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규 "코미디의 기본은 공감대"
"MZ들은 좋아할 것이다"
요즘 MZ들은 여기저기 소환돼 고통스럽다. 창작자들은 기괴하고 불쾌한 콘텐츠를 내놓고 공감 받지 못할 때 'MZ적 허용'을 들먹인다. 넷플릭스 '코미디 로얄'에 마스터로 출연 중인 메타 코미디 정영준 대표도 저질스러운 개그로 이경규에게 지적받자, 어김없이 MZ 핑계를 대며 "전국 노래자랑에 힙합을 들고 나온 건가" 싶었다고 포장했다.
넷플릭스가 새로 선보인 '코미디 로얄'은 코미디언 20인이 넷플릭스 단독 쇼 론칭 기회를 두고 나이, 경력, 계급장을 떼고 붙는 배틀 예능이다. 면면이 화려하다. 이경규, 탁재훈, 문세윤, 이용진 등이 출연해 팀을 이끈다. 함께하는 코미디언은 황제성· 이상준·곽범·이창호·엄지윤·김두영·신규진·최지용·이선민·조훈·이재율, 박진호 등이다.
대부분 유튜브에서 부캐릭터, 스케치 코미디 등으로 인기를 얻으며 개그계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이들로, 넷플릭스라는 제약 없는 환경 속 트렌드와 신박함을 주무기로 사용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모았다.
그러나 6편의 에피소드 중 가장 눈에 띈 건 정영준 팀의 곽범, 이선민, 이재율이 선보인 '숭간교미'였다. 좋은 의미가 아닌, 시대착오적인 저질스러운 코미디를 2023년에 넷플릭스에서 보게 될 지 몰랐다.
'숭간교미'는 다큐멘터리 속 원숭이들의 짝짓기 장면을 슬랩스틱으로 표현한 무대다. 이선민, 이재율은 원숭이 분장을 하고, 무리의 우두머리인 곽범이 보지 않는 사이에 몰래 교미를 한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는 보이지 않은 채, 무턱대고 교미 장면을 따라 하는 장면은 시청자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이를 지켜보던 이경규는 "나라 망신이다. 모니터 꺼라"라면서 못마땅해 하며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코미디의 기본은 공감대다. 슬랩스틱, 코미디, 연기가 하는 코미디가 있다. 성적인 걸 다루는 프로그램이었다면 화가 안 났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그리고 전 세계가 보는 프로그램이다. 선을 넘어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영준 대표는 반박했다. 그는 "MZ 세대는 다 좋아하지 않을까"라며 "모두에게 보여주는 코미디는 아무도 안 보는 코미디가 된다. 이경규 선배님이 활동하던 시대는 같은 코미디가 전달되어야 하는 시기였고, 지금은 자기의 취향을 따라 구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 더 재미있는 코미디를 만들 수 있다면 저희가 이 불편함을 넘으면서 선과 조금씩 싸워야 하는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방송 후 시청자들은 이경규 의견에 힘을 실었다. 새로운 걸 해내기 위해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고 했지만, 애초에 '숭간교미'의 마구잡이 교미 묘사는 공감도, 재미도 없었다는 평이다. 불편함과 불쾌함을 분간하지 못한 개그가 과연 개그라고 할 수 있을까. MZ를 언급하며 취향에 따라 구독하는 시대가 '숭간 교미' 존재 이유라면 메타 코미디 정영준 대표가 만들어가는 코미디의 세계는 뒷걸음질 치고 있다.
오랜 시간 개그 프로그램은 약자를 조롱 혹은 혐오하는 코미디를 두고 자정작용의 필요성을 느끼며 꾸준히 지양해 왔다. 유튜브에서 새로운 개그 생태계를 이룬 피식대학, 숏박스 등도 누군가를 기만하지 않고 공감대를 무기로 얻어낸 성과다.
숏박스, 박세미, 김해준, 이창호 등 잘나가는 개그 유튜버들을 보유한 코미디 레이블 대표가 MZ의 취향의 선택이라는 이유로, 자극적, 극단적으로 나아간다면 건강한 웃음 코드와는 거리가 멀어질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이경규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세대 갈라치기 하며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의 문제’로 치부하는 궤변 역시 역량을 의심케 만든다.
결국 '숭간교미'를 살린 건 정영준 대표도, 곽범·이선민·이재율도 아닌 이경규였다. 이경규가 원숭이로 분장하고 등장해 반전을 선사했다. 이경규의 기지와 센스로 누군가를 웃기는 일을 우습게 만들어버릴 뻔 했던 패착은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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