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가 재미 본 배터리, 현대제철이 안하는 이유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입력 2024.03.27 11:44  수정 2024.03.27 14:25

현대제철은 현대차그룹 철강 계열사…자체 신사업 전략 한계

포스코그룹 아닌 철강회사 포스코와 같은 포지션

불안정한 재무구조도 신사업 추진 한계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왼쪽)과 서강현 현대제철 사장. ⓒ포스코홀딩스/현대제철


“철강 본원 경쟁력 강화에 집중하는 전략을 수립, 운영하겠다. 비철 소재 사업 확대는 현재로서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


지난 26일 현대제철 정기주주총회에서 서강현 현대제철 대표이사 사장은 배터리 소재 등 신사업 전략 추진 여부에 대한 질문에 이같이 잘라 말했다. 다른 분야에 눈 돌리지 않고 본업인 철강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불과 5일 전 포스코홀딩스 주총에서 있었던 장인화 신임 회장의 ‘철강, 배터리 소재 쌍두마차 초일류 육성’ 발언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레드오션화와 환경 이슈로 철강산업의 지속성장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시점에서 국내 양대 철강기업이 서로 다른 대응 전략을 내세운 것이다.


포스코그룹은 그동안 ‘본업’인 철강을 벗어나 배터리 소재와 친환경 에너지 등 미래 성장사업 포트폴리오 구축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고, 상당한 성과를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배터리 핵심소재인 양극재의 경우 원료 확보부터 가공, 소재생산까지 풀 밸류체인을 갖추며 국내 배터리 산업 생태계의 핵심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현대제철 주총에서 ‘포스코 모델을 따를 계획이 없느냐’는 질문이 나온 것도 이를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서강현 사장의 판단은 외부의 시각과는 달랐다.


업계에서는 두 기업의 태생적 차이, 그리고 두 최고경영자(CEO)의 권한의 차이가 미래 대응 전략의 차이로 이어진 것으로 본다.


포스코는 태생 자체가 철강기업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철강이 무너지면 생존이 불가능한 기업이었다.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해서는 철강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에도 대응해야 했지만, 철강 이외의 산업군으로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는 노력 역시 필요했다.


그 결과물이 포스코홀딩스 산하에 철강회사 포스코, 배터리소재 기업 포스코퓨처엠, 트레이딩‧자원개발 기업 포스코인터내셔널 등이 포진한 지금의 포스코그룹이다.


철강회사 포스코는 당연히 철강 본연의 경쟁력 강화에 주력해야겠지만 다른 계열사들을 포함한 포스코그룹 전체가 철강에 집중할 이유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현대제철은 다르다. 현대자동차그룹 내 철강 계열사다. 포스코그룹 내 철강회사 포스코와 같은 포지션이다. 더구나 그룹 내 포지션은 완성차 계열사인 현대차와 기아에 자동차용 강판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역할이다. 철강 본연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래 환경규제에 대응해 생존을 모색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미래 성장사업 전략은 현대차그룹 차원에서 구상한다. 현대제철에게는 그 구상 내에서 일정한 역할이 주어지겠지만, 현대제철 자체적으로 미래사업 중심의 경영전략 변화를 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령 현대차그룹이 배터리나 배터리 소재의 자체 생산에 나선다고 해도 그걸 담당하는 계열사는 현대제철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서 사장은 주총에서 현대차그룹의 수소생태계 총괄CFT 참여를 통해 그린스틸 부문에서 협업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그룹에서 추진 중인 UAM, 로봇 등 미래모빌리티 소재와 관련해서도 협의를 추진중이라고 했다. 결국 현대제철의 역할은 현대차그룹 내 소재공급 계열사에 국한되는 것이다.


현대제철의 재무구조가 자체적으로 신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할 만큼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서 사장은 현대차 CFO(기획재경본부장) 출신이다. 새로운 사업을 벌이기보다는 회사의 재무구조를 안정시키는 게 현대제철을 이끌게 된 그의 미션이라고 볼 수 있다.


서 사장이 배터리 소재 사업 진출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배터리 쪽이 유력하지 않느냐는 지적들이 있지만 막대한 투자를 필요로 하는 만큼 리스크가 크다. 9조7000억원 가량의 외부 차임금이 있는 상황에서 재무구조를 위협하는 미래투자를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고 언급한 것도 이같은 형편을 반영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대제철은 태생적으로 현대차‧기아에 강판을 자체 수급하겠다는 정몽구 명예회장의 염원이 탄생시킨 기업”이라며 “완전 자율주행 등으로 자동차에 철강 소재가 필요없어지는(충돌 위험이 사라지면서) 등의 극단적 변화가 있지 않는 한 철강 본원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는 게 현대제철의 역할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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