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탄핵 사태 속 원화 가치 급락
미세조정으로 달러 풀어도 '널뛰기'
기준금리 조정·통화스와프도 제한
길어지는 정치 불안에 위기감 고조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환율이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 치솟는 환율을 진정시키기 위해 외환당국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서서히 한계에 봉착하면서 진퇴양난에 빠진 모습이다. 정국 불안으로 원화 가치가 급락하자 시장에 달러를 직접 푸는 미세조정에 직접 나섰음에도 원·달러 환율은 좀처럼 잡힐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이밖에 쓸 수 있는 카드인 구두 개입이나 기준금리 조정, 통화스와프 등으로도 현재의 위기를 잡기 힘든 만큼 결국 정치적 안정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430원을 오르내리다 1426.9원에 주간 거래를 마감했다. 지난 9일에는 전 거래일 보다 17.8원 오른 1437.0원으로 주간 거래를 마감했다. 이는 종가 기준으로 2022년 10월 24일 1439.7원을 기록한 이후 약 2년 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문제는 외환당국의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등 정치적 불안에 환율이 치솟자 미세조정에 나섰음에도, 이처럼 시장은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미세조정이란 중앙은행이 환율 변동을 둔화시키기 위해 시장에 가하는 조치로, 환율이 급등할 경우 달러를 팔고 원화를 사들여 원화 가치를 상승시킨다.
앞으로는 미세조정에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을 앞두고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재지정됐기 때문이다. 미국은 매년 4월과 10월 두 차례에 거쳐 거래하는 국가의 외환시장 개입 수준에 따라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한다. 그 정도가 심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는데, 그 경우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에 제약이 발생하게 된다.
더욱 염려스러운 건 현재로서는 외환당국이 시장에 추가로 개입할 마땅히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외환당국이 시장에 개입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낮은 수위대로 구두개입과 기준금리 조정, 통화스와프가 있다.
현 시점에서 구두개입은 그 영향력이 제한적이다. 구두개입은 미세조정 등 실제 개입과 달리, 시장에 개입하겠다는 메시지를 통해 환율 급등락을 줄이는 정책수단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 계엄 선포가 있기 전, 미국 대선 충격으로 인해 원·달러 환율이 급등세를 보이자 이미 외환당국은 구두개입에 나선 바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당시 "미국 신정부의 정책기조 변화와 함께 세계경제 성장·물가 흐름, 주요국 통화정책 기조와 관련해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다"며 "관계기관 24시간 합동점검체계를 중심으로 각별한 긴장감을 갖고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환율은 진정세를 보이기도 했다.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방식으로 원화 가치를 끌어 올리는 방안도 제기되지만 가능성이 희박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현재 기준금리를 연이어 두 차례 내리며 기준금리 인하 기조에 속도를 붙이고 있는데, 환율을 조정하기 위해 통화정책을 급히 유턴하기엔 리스크가 따르기 때문이다.
통화스와프를 통해 원화 가치를 올리는 것을 기대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글로벌 경제위기 등 국제적인 이슈가 아닌 우리나라 내에서의 정치적 이슈다 보니, 미국 등 상대국이 통화스와프를 체결해주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해석이다.
통화스와프란 양 기관이 일정 기간 서로 다른 통화를 맞교환하는 것을 뜻한다. 한미 통화스와프가 이미 끝난 상황에 다시 이어가기엔 탄핵 정국 속에서 이를 주도에서 이끌어갈 실무자가 부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이대로 정국이 수습되지 않고 불안이 장기화하면, 외환당국으로서도 치솟는 환율을 잡을 마땅한 수단이 없다고 지적한다. 결국 정치적인 안정만이 불안한 금융 상황을 잠재울 수 있단 얘기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의 개입으로 인해 환율을 큰 폭으로 뛰는 것을 막을 수는 있지만, 최근 달러 매도 추정 개입에 우리나라 환율 방어막인 외유고도 충분하지 않다"며 "결국 정치적 안정을 되찾아야 해결될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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