선에서는 석패했지만, 직후 치러진 8·28 전당대회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당대표로 선출돼 차기 대권주자의 입지를 굳건히 하고 있다.
이낙연 전 대표로서는 이재명 대표가 이같은 지위를 내려놓지 않는 이상, 운신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상황이다. 이 전 대표는 이 대표보다 11살이나 나이가 많아 '차차기'를 노릴 수도 없다. 또 4선 의원에 전남도지사, 국무총리까지 전부 지낸 이 전 대표는 대통령 외에는 도전할만한 다른 선택도 마땅치 않다. 이 대표와의 상생(相生)이 지극히 곤란한 형국이다.
김관옥 정치연구소 민의 소장은 "'사법 리스크'가 커져서 이재명 대표가 낙마하거나 사퇴한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이낙연 전 대표가 정치적 공간을 만들어낼 명분이 없다"며 "여러 분들과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하겠지만 뾰족한 수가 없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최병묵 시사평론가는 "이재명 대표가 당대표를 내려놓지 않고 버티는 한, 이낙연 전 대표가 움직일 공간은 없다"면서도 "이 전 대표가 들어올 7월 무렵까지 이 대표의 재판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없지만 2차 체포동의안은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경우에는 변수가 생길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러한 상황으로 볼 때, 이낙연 전 대표와 이재명 대표 사이에서 상주와 조문객으로서의 관례적인 대화 외에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대화가 오갈 것 같지는 않다는 관측이다.
장현주 민주당 법률위 부위원장은 "이재명 대표가 조문을 가서 당의 현재 상황이나 정치적인 이야기를 할 것 같지는 않다"며 "이낙연 전 대표도 지도부의 모습이나 민주당의 앞길에 대해 이재명 대표에게 직접적으로 얘기를 꺼내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이재명 대표가 조문을 가는 것이기 때문에 위로의 말씀을 나눌 것"이라며 "조문을 가서 위로하고, 6월말 이후에는 이낙연 전 대표가 한국에 귀국하니 이후 일정을 물어보는 정도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지 않겠느냐"고 부연했다.
민주당의 또다른 잠재적 대권주자로 전날 빈소를 찾은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이낙연 전 대표에게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지낸 근황을 묻고,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 정도의 대화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이낙연계 의원들, 공항 영접에 조문까지
"그냥 장례"…정치적 해석 극력 경계
상중이라 행보·메시지 절제 이어갈 듯
"6월말 귀국 이후 움직임이 더욱 중요"
이낙연 전 대표의 장인상으로 인한 일시 귀국을 계기로 민주당 이낙연계 의원들도 공항 영접과 빈소 조문 등으로 바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이러한 움직임이 세(勢) 결집 등 정치적인 의미로 해석되는 것은 극력 경계하고 있다.
이낙연계 좌장으로 불리는 5선 중진 설훈 의원을 비롯해 윤영찬·전혜숙·김철민·양기대 의원은 새벽부터 공항에 영접을 나갔다. 빈소에는 지난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수행실장을 맡았던 오영환 의원을 필두로, 노웅래·김민석·박광온·강병원·김병욱·김병주·김주영·이용선 의원 등이 조문차 방문했다.
이렇듯 이낙연계 의원들, 넓게 보면 비명(비이재명)계 의원들이 장소적으로 한 곳에 집결하고 있지만, 이것을 정치적인 '규합'으로 보는 해석에는 다들 선을 긋는 모습이다.
설훈 의원은 빈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월요일(10일) 출상(出喪)을 하고나면 약간의 시간이 있으니까 (이낙연 전 대표와 의원들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서둘러서 뭘하겠다는 생각은, 나라면 일체 그렇게 권하지 않겠다"고 잘라말했다.
박광온 의원도 "이것은 그냥 장례"라며 "그것(친이낙연계 규합)은 과잉 해석"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러한 반응도 당연한 것이 이낙연 전 대표의 이번 귀국은 엄연히 장인상을 치르기 위한 귀국이기 때문이다. 인륜에 따른 도리를 다해야 하는 시기에 어떠한 정치적인 움직임을 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것은 국민이 보기에도 바람직해 보이지 않을 것이니만큼, 철저히 행보와 메시지를 절제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장현주 부위원장은 "(이낙연 전 대표가) 장인상이라 사위로서의 도리를 다해야 하고, 상중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모습으로 비쳐지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라며 "상중에 (정치와 관련된) 그런 것을 꾀한다는 게 국민들 보기에도 좋은 모습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낙연 전 대표의 장인상은 오는 10일이 발인이다. 이 전 대표는 18일에 미국으로 출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주일 이상의 국내 체류 기간이 있는 만큼, 가족 외에도 오랫동안 못 봤던 이낙연계 의원들과의 회동도 어떤 형태로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장인상으로 인한 일시 귀국 중에 이뤄질 이번 회동에서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움직임이 도출될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오히려 6월말·7월초로 예상되는 영구 귀국 이후의 움직임과 함께 이재명 대표를 겨냥한 2차 체포동의안 상정 등 그 때의 정국 움직임을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관측이다.
박성민 전 청와대 청년비서관은 "장례를 다 마무리하고나서 한국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는 있을 것"이라면서도 "정치인들의 모임이라 정치적인 해석이 붙을 수 있지만, 정치적인 의미가 있는 자리라기보다는 가까운 분들의 식사 자리라고 해석하는 게 깔끔하겠다"고 말했다.
최병묵 시사평론가는 "이낙연 전 대표가 이른바 이낙연계 의원들과 만찬을 한다고 해도 무슨 이야기를 하겠느냐"며 "내년 총선을 '이재명 체제'로 과연 치를 수 있느냐 없느냐는 얘기를 이낙연 전 대표에게 하겠지만, 이 전 대표는 듣고만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현주 부위원장도 "비명계가 뭉친다고 보는 것은 섣부르다"면서도 "6월 이후에 들어오면 비명계가 이낙연 전 대표를 중심으로 다음을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은 남아있기 때문에, 귀국하고나면 그 움직임이 더 중요하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