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육영수 여사 활동 뒷받침…'청와대의 야당' 역할도
"정치 직간접적 관여…'사심(私心)은 사심(死心)' 될 것"
대통령실이 영부인의 일정 등을 전담 관리하는 '제2부속실' 설치를 공식화한 분위기다. 총선을 앞두고 제2부속실 검토 카드를 꺼내 들면서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잡음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다.
역대 정부를 살펴보면 제2부속실로 흥한 사례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있다. 제 역할에 실패한 사례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제2부속실과 관련한 사례들을 갈무리해봤다.
청와대 제2부속실은 대통령 배우자의 활동 전반을 밀착 보좌하는 기구로 기능해왔다. 보통 △일정 및 행사 기획 △수행 △동선 △메시지 관리 등을 수행한다. 역대 정부의 제2부속실은 5명에서 10명 이내로 운영된 것으로 전해진다. 경호 인력은 대통령 경호처에 둔다.
제2부속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재임하던 1972년 7월 처음 만들어져 이명박 정부까지 40여년간 '제 역할'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당시 육영수 여사의 활발한 대외 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대통령 담당 1부속실과 배우자 담당 2부속실로 분리했다.
육영수 여사는 제2부속실과 함께 '양지회'와 '육영재단'을 구축하고, 사회 소외계층을 위해 많은 활동에 전념했다. 박 대통령에게도 올바른 직언을 마다하지 않아 '청와대의 야당' 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역대 정부에서 제2부속실이 국가 권력의 주요 역할을 맡는 경우,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실례로 전두환 대통령의 배우자 이순자 여사는 제2부속실을 통해 정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영부인 중 한 명이었지만, 사치스러운 모습으로 재임 기간 내내 잡음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남편과 나란히 대통령 취임식에 등장한 모습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지금과는 달리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의 영부인 이희호 여사 또한 제2부속실과 더불어 적극적인 정치 활동을 펼쳤다. '영부인'이라는 호칭도 '여사'로 바뀌었다. 여성 권익 향상을 위한 정책 제언으로 여성가족부를 신설했지만, 되레 현재까지 이어지는 존폐 논쟁을 낳았다.
역사적으로 영부인이 존재하지 않아 제2부속실의 역할이 모호했던 관계로 문제가 생겼던 적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 중 한 명이다. 배우자가 없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소외 계층을 위한 민원 창구'로 제2부속실을 유지했지만 '정윤회 문건 파문'으로 비선 개입 의혹이 불거졌다. 당시 제2부속실장으로 근무한 안봉근 전 비서관이 '국정농단'에 깊숙이 관여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받았다.
문재인 정부 때는 제2부속실을 다시 원래대로 운영해, 제2부속실장(1급 비서관)을 포함해 4명이 김정숙 전 여사를 보좌했다. 하지만 김 여사의 오랜 단골인 의상 디자이너의 딸이 제2부속실 행정관으로 임용되며 논란이 됐고, 의상 비용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관련 의전 비용이 불투명해 눈총을 받았다. 제2부속실이 쟁점의 한가운데에 선 셈이다.
윤석열 정부는 제2부속실의 구심점을 현재 운영되는 '배우자팀'으로 삼아 향후 운영할 계획이다. 제2부속실 설치 검토가 마무리되면 제2부속실장 인선 작업에도 착수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제2부속실 설치 검토에 "공감한다"며 "그 과정에서 당이 도울 일이 있다면 착실하게 돕겠다"고도 밝혔다.
정치권 관계자는 "대통령 영부인의 정치적 역할은 매우 크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비공식적으로 정책결정 과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독자적인 활동을 통해 정치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다"며 "'사심(私心)은 사심(死心)'으로 이어진다. 제2부속실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