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대통령선거에서 친(親)유럽 성향 무소속 후보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인 민족주의 극우 성향 후보를 상대로 극적으로 역전승을 거뒀다. ‘반(反)트럼프' 여론의 영향으로 캐나다·호주 총선에 이어 루마니아에서도 극우 성향의 후보가 또다시 패배의 쓴잔을 든 것이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18일(현지시간) 실시된 루마니아 대선 결선투표에서 개표율 99% 기준 친유럽 성향의 무소속 후보인 니쿠쇼르 단(55) 부쿠레슈티 시장이 54.1%의 득표율로 얻어 당선됐다. 극우 성향의 제1야당 결속동맹(AUR) 대표인 제오르제 시미온(38·득표율 45.9%)을 8.2%포인트 차이로 따돌렸다. 무소속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처음이다.
이번 선거는 러시아의 선거 개입 의혹이 불거지는 등 정치적 격변 속에 치러졌다. 앞서 지난해 11월 치러진 대선에서 극우 성향 무소속 후보인 컬린 제오르제스쿠가 1위를 차지했지만 헌법재판소는 선거법 위반과 러시아의 선거개입 의혹을 이유로 선거를 무효로 처리하고 재선거를 명령했다.
지난 4일 실시된 1차 투표에서는 시미온 후보가 41% 득표율을 기록하며 단 후보(21%)의 2배에 가까운 격차로 1위를 차지했다. 그는 제오르제스쿠의 지지층을 흡수해 1차 투표에서 1위에 올라섰지만 결선투표에서 패배했다. 결선투표에 더 많은 국민이 참여해 단 후보에게 표를 던진 것이 승리로 이어졌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결선투표 투표율은 64%로 2000년 대선 1차 투표 이후 25년 만에 가장 높았다. 단 후보의 승리가 확정되자 부쿠레슈티 시내에 모인 군중은 “러시아, 루마니아는 당신들의 것이 아니다”라고 외쳤다.
이번 대선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EU와의 통합을 내세우는 단 당선자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 중단, EU로부터 거리두기를 주장한 시미온 후보가 맞붙었다. 단 당선자는 “서방 지지 루마니아와 서방 반대 루마니아의 대결”로 규정하기도 했다.
수학자 출신으로 부동산 불법 개발에 반대하는 시민운동으로 정치적 입지를 다져온 단 당선자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반부패, 친유럽 노선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EU를 강력히 지지하는 그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은 점점 커지는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루마니아의 안보를 지키는 데 필수적이라고 주장해왔다.
시미온 후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호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내세우며 루마니아의 ‘마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해 왔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반대하고 EU 지도부를 비판해왔다. 이 때문에 러시아와의 연계 의혹도 꾸준히 제기됐다.
단 당선자의 극적인 뒤집기는 유럽 내 반트럼프 정서가 주요인으로 꼽힌다. 무즈타바 라흐만 유라시아그룹의 유럽 담당 상무이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 선거에 미친 긍정적 효과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라며 “정치 및 정책 방향이 ‘마가’와 유사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에 대한 우려가 유권자들을 움직였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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