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2021년 전 연인 집 찾아가 공동현관 출입…대법 "주거침입죄 성립"
법조계 "공동현관, 넓은 의미의 주거 포함…거주자 허락 없이 출입 시 불법"
"일반인 출입 허용된 상가건물은 성립 안 돼…공동주택, 사생활 보호 필요성"
"기존 법리 재확인 판결…'무죄' 선고한 2심은 이례적, 유지됐다면 처벌 공백"
별도의 잠금장치가 없는 개방된 공동현관이라고 해도 무단 출입하면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조계에선 집 내부가 아닌 공동현관도 넓은 의미의 주거에 해당하기에 개방 여부와 별개로 거주자 허락 없이 출입했다면 '주거의 평온'을 해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기존 법리를 충실하게 재확인한 대법과 달리 항소심의 무죄 판단은 이례적이라며 판결이 뒤집히지 않았다면 처벌 공백이 생겼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된 안모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최근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안씨는 2021년 6월 헤어진 연인이 사는 다세대주택에 세 차례 찾아간 혐의를 받았다. 집 안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공동현관을 지나 현관문 앞까지 접근했고 두 차례 물건을 놓아두기도 했다. 1심은 안씨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공동현관에 잠금장치나 경비원이 없어서 실질적으로 외부인의 무단출입을 통제·관리하지 않고 있어서 공동현관에 들어간 것만으로 처벌하기 어렵다"며 무죄로 판단을 뒤집었다. 판단은 대법원에서 다시 엇갈렸다. 대법은 "공동현관 등은 거주자들의 확장된 주거 공간으로서 성격이 강해서 일반 공중에게 개방된 상가나 공공기관 등과 비교할 때 사생활 보호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큰 곳이다"고 했다. 아울러 안씨가 출입한 목적과 이후 행위 등에 비춰 볼 때 대법원은 주거의 평온을 해치는 주거침입으로 보기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정구승 변호사(법무법인 일로)는 "건조물에는 집 내부 뿐 아니라 그에 부속하는 '위요지'도 포함된다. 위요지란 건조물에 인접한 그 주변의 토지로서, 외부와의 경계에 담 등이 설치돼 건조물 이용에 제공되고 또 외부인이 함부로 출입할 수 없다는 점이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나야 한다"며 "아파트나 오피스텔 등 공동주택 내 공동현관, 복도, 계단, 엘리베이터 모두 넓은 의미의 주거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정 변호사는 그러면서 "경비원이나 잠금장치의 존재 여부와 관계 없이 애초에 허락된 공간이 아니고 '외부인은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문도 붙어 있었다면 주거침입이 성립할 수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임예진 변호사(아리아 법률사무소)는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한다고 해서 당연히 모든 외부인이 출입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물품을 전달하는 택배기사나 배달원, 허락을 받고 놀러 온 지인 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그러나 불법적인 행위나 범죄를 저지르기 위한 의도를 갖고 들어왔거나, 현재 그 주택에 거주하는 사람의 명시적 내지는 묵시적 의사에 반해서 들어왔다면 주거침입죄가 성립된다"고 전했다.
이어 "대법은 기존 법리나 쌓여온 판례에 충실한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이나 무죄 판단을 내린 항소심의 판단은 이례적이고 위험해 보인다"며 "도어락이나 경비원이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로 본다면 처벌 공백이 생길 수 있고 자칫 다른 거주자들의 주거 평온도 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안영림 변호사(법무법인 선승)는 "공동주택의 공용 부분은 주거침입죄 객체에 해당하는데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상가나 공공기관과 달리 공동주택의 경우 공동현관이라고 하더라도 사생활 및 주거 평온 보호 필요성이 크다"며 "공동 현관이 열려 있었다고 해도 외부인 출입을 금지하는 조치 및 표식이 있는 상태에서 외부인이 공동현관에 출입했다면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고 전했다.
이어 "일반인 출입이 허용된 상가 등의 경우 통상적인 방법으로 출입한 경우에는 건조물침입죄가 성립하지 않지만 공동주택은 더욱 사생활 및 평온을 보장 필요성이 높으므로 주거침입죄 성립을 인정한 것이다"며 "대법원 판결은 타당해 보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