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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P THE HATE [기자수첩-정치]


입력 2025.03.17 07:00 수정 2025.03.17 07:00        김민석 기자 (kms101@dailian.co.kr)

'尹 탄핵 선고' 다가오자 여야 지지자 결집

결과 따라 응축된 증오, 분노로 바뀔 가능성

민주주의 속 폭력·강제력은 힘 없어…상대

향한 증오 멈추고, 정치인들 언동 조심해야

15일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왼쪽)와 같은 날 서울 종로구 경복궁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야5당 공동 비상시국 대응을 위한 범국민대회'(오른쪽)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2004년 영화 '호텔 르완다'는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르완다 내전'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 내에서도 설명이 나오지만 르완다 내전은 벨기에 식민지 시절 다수파 피지배계급이던 후투족이 소수파 지배계급인 투치족에게 갖고 있던 분노와 증오가 터지면서 발생한, 정치적인 이유로 설계된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다.


참혹한 동족상잔 내용을 다루는 만큼 이 영화 속 대사들은 시청자 마음을 때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영화 내에서 기자 마음을 가장 먹먹하게 했던 문장은 실제 내전 당시 한 소년의 입에서 나왔던 한 문장이었다. 그 문장은 자신을 죽이려 하는 후투족 게릴라를 향해 애원하는 한 소년의 입에서 터져나온 "다시는 투치 안 할게요. 살려주세요"다.


사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정치적으로 설계된 내전의 아픔을 찾기 위해 머나먼 르완다 사레를 떠올릴 필요가 없다. 1950년부터 1953년까지 3년간 겪은 6·25 동족상잔이 가슴 속에 남긴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으니 말이다. 6·25 이후 지속된 남북간의 정치적 긴장감은 또 다른 피해자를 계속해서 만들어냈다. 1968년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 했다고, 북한 무장공비에게 9살의 나이에 처참하게 죽음을 당한 고(故) 이승복군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2025년 현재, 우리나라가 이런 아픔을 다시 겪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단 점이다. 여의도와 광화문을 비롯해 최근 정치 이슈가 몰린 곳을 찾게 되면 벌써부터 '증오'가 응축돼 있단 느낌을 쉽게 받을 수가 있어서다. 이미 국민들도 알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을 판결하는 그날이 바로 이 증오가 폭발하는 날임을 말이다. 탄핵심판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이들은 증오를 폭발시키려 할 것이다. 이 경우 폭발한 증오는 분노로 모습을 바꿔 정치적 이념이 다른 이들을 공격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증오를 만든 가해자는 정치인들이다. 그것이 설령 어떤 이유이건 간에 국회에서 여야는 지속해서 갈등을 빚으면서 국민들을 양극단으로 몰아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거대 의석을 차지하고,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29번의 탄핵소추안을 강행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도 믿기지 않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인과관계를 따질 필요도 없이, 이 모든 증오의 말과 행동은 정치인들이 빚어낸 것이다.


피해자는 국민이다. 점점 어려워지는 살림에 허덕이던 국민들은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에 영향을 받아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신뢰하기도 어려워진 국가 수사 기관들과 사법부의 행태로 국민들은 분노를 머금은 채 양 집단으로 갈려 집결한 상태다. 어느 쪽이든 한 번의 불꽃만 튀면 "다시는 ○○○ 지지 안 할게요"라거나 "나는 ○○○이 싫어요"라고 하는 소년의 부르짖음을 2025년 대한민국에서 들을지도 모른다.


더 큰 문제는 그 이후다. 탄핵 심판이 어떻게 결론이 날지 미지수지만, 만약 조기대선 정국이 펼쳐진다면 우리나라는 더 큰 혼란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번 대선을 관통하는 한 단어가 바로 '증오'일 것이 너무나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겨냥해 시작된 증오의 눈길은 이미 그 주변으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국민의힘 정치인들을,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민주당 정치인들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미 '내전'이나 '암살'이란 단어를 공공연히 사용하면서 상대를 향한 분노를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런 분노와 증오를 가슴에 품은 국민들 앞에 설 차기 대권 주자들이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그 누가 확신할 수 있겠나.


민주주의가 아름다운 것은 정치인에 대한 평가를 '표'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분노·증오 등의 감정을 가지더라도 폭력이나 강제력은 민주주의에서 힘을 발휘할 수가 없다. 정치인들이든, 국민들이든 그 누구든 좋다. 정치적 신념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고 그 신념을 표출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본인들의 자유다. 하지만 그 표출이 물리적으로 발휘될 수 있단 우려를 조금이라도 하고 있다면 이젠 정말 "증오를 멈춰달라.(STOP THE H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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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기자 (kms10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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