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가 드라마, 영화, 음악 등 다채로운 영역에서 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글로벌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현재, 과거 정적이고 고답적인 이미지로 인식되던 한국의 전통공연 예술 역시 시장의 변화와 관객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현대적 감각을 입힌 새로운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전통공연계의 이 같은 시도는 단순히 국내 관객의 저변을 넓히는 것을 넘어, 적극적인 세계 시장 진출과 외국인 관광객 유입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품고 있다. 특히 비언어적 소통 수단인 ‘무용’을 중심으로 한 변화가 가장 도드라진다.
전통공연의 글로벌화에 있어서 무용 장르가 주목받는 이유는 명확하다. 사실상 보편적 소통이 중시되는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할 때, 대사 중심의 극예술보다 신체의 언어, 즉 ‘몸짓’을 매개로 하는 공연이 지닌 경쟁력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감정과 서사를 언어의 제약 없이 전달할 수 있는 무용의 특성은 국경을 초월한 공감대 형성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이러한 현상은 구체적인 성과로도 나타나고 있다. 2022년 서울시무용단과 정구호 연출, 정혜진 안무가, 김성훈 안무가, 김재덕 안무가의 협업으로 탄생한 ‘일무’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작품은 국가무형문화재이자 유네스코 지정 세계인류무형유산 ‘종묘제례악’의 의식무를 현대적로 재해석하면서 크게 히트했다. 역동적인 ‘칼군무’와 웅장하면서도 감각적인 무대 미장센으로 평단의 호평이 이어졌다.
2022년 초연 당시 한국무용으로는 이례적으로 대극장 3000여석에서 4회 공연하며 객석점유율 75%를 기록했고, 2023년 서울 재공연에선 4회 공연 중 3회가 매진됐고 객석점유율 90.6%, 유료점유율 80.2%를 기록했다. 지난해 7월 뉴욕 링컨센터 공연에서도 전회차 매진을 기록했다. 서울시무용단의 대표작품으로 자리매김한 이 작품은 이달 16일부터 19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다시 관객을 만난다.
국립정동극장의 ‘광대’도 마찬가지다. 특히 ‘광대’는 전통 연희를 기반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총 관객 5631명 중 외국인 관객이 111명(2.69%)을 차지하는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했다. 이는 전통 공연 콘텐츠가 외국인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더 나아가 ‘광대’는 올해 7월 대만 공연과 ‘오사카 투어 엑스포 특별 공연’을 앞두고 있어, 그 국제적 확장 가능성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배우 채시라의 무용수 데뷔작으로 화제를 모은 무용극 ‘단심’ 역시 무용으로 서사를 표현하면서도, 아니리 부분은 외국인 관객들을 위해 자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일무’를 만든 정구호 연출과 정혜진 안무가가 합류했다. 정 연출은 “공연 책자에 기본적인 줄거리를 소개하고, 러프한 스토리텔링도 프로그램북에 담을 예정이다. 더불어 대사의 영어 자막에는 기존 아니리의 대사에 설명을 함께 집어넣어 외국인 관객의 이해도를 높이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전통공연이 K-컬처의 새로운 핵심 동력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단발성 이벤트가 아닌, 지속 가능한 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동극장의 운영 방식은 주목할 만하다.
통상적으로 국립예술단체의 전통공연이 5회 안팎의 단기 공연에 그치는 데 반해, 국립정동극장은 30회에서 50회에 이르는 장기 공연을 과감하게 시도하며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이러한 장기 공연 체제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입소문을 통한 관객층 확대를 가능하게 하며, 나아가 외국인 관광객들이 보다 용이하게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이 같은 장기적 투자는 단기적 성과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 안목에서 전통공연의 자생력과 경쟁력을 키우려는 의지로 보인다.
정성숙 국립정동극장 대표이사는 “국립정동극장은 지난 30년간 시대 흐름에 따라 변화와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올해는 30년의 발자취 기념하며 앞으로의 미래를 다지는 해”라며 “국립예술단체 중 30~50회에 달하는 장기공연은 국립정동극장이 유일하다. 전통공연이 50회를 소화한다는 것은 도전일 수 있지만 한국문화가 세계문화로 부상하고 있는 지금, 전통공연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감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봤다. ‘단심’으로 전통공연의 글로벌 확장성을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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