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중 생식기능 잃은 여성, 행정소송…법원 "남성과 같은 장해등급 부여 타당"
법조계 "장해등급, '고환 상실'만 장해로 인정…60년 전 남성 중심 입법의 한계"
"난소부전, 생식기능 잃는 중한 장해…여성 노동 중요성 커진 만큼 기준 개선돼야"
"입법 미비점 보완하고 당연한 권리 찾아준 판례…성차별적 입법자 시각도 개선"
오랜 공장 근무 탓에 생긴 난소질환으로 생식기능을 잃은 여성에게 남성과 같은 장해등급을 부여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조계에선 현행법상 남성의 고환 상실만 7급 장해로 인정하고 있고 여성의 난소질환 관련 기준은 없으 둘 다 생식능력이 정지되는 질병인 만큼 같은 등급으로 분류하는 게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국내 장해등급 기준이 60년 전 육체 노동을 주로 하던 남성 중심으로 마련된 까닭에 여성에 대한 입법이 미비한 것이라며 시대에 맞는 새로운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9-2부는 A(41)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장해등급결정 처분 취소 소송에서 지난달 22일 공단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고승소 판결했다. 앞서 A씨는 2003~2012년 공장에서 근무하다 재생불량성 빈혈을 얻었고 이후 치료 과정에서 조기난소부전, 비장절제술로 인한 비장결손 등 후유 질환을 얻었다. 조기난소부전은 이른 시기에 난소 기능이 떨어져 임신 능력을 잃는 병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은 남성이 양쪽 고환의 기능을 상실한 경우 장해등급 7급을 인정하지만 조기난소부전 등 여성이 생식기능을 상실한 경우에 별도의 장해등급 기준이 없다. 이에 근로복지공단은 A씨를 장해등급을 '비장 또는 한쪽의 신장을 잃은 사람'에 해당하는 8급으로 결정했고 A씨는 자신의 장해등급을 7급으로 인정해달라고 행정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고환의 상실은 물리적 상실뿐 아니라 생식능력을 상실한 사람도 포함되는 것"이라며 "난소의 경우도 기능적 상실에 대해 7급을 부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김소정 변호사(김소정 변호사 법률사무소)는 "장해등급 7급은 고환의 물리적 상실과 생식능력의 상실을 기준으로 판단되고 있는데 조기난소부전은 35살 이전에 폐경과 유사하게 난소 기능이 정지되는 질병으로 장해등급 7급을 정하는 기준과 별반 다를 바 없다"며 "일본에서는 이미 난소상실과 고환 상실을 같은 등급으로 분류하고 있고 미국에서도 고환, 난소 구별없이 기능 상실에 따라 장해등급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 등이 판단의 근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 부여하고 있는 장해등급 기준이 60여년 전 육체 노동을 하는 남성을 중심으로 정해져있기에 여성의 경우 기준 마련이 미비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우리사회에서 여성의 육체노동 빈도나 강도,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시대에 맞는 여성 장해등급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점을 보여준 판례이다"고 강조했다.
전문영 변호사(법무법인 한일)는 "해당 판결은 장해등급을 정할 때 생식 능력의 상실 여부를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이 입법자의 의사라는 판단하에 여성의 생식기능 상실을 고환 상실에 준한다고 보고 장해등급 7급을 인정한 것이다"며 "관련 법령이 여성에 대한 기준을 규정하지 않은 것은 입법의 미비로 보이고 해당 판결은 이러한 입법의 미비를 보완하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고 전했다.
김희란 변호사(법무법인 리더스)는 "입법자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입법의 사각지대가 발견이 됐고 이를 법원이 해석을 통해서 보충을 해줬기에 법률의 개선 여지는 충분하다"며 "해당 법률이 그동안 남성의 육체 노동에만 초점을 두고 있었다면 이번 판결을 통해 성차별적인 입법자의 시각을 개선했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엄정숙 변호사(법도 종합법률사무소)는 "만약 난소부전이 발병한 근로자가 가임기를 훌쩍 넘긴 여성이었다면 다른 판단이 나왔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사안의 경우 A씨가 아직 가임기 여성이었기에 이른 나이에 난소부전에 따른 생식기능 상실이 더 큰 문제로 여겨졌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조기난소부전이 흔하게 발생하는 질병은 아니기에 애초에 장해등급 입법 단계에서 누락됐을 가능성도 있다"며 "장해등급표에도 없던 기준을 인정해준 만큼 여성의 새로운 권리를 찾아준 판례이다. 나아가 향후에는 유사 사례 발생 시 적극적으로 피해 상황을 어필해서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