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북한 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헌법에 따라 북한 주민의 삶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대한민국만이 한반도의 유일한 정통성 있는 정부임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유엔에 남북이 동시 가입하고 있는 현실에서 대한민국만이 한반도의 유일한 정통성 있는 정부라고 주장하기에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 대한민국이 한반도 모든 주민의 삶과 인권에 관심을 기울이는 유일한 정부임을 실천하면서, 북한 주민이 이를 체감하도록 해야 한다.
북한 주민이 북한 정권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희망을 품도록 해야 한다.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과 복지는 정치 공학적 사안이 아니다. 북한 주민의 삶에 정치 기술적으로, 정치 술수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북한 독재자와 관계를 먼저 좋게 만들고 북한 주민의 삶을 천천히 개선하겠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북한 주민의 삶을 처음부터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 대통령 임기는 5년이다. 처음부터 대한민국 헌법에 따른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언제 말한다는 말인가.
대통령이 자신과의 만남, 국내 정치적 성과를 위해 굽히고 들어가면 북한 독재자는 대통령이 뱉은 말과 행동을 철저히 이용해 발목을 잡을 것인데, 언제 어느 때 북한 주민의 인권을 얘기할 수 있겠는가.
그런 대통령을 북한 독재자는 얼마나 우습게 보겠는가. 대통령이 독재자의 눈치를 보는데 장관들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눈치를 살피며 비위를 맞추려는 대통령조차 가볍게 보는 독재자가 남쪽 장관들을 얼마나 업신여기겠는가.
상징적이고 전형적인 사례가 김정은-문재인이었다. 이를 반복해서야 되겠는가.
국민에 의해 선거된, 헌법적 절차에 의해 당선된 대한민국 대통령이 북한 주민이 인류 보편적 가치를 누리도록 당당하게 북한 독재자 앞에 나서야 한다. 독재자가 반발하더라도 이런 원칙을 지키고, 다음 대통령과 정부에도 이어지고 지속되어 북한 독재자가 변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를 지켜보는 북한 주민이 대한민국, 대통령과 정부를 자신의 희망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다섯째, 북한 주민의 눈과 귀를 열게 하고, 우리 마음을 전하는 대북정책을 펼쳐야 한다. 북한 주민이 자신의 체제와 삶을 바깥 세계와 비교하고,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도록 그들의 눈과 귀를 열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접촉과 교류 협력을 부단히 추진해야 한다. 우리의 압도적인 경제력을 바탕으로 남북경협을 해야 하고, 사회문화 교류 협력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경협은 우리 경제에도 도움이 되고, 사회문화 협력은 이질성을 극복하고 동질성을 높일 수 있다.
다만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대북 국제제재가 실행되고 있는 현재의 시기에는 국제제재의 틀 내에서 해야 한다. 남북 경협이나 교류 협력이 ‘퍼주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국민과 국제사회가 지지할 수 있는 내용과 방법으로 추진해야 한다. 북한 주민의 삶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내용과 방법으로 추진해야 한다.
현금 지급은 최대한 줄이고, 북한 주민에 도움이 되는 현물 지급이나 청산결제를 활용해야 한다. 이벤트성이나 일회성이 아니라, 북한과 협정을 체결해 교류 협력을 제도적으로 안정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북쪽 땅에서만 이루어지는 경협만을 지속해서는 안 된다. 좋게 말해 ‘분단 관리형 교류 협력’이라 할 수 있지만, 북한 독재 체제를 강화하는 ‘분단 고착형 교류 협력’이 되기에 십상이다.
DMZ를 가운데 두고 남북 접경지역에 함께 동시에 이루어지는 호리병 형태의 교류 협력이 되어야 한다. 인력과 물자가 국제사회와 함께 남북을 오르내리는, 남북 주민이 남북쪽 땅에서 함께 어우러지는 ‘통일 지향 교류 협력’이 펼쳐져야 한다.
그러할 때 한반도 평화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 북한이 자의적으로 임으로 문을 닫을 수 없을 것이다. 북한 주민에 다가갈 수 있는, 그들의 눈과 귀를 열 수 있는 통로와 공간이 될 수 있다.
주체 경제의 구조적 문제, 대북 국제제재, 자신의 판단·정책 실패로 경제위기는 물론이고, 주민 의·식·주도 해결할 방법도 능력도 없는 김정은을 상대로 이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고,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한편 적절한 투명성을 전제로 북한 주민에 도움이 되는 인도적 지원은 과감하게 실행해야 한다.
교류 협력은 물론이고 대화까지 꽉 닫힌 현 상황에서도 북한 주민에 다가가야 한다, 다가갈 수 있다. 사이버 공간, 북한이탈주민,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 인권 증진 등 다양한 접근방법이 있다.
문제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통일 의지를 가지지 않는 것이다.
여섯째,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을 채워가야 한다. 북·미 대화가 없어서 핵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것이 아니다. 1993년 1차 핵 위기 시작 후 수많은 북·미 대화하였으나 실패했다.
이는 핵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려는 북한에 주된 귀책 사유가 있으나, 미국에도 책임이 있다.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국가이익이 우리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대화는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필요조건도 아니다. 네 가지 필요조건 중의 하나일 뿐이다.
두 번째 필요조건은 핵 초강대국이면서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고,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중심국이면서 6자회담 당사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가 북핵 해법에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상황이다.
현재의 세계정세에서 이를 노력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다. 미국, 북핵 완전 폐기에 우리와 의견을 같이하는 일본, 그리고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영국, 프랑스 등과 함께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당면 목표다.
세 번째 필요조건은 강력한 대북 제재의 유지다. 이를 위한 전제는 우리의 북핵 문제 평화적 해결 원칙이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 및 NPT 준수, 주한미군 전술핵무기 배치 혹은 자체 핵무장을 자제하고 이를 근거로 국제사회에 대북 제재의 강화·지속을 요구해야 한다(“남한의 핵무장, 김정은의 노림수다,” 중앙일보, 2022.10.26; “김정은이 ‘남한의 핵무장화’를 노린다?,” 최보식의 언론, 2022.10.15.).
네 번째 필요조건은 윤석열 정부가 만들어간 확장 억제력을 유지하고 구체화하는 일이다. 한·미·일 안보협력도 마찬가지다
.
이상의 필요조건과 동시에 ‘충분조건’을 만들고 채워야 한다.
‘북핵 폐기 충분조건’은 북한 주민이 핵무기를 반대하는 상황이다. 핵무기가 자신들의 행복이 아니라 불행임을 깨닫는 것이다.
핵무기의 유일한 목적이 김씨 3대가 세뇌·선전해 온 체제 안보용이 아니라, 김씨 일가의 권력 세습·유지용임을 북한 주민이 체감하도록 해야 한다.
김정은이 먼저 도발하지 않는 한 전쟁은 없다는 진실, 핵무기로 인한 대북 제재의 고통을 김정은과 일가 및 그것을 떠받드는 권력층이 아니라 북한 주민이 오롯이 겪어야만 한다는 진실을 자각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그들의 눈과 귀를 열어주어야 한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에 대한 총체적 이해가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포괄적 전략이 수립되고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일곱째, ‘통합정책을 통한 통일정책’을 추진한다. 남북 통합과 동북아 통합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다. 남북 관계 개선이 동북아 역내 국가와의 연계·지지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준비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갈등하는 가운데 추진되는 남북 관계 개선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의 북한 변화와 통일의 꿈을 현실화하기 어렵다.
통일의 여건이 성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남북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동시에, 대한민국이 동북아 역내에서 평화적으로 함께 번영할 수 있는 동반자임을 인식시켜야 한다. 한반도에서 활발한 협력 상황이 동북아 역내의 평화적 번영에 도움이 됨을 주변국이 체감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향후 남북 주민들이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려는 의지가 표명되는 순간이 올 경우, 동북아 국가와 국제사회가 통일된 한반도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통일한국도 역내 국가 나아가 세계사회와 함께 평화적으로 번영할 수 있는 동반자가 될 수 있음을 받아들일 것이다.
‘민족공동체와 동북아공동체를 동시에 형성’하려는, 국가 성장과 통일을 동시에 이룩하려는 통합정책을 통한 통일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그 바탕은 자유・민주주의・인권의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과 굳건한 신뢰 관계이다.
대만의 분리 독립 움직임에는 신중해야 한다. 그것을 지지할 경우,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기대할 수 없다.
전쟁에 의한 중국의 통일, 무력에 의한 현상 변화를 당연히 반대해야 한다. 그것을 용인할 경우, 김정은의 도발과 남침에 빌미를 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러한 입장을 미국이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지지할 수 있을 정도로 한·미 관계를 심화시켜야 한다.
중국도 우리의 입장을 인정하도록 해야 한다. 분단 상황이 지속되는 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존재하는 한, 북핵 문제가 지속되는 한 한·중 관계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
이상의 7가지 원칙을 견지할 때, 북한 주민 변화를 통한 북한 변화의 물꼬가 트일 수 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결정적 전환점이 올 수 있다. 한반도 전역에서 남북한 모든 주민이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과 복지를 누릴 수 있는 북한 주민의 선택, 통일의 시기가 도래할 수 있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다음 대통령, 다음 정부가 짊어져야 할 시대적 요청이자 과제다. 국민의 올바른 선택이 먼저다.
글/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전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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