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불빛…인디스페이스, 한국 독립영화의 등대 [공간을 기억하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05.16 14:13  수정 2025.05.16 15:13

[작은영화관 탐방기㉒] 인디스페이스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인디스페이스
한국 독립영화, 극장에서 숨을 쉬다


서로를 이해하는 가장 솔직한 방법, '우리를 만나는 영화관'이란 캐치프레이즈를 가진 인디스페이스는 2007년 11월, 한국 최초의 독립영화 전용관으로 문을 열었다.


그땐 영화제가 아니면 독립영화를 볼 기회조차 없었고, 더 많은 관객을 만나고 싶었던 영화인들의 바람이 모여 이 공간을 만들었었다. 한 번은 문화 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문을 닫았었다가 2012년에 다시 불을 밝혔다.


이가람 매니저는 지금도 인디스페이스는 독립영화와 관객이 더 행복하게 만나는 길을 찾고 있다고 말한다. 그 만남이 세상을 더 다채롭고 단단하게 만드는 시작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곳을 찾는 관객들이 영화를 넘어 서로의 삶과 이야기를 가장 솔직하게 마주하길 바란다.


멀티플렉스에서는 독립영화가 설자리를 찾기 어렵다. 짧은 상영 기간, 불리한 시간대 편성, 흥행 압박 속에 많은 다양한 작품들이 관객들을 만나기 어렵다. 인디스페이스는 이런 현실에 맞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오직 한국 독립영화만을 상영하며 다른 선택지를 만들어왔다.


"인디스페이스는 상업영화나 외국 예술영화가 아닌, 오직 한국 독립영화만을 상영하고 있어요. 멀티플렉스에서는 독립영화가 금방 내려가거나, 새벽이나 심야에만 편성되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 극장에서는 한 작품을 장기적으로, 다양한 시간대에 상영합니다. 또 일반 상영가가 1만 원으로 비교적 저렴해서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한국 독립영화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한 작품을 짧게는 한 달, 길게는 6개월까지 상영하는 인디스페이스에선 상영작 한 편 한 편이 그만큼 신중하게 결정된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요즘 워낙 많은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어서요. 저희도 공간과 시간표에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 보니 (작품을) 엄선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정 기준은 세 가지 정도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첫째,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둘째, 작품성과 완성도는 우수한지, 셋째, 저희 극장을 찾아주시는 관객분들이 필요로 하는 이야기인지를 중점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인디스페이스는 시민들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극장이라는 시작을 잊지 않는다.


"처음 개관할 때 후원해 주신 시민분들의 이름을 명패로 새겨 극장 벽에 붙여두고 있어요. 지금도 '나눔자리 후원제도'를 운영 중인데, 좌석에 후원자분들의 이름을 새겨 드리는 방식이에요. 또 매달 정기적으로 후원해 주시는 분들은 '인디 프레젠트'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의자와 테이블, 게시판까지 세심하게 맞춘 컬러와 디자인은 단순한 인테리어를 넘어 상징적인 의미를 품고 있다. 공간 전체가 '다양성을 존중하는 극장'이라는 인디스페이스의 철학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의자, 테이블, 게시판까지 모두 정해진 컬러와 콘셉트가 있어요. 저희 로고도 그렇고 공간 곳곳에 다양한 도형과 색깔이 들어가 있는데, 이걸 본 관객분들이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 있도록 했어요. 개인적으로 저는 각기 다른 개성과 색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영화를 보는 공간 그리고 그렇게 모인 이야기들이 한 편의 영화가 된다는 의미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 도형들로 영사기 모양을 만들기도 했어요. 다양성을 존중하는 공간이라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풀어낸 거죠."


인디스페이스는 공간을 옮기는 과정 속에서도 관객과의 인연을 꾸준히 이어왔다. 종로 시절부터 지금의 홍대에 이르기까지, 장소가 바뀌어도 변함없이 극장을 찾아오는 이들이 있다.


"어디에 계시든 저희가 어디로 옮기든 꼭 찾아와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정말 감사해요. 그래서 저희도 관객분들이 어떤 영화를 원하시는지 늘 고민하고 눈을 더 크게 뜨고 보려고 합니다."


ⓒ인디스페이스
영화가 제시하는 삶의 새로운 가능성


인디스페이스는 영화 상영을 넘어서, 시간이 지나도 다시 돌아보고 싶은 영화적 경험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매달 열리는 '인디돌잔치'다. 1년 전에 개봉했던 영화를 대상으로 관객 투표로 1위인 영화를 다시 상영한다. 이때 영화의 감독과 배우를 초청해 GV도 함께 진행한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하는 프로그램인데요. 관객분들이 1년 전 봤던 영화를 다시 보면서 그 사이 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돌아볼 수 있고, 감독이나 배우들도 1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나누는 시간이거든요. 이번 5월 인디돌잔치에서는 '목화솜 피는 날'이라는 작품을 상영하고, 박원상 배우님과 PD님과 함께 5월 27일 오후에 GV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인디스페이스는 한국 독립영화계를 이끌어가는 창작자들을 든든하게 뒷받침하고, 그들의 도전을 계속 응원하는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앞으로도 변하지 않은 인디스페이스의 사명감이기도 하다.


"예술영화관이 많긴 하지만, 저희는 한국 독립영화에 집중하면서 미래 창작자들을 꾸준히 응원하고 지원하고 싶어요. 저희 극장이 오래 버텨준다면 창작자들도 그만큼 믿고 계속 영화를 만들어주실 거라 생각합니다. 극장 자체가 든든한 기둥이 되는 거죠."


인디스페이스는 관객들이 한국독립영화를 통해 세상을 다시 바라보고, 나와 닮았지만 또 다른 삶의 방식을 발견하는 공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절해고도'라는 작품을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섬 하나하나가 마치 사람처럼 느껴지는 영화예요. 관객마다 해석이 모두 다르죠. 이런 다양하고 열린 해석이야말로 한국 독립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최근에는 '침몰가족'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고 있는데, 공동육아와 대안적 삶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에요. 이런 영화를 통해 현재 사회의 질문들을 함께 나누고, 새로운 삶의 가능성도 발견하셨으면 합니다. 지금 저희 극장에서만 상영 중이니 꼭 한 번 찾아와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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