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거론되는 한국GM 철수설
판매 위기에 트럼프 리스크 덮쳐
한국서 美 수출물량 80% 이상… 관세 직격타
산은과 약속도 마무리… 못떠날 이유 없다
#포지티브적 해석: 자국 업체 살리기 위한 트럼프 정부의 '관세 인심'을 기대해 보자
#네거티브적 해석: 갑자기 떠난 대도 더이상 협상할 카드가 없다
누군가에겐 지엠대우로, 누군가에겐 쉐보레로 각인됐을 텐데요. 오늘은 한국GM이라는 자동차 업체 얘기입니다. 그동안 이름은 몇차례 바뀌었더라도 한국에서 이제는 꽤나 긴 역사와 높은 인지도를 갖게 된 업체인데, 요즘 한국GM이 국내 시장에서 철수할 것이라는 '설'이 돌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GM의 철수설이 돈 게 하루이틀 얘기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번엔 분위기가 좀 심각한데요. 늘상 있던 한국GM의 위기설이 왜 갑자기 심각해진 건지, 우선 과거의 내막부터 천천히 되짚어보는게 좋겠습니다.
한국GM은 사실 한국에서 나가려다 붙잡힌 전적이 있는 업체입니다. 지난 2018년, 한국GM이 군산공장을 철수하면서 하루아침에 군산의 상권이 죽어버리고 대량의 실업자가 발생한 일을 기억하시나요.
군산공장 매각은 적자행진의 결과물이었는데요. 2013년 미국 GM 본사가 유럽시장 철수를 선언함에 따라 유럽으로 수출하던 모델을 주력으로 생산하던 군산공장의 수출길이 막혔던 겁니다. 공장 라인은 계속 돌리는데, 수요는 자꾸 떨어지고, 차가 아무리 안팔려도 근로자 월급은 줘야하니 적자가 늘어났던 거죠.
미국 GM 본사는 당시 군산 공장 철수 뿐 아니라 한국 시장에서도 발을 빼려고 했었는데요. 당장 군산공장 철수만 하더라도 실업자가 대량 발생했는데, 한국GM이 아예 발을 빼버리면 경제적 타격이 커질 거라 우려한 정부가 8100억원을 투입하기로 합니다. 대신 이를 조건으로 '신차 2종을 개발해 생산할 것'을 약속 받죠.
이 약속의 결과물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쉐보레 트레일 블레이저'와 '쉐보레 트랙스 크로스오버'입니다. 실제로 한국에 있는 연구개발 법인 GMTCK(GM테크니컬센터코리아)에서 두 차량의 개발을 담당했고, 개발 이후엔 전세계 중 한국에 있는 공장에서 유일하게 생산을 도맡았는데요. 수익성 개선과 함께 제 2의 전성기를 이끌었죠.
한국을 떠나지 않는 조건으로 한국 정부와 약속했던 2개의 차종을 모두 생산했고, 이제 8100억원의 빚에 대한 책임은 모두 내려놓을 수 있게 됐습니다. 다시 말하면, 한국에서 신차를 만들기 위해 투자할 의무 또한 없어진 거죠.
이제 한국GM이 한국에 오래도록 남아있게 만드는 건 미국 GM본사가 '한국은 돈이 되는 시장이다'라는 것을 자각해야만 가능합니다. 한국에 지어놓은 공장에서 생산될 신차를 추가로 개발하고, 비용 투입을 결정해줘야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쉐보레 트랙스 크로스오버가 나온지 벌써 2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신차 개발은 감감 무소식인 상황입니다.
신차 개발 의지는 딱히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기대할 실마리는 있는데요. 한국GM이 철수하기 어려운 마지막 카드가 하나 있습니다. 트레일 블레이저와 트랙스 크로스오버의 인기가 한국에선 이미 한참 전에 식었지만, 미국에서의 수요가 여전히 어마어마하거든요. 한국에서 장사가 안돼도, 한국에 있는 공장에서 열심히 차를 만들어 미국에 내다 팔면 되는 겁니다.
실제로 한국GM이 미국에 수출한 자동차는 작년에만 42만대에 달하는데요. 한국에서 굳이 신차 개발 비용을 투입하고, 그 비용을 메우기 위해 애쓰느니, 이미 개발이 완료된 두 차종을 미국으로 최대한 수출해 수익을 높이는 방법을 택한 겁니다. 일종의 생산기지인 셈이죠. 한국 소비자들로선 신차가 등장하지 않아 아쉽기는 하지만, 고용이 유지되고 대미 수출량도 높여주니 한국 경제에는 어찌됐든 이득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또 한번 위기가 찾아왔는데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등장한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외산 자동차를 미국에 수입해 들여올 때 관세를 25% 수준으로 매기겠다고 엄포를 놨는데요. 우리는 국내 기업인 현대차·기아가 받을 영향에 집중하고 있지만, 사실 진짜 큰 문제는 한국GM입니다. 한국GM의 철수설이 이번엔 심각하다고 한 이유를 이제 아시겠죠.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산 자동차에 25%의 관세부과를 확정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동안 FTA가 체결돼있어 한국에서 만든 차를 관세없이 미국에 수출하며 수익을 챙겨왔던 한국GM으로선 존재 이유가 사라지게 되는 건데요.
25%가 아니라, 10%만 부과한다해도 충격은 큽니다. 한국GM이 수출하는 차들이 고가 차종이 아니기 때문에 많이 팔아야 남는 구조거든요. 단적으로 한국GM이 한국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자동차 1대당 가격을 3000만원이라고 가정할 때, 10%의 관세 부과 시 대당 약 300만원에 달하는 부담을 감수하게 됩니다. 작년 미국 수출량인 42만대에 적용하면 관세부과로 1조2600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셈이죠.
미국의 전통 업체인 GM이, 미국 대통령의 입김으로 한국사업을 접을 위기에 처한 건데요.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이 '관세 0% 유지'가 아니라면, 철수 가능성은 확실히 높아질 겁니다. 과거 군산공장 당시처럼 수익 악화로 떠나는 게 아니니, 당장 철수를 결정한다 하더라도 한국 정부에서 막을 방법이 뚜렷하지도 않죠.
군산공장 철수 당시 군산이라는 도시가 황폐해질 정도로 그 여파는 컸습니다. 하루아침에 군산공장에서 일하던 수천명의 직원이 일자리를 잃었고, 이들을 상대로 장사하던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았죠. 미국 수출로 꽤나 짭짤한 수익을 올리던 한국GM의 속내도 그리 즐겁기만 한 건 아닐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고 있어야하는 상황이 애석하기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