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유리벽 안에서 유세하니 행복하십니까?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05.20 08:01  수정 2025.05.20 08:01

트럼프 흉내 내면 이긴다고 여기나

‘제보’를 핑계로 저 호들갑이라니

겁을 먹었는지 허풍을 떠는 건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9일 서울 마포구 KT&G 상상마당 앞에서 방탄유리가 설치된 유세차에 올라 연설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른쪽 주먹을 불끈 쥐고 치켜들며 “싸우자”라고 외쳤다. 뒤쪽 머리 위로는 성조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한 손으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있는 선글라스 차림 경호원의 모습이 상황의 긴박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그가 지난해 7월 13일(현지시각)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대통령 선거 유세를 하던 중 이 지역 한 청년의 저격을 받은 후에 촬영된 장면이었다.


총탄은 그를 비켜 갔고 그는 귀와 뺨 쪽에 피가 묻은 모습으로 몇 차례나 “파이트”를 외쳤다. 그는 그 위기에 순간에도 대중에게 어필하는 절묘한 장면을 만들어낼 줄 알았다(의도적으로 그런 장면을 연출했다는 게 아니라 그는 대중심리를 꿰뚫고 있으며 언제든 반사적으로 그에 부응할 줄 아는 재능을 가졌다는 의미다). 2024년의 미국 대선은 그때 이미 끝났다.

트럼프 흉내 내면 이긴다고 여기나

미국 역사상 대통령·대통령 당선인·대통령 후보에 대한 암살 시도는 15차례나 있었다. 현직 대통령 4명이 암살자의 총탄에 희생됐다. 제16대 에이브러햄 링컨(1865년), 제20대 제임스 가필드(1881), 제25대 윌리엄 매킨리 주니어, 그리고 제35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경우다.


제38대 제럴드 포드, 제40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재임 중에 저격받았으나 회복했다. 포드의 경우 암살 시도가 두 차례나 있었다. 제42대 빌 클린턴은 괴한이 백악관 담장을 넘어 들어가 자동소총을 난사했지만 직접 저격받지는 않았다. 제43대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수류탄 공격을 받았으나 불발로 위기를 면했다.


제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당선인 때, 제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후보 때 저격받았다. 프랭클린을 겨냥한 총탄은 그를 비켜 가 옆에 있던 시카고 시장을 숨지게 했다. 시어도어는 1912년 진보당을 만들어 3선에 나섰다. 유세 준비를 하던 중 저격을 받았다. 오른쪽 가슴에 총탄을 맞았으나 갈비뼈가 부러진 가운데서도 한 시간 동안 연설을 이어갔다. 연설을 끝내며 말했다.


“여러분 가능한 한 조용히 해 주십시오. 제가 방금 총탄에 맞은 것을 여러분이 아시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으로는 큰 사슴(bull moose)을 죽일 수가 없지요.”

큰 사슴은 그가 창당한 진보당의 별칭이고 그 당원을 상징했다. 그리고 루스벨트 자신의 닉네임이기도 했다. 그는 들것을 거부하고 병원까지 걸어갔는데 양복 주머니에 50장이나 되는 연설문과 안경집 등이 있었던 덕분에 치명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평생 총탄을 몸에 넣고 살아야 했다. 이들 외에 로버트 케네디(1968년)와 조지 월리스(1972년)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 암살자의 총에 목숨을 잃었다.


트럼프도 연설을 이어가려 했으나 경호팀에 의해 제지당했다. 그는 피격을 감지한 후 손으로 귀를 싸쥐고 몸을 낮췄지만, 주눅 들지는 않았다. 경호원들이 에워싸고 빠져나가려고 하자 그는 “기다려, 기다려”라며 대중들에게 말을 하려고 했지만(아마도), 경호원들을 이기지는 못했다. 어쨌든 그는 정치리더, 대통령 후보로서의 용기와 열정을 청중들 나아가 미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우리 현대 정치사에도 비극의 흔적은 뚜렷이 남아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최측근 중의 한 사람이었던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탄에 서거했다. 2009년 5월 23일엔 퇴임 후 1년여가 지났을 뿐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생을 거두어버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제보’를 핑계로 저 호들갑이라니

2006년 5월 20일 신촌에서 서울시장 후보 지원 유세를 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대표)은 괴한의 카터 날 기습으로 중상을 입었다. 작년 1월 2일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당시 민주당 대표)가 부산에서 괴한으로부터 등산용 칼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미국에 비할 바는 아니다.


최근엔 ‘사거리 2km 러시아제 소총 밀반입’ 소문이 증폭돼 대선 정국에 파장을 일으켰다. 민주당 측의 주장이다. 그런 제보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민주당은 증거나 확실한 정황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늘 그렇듯이 민주당은 ‘제보’를 사실처럼 요란스레 떠들어댄다. 입증 책임 같은 것은 아예 염두에조차 두지 않은 빛이다. ‘제보’가 있었다며 이 후보가 방탄복을 입고 당의 집회나 유세장에 나가더니 20일부터는 후보 보호용 방탄 유리벽(앞면만 막은 게 아니라 좌우도 막은 만큼 유리벽이라는 게 적절할 듯) 속에서 유세하기 시작했다. 77년 헌정사에서 처음으로 목격되는 장면이다.


제보가 있었고 그 때문에 당 후보를 보호해야 하겠다는데야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그리 탐탁해 보이지는 않는 행태다. 우선 이 후보만 저격의 대상이 될 정도로 대단한 후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블러핑의 소지가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다른 후보들은 이 방탄 유리벽 때문에 황당한 의심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됐다. 후보 저격은 주로 정치적 목적일 텐데, 그와 경쟁상대인 다른 정당 후보들이 의심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아니겠는가. 유권자가 모욕감을 느낄 수 있는 무대장치(?)일 수도 있다. 청중들 가운데 누군가 저격을 할 수도 있으니까 그들과 격리를 위해 유리막을 설치하는 것일 터이다. 후보 연설을 들으러 모인 청중들 모두가 잠재적 위험인물로 치부되는 것 아닌가.


이태원 참사 때처럼 수많은 청중이 밀집한 상황에서 정말 저격 사태가 벌어지면 극도의 혼란이 조성되게 마련이다. 후보도 물론이지만, 청중들도 위태한 상황에 빠지고 만다. 이 후보의 경우, 자신은 유리벽 속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할 수 있지만 청중들은 누가 보호해주나. 추가열의 노래 “나 같은 건 없는 건가요”를 들은 적이 있는가? “그대만 행복하면 그만인가요”라는 구절을 패러디해서 “이 후보만 안전하면 그만인가요”라고 누가 묻는다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방탄 유리벽 속에서 혼자 안전하여질 생각을 하는 대신 모두가 안전할 수 있는 유세장을 만드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하는 것 아닐까?

겁을 먹었는지 허풍을 떠는 건지

트럼프에 대한 살해 시도는 작년 9월에도 있었다. 범인은 트럼프의 플로리다 마러라고 자택 인근 골프장에서 그를 저격하기 위해 12시간을 잠복해 있다가 발각됐다. 트럼프는 총기 피격을 당한 후 8월부터 재개한 야외 유세에서 방탄 유리벽 신세를 졌다. 이 경우는 그럴만했다고 이해할 수가 있다. 그래서 대통령과 부통령의 경호를 위해서만 설치되던 방탄 유리벽을 후보에게도 제공한 것 아니겠는가.


이 후보가 트럼프 흉내 내는 것은 아닌가? (‘한국의 트럼프’라고 스스로 자랑하기도 했고). 그런데 트럼프에 비해 터무니없이 겁먹은 모습이다. 만약의 사태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그게 겁이 난다면 아예 대중 유세를 포기하는 게 안전을 위해서나 모양새를 위해서도 더 나은 방법 아닐까? 우리 현대 정치사에선 대통령 후보는 말할 것도 없고 대통령을 위한 방탄 유리벽 설치의 예도 없어서 하는 말이다.


국제적으로도 이런 창피가 없다. 대한민국의 치안이 얼마나 허술하고 사회상이 얼마나 위험하기에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유리벽에 갇혀 연설하느냐고 조소하지 않겠는가. 이게 나라 망신이 되는 줄을 이 후보나 민주당 선대위 관계자들은 생각이나 해 보는지 알 수가 없다. 이 후보가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어서 다른 사람들의 경우와는 비교 불가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어느 신문에 보니까 87년 대통령 선거 때 노태우 당시 민정당 후보가 광주 유세에서 방탄 유리막을 처음 사용한 것처럼 보도했던데 사실과는 다르다. 그건 투명 방패였다. 날아오는 돌멩이로부터 후보와 다른 연사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을 뿐 러시아제 저격용 소총탄 대비용은 아니었다.


18일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민주당 이 후보는 상대 후보의 공세적 질문에 대해 “뭐든 극단화한다” “모든 상황을 가정해 극단화한다”는 식으로 회피적 되치기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뜬금없는 러시아 ‘저격용 소총 반입 제보’ 핑계로 유세장을 후보 저격 위험지대로 규정하고 요란스레 유리벽으로 연단을 둘러싸는 것은 상황의 극단화가 아니면 뭔가?


2002년 제16대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국민적 유행어를 만들어냈었다.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졌습니까?”

그 말이 떠올라 이 후보에게 묻고 싶어진다.


“유리벽 안에서 행복하십니까? 그 방탄 유리벽 바깥의 보통 시민들 보시니까 기분이 더 우쭐해졌습니까?”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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