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은 “의심 거둬달라” 하지만
‘국민의 뜻’을 만사형통의 주문 삼아
선거, 극단 막는 민주주의 면역 체계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헌법 제128조 2항).
1980년 헌법(8차 개헌)과 87년 헌법(9차 개헌)에 있는 규정이다. 8차 개정 헌법은 전두환 정부에 의해 주도됐다. 이른바 신군부는 정권 장악의 명분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대통령 선출방식을 바꾸고 장기집권 방지 장치를 신설한 것이 그 일환이었다.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아닌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도록 하고, 임기는 7년 단임으로 못 박았다. 개헌으로 단임제가 폐지될 경우라도 당시의 대통령은 재임 또는 중임을 할 수 없다는 조항도 더해졌다.
‘5공 청산’을 시대적 과제로 삼아, 여야가 합의 통과시킨 6공화국 헌법은 대통령의 임기를 5년 단임으로 줄였다. 개헌 당시 대통령의 재‧중임 불허 조항은 그대로 유지했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지 않은 것은 2공화국 실패의 교훈 때문이었겠지만 각 정당을 이끌던 리더들의 ‘대통령 욕구’가 더 크게 작용한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이승만 집권기에 야당들의 요구는 ‘의원내각제’였고 유신 이후 야당들의 요구는 ‘대통령 직선제’였다(정권 측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시도하고 야당이 이에 맞서서 심각한 정치파동을 야기한 때도 있었다. 발췌개헌으로 불리는 1952년 1차 개헌의 경우다). 정치가 대의(大義)를 따르는 게 아니라 정치적 유력자들의 이해(利害)에 좌우됐다.
이재명은 “의심 거둬달라” 하지만
노태우 전 대통령 이래 ‘5년 단임제’는 우여곡절 속에서도 유지됐다. 일단 장기집권의 폐해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 됐고, 그건 단임제 덕분이었다. 그 헌법이 심각한 작동 이상 상태에 빠졌다. 그 바람에 개헌이 정치권 전체에서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한 어젠더로 부상했다. 핵심적 관심사 및 과제는 여전히 대통령 단임제 폐지다(이러다 파국으로 치달은 나라가 여럿인데도). 그리고 대세는 ‘4년 중임제’ 혹은 ‘4년 연임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18일 오전 SNS를 통해 ‘대통령 4년 연임제, 대선 결선투표제,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등 개헌안을 발표했다.
같은 날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도 ‘대통령 4년 중임제, 대통령 불소추 특권 폐지’ 등을 골간으로 한 개헌안을 내놨다. 이번에 뽑히는 대통령은 총선 주기와 대선을 일치시키기 위해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개헌안에 명시하는 내용도 담았다. 그는 민주당 이 후보의 개헌안 발표를 환영하면서 ‘즉각적인 개헌 협약 체결’을 제안하기도 했다. 김 후보는 또 “(이 후보의) ‘연임제’라는 표현 속에 장기 집권의 여지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닌지를 밝혀야 한다”라는 요구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 후보는 25일 기자간담회를 하고 재임 중의 대통령에게는 개정헌법의 임기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헌법 조항을 지적하며 “의심을 거둬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에는 언제나 복선이 있다. 이날 간담회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여운을 남겼다.
그의 말이다. 그러니까 “당연히 국민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고 그는 입장을 정리했다(‘국민의 뜻’이 정치인들, 특히 권력욕구가 충만한 정치적 유력자들에 의해 어떻게 변질되고 이용됐는지는 모든 국민이 기억하고 있다. 이 후보가 의심을 거둬달라고 주문한 데는 그만한 배경이 있게 마련이다. ‘말의 신뢰성’을 의심받고 있다는 사실을 그도 충분히 감지하고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국민의 뜻’을 만사형통의 주문 삼아
다만 중간 평가를 통한 대통령의 책임정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라면 ‘연임제’가 옳다는 이 후보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 그의 말처럼 중임제는 단지 두 번 대통령직을 갖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장기집권은 대개 연임제에서 비롯된다. 이 후보는 이에 대해서 ‘1회에 한해 연임’을 명시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그것도 결정적 국면에서는 ‘국민의 뜻’에 압도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 뜻’ ‘국민의 명령’(문재인 정권은 ‘촛불혁명의 명령’이라는 말을 즐겨 썼다)은 만사형통의 주문이다.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빛의 혁명 명령’이라는 깃발이 내걸리지 않을까?
같은 맥락의 이야기여서 이어 붙이고자 한다.
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과 함께 대법완박(대법원 완전 박살)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해서 정치권이 시끄럽다. 하긴 ‘시끄럽다’고 해봐야 국민의힘이 지르는 비명 정도다. 절대다수 의석을 가지고 있는 민주당과 그 우호 정당들이 귓전으로라도 들어줄 리가 없다. 민주당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감히) 유죄취지 파기환송을 한 데 대한 철저한 보복이다. 이 후보를 괴롭히거나 성가시게 하는 세력은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는 민주당 충성파들의 응징(?) 의지는 공포스러울 정도로 결연해 보인다.
민주당은 이미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해 파기환송에 찬성한 대법관 12명과 대법원 관계자들에 대해, 전원 불참 속에서도 청문회를 강행했다. 당초 15일로 예정됐던 파기환송심 선고일 하루 전이었다. 이 당은 조 대법원장 특검법도 같은 날 국회 법사위에 상정, 법안심사 소위로 넘겼다. 조 대법원장 탄핵소추 카드도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 7일 서울고등법원은 당초 지난 25일로 예정됐던 파기환송심 선고일을 다음 달 18일로 연기했다(위증교사 2심 재판, 대장동·위례·백현동·성남FC 재판 일정도 줄줄이 대선 이후로 미뤄졌다). 같은 날 국회 법사위는 대통령 당선 시 진행 중인 형사 재판을 정지하도록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14일엔 허위사실 공표죄의 요건 가운데 하나인 ‘행위’를 삭제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그야말로 안하무인, 수치심 같은 건 아예 가져본 적도 없다는 투다.
선거, 극단 막는 민주주의 면역 체계
이 정도로는 분이 안 풀린다는 듯 민주당은 사법부의 심장인 대법원 와해 작업에 들어갔다. 지난 8일 민주당 장경태 의원이 현재 14명인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23일에는 문재인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낸 박범계 의원이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고 비법조인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일찍이 상상도 못했던 거대정당의 횡포다. 3권분립 체제 자체를 허물어 버릴 기세다.
이 같은 민주당 의원들의 입법 폭주에 대해 이 후보는 24일 “개별 의원들의 개별적 입법 제안에 불과하며, 민주당이나 제 입장은 전혀 아니다. 당내에 그런 문제에 자중하라고 오늘 오전에 지시해 놓은 상태”라고 해명했다. 25일의 기자간담회에서는 “‘지금 그런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가 정확한 제 입장”이라고 밝혔다. 전면적이고 완전한 부인이 아니라 지금은 대선 기간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대선에서 승리해 정권을 잡을 경우는 말이 달라질 수가 있다. 그 점에서 이 후보는 충분히 의심을 살 수 있는 전력을 가졌다.
아마도 그가 당선되면 민주당의 국가구조 재편 혹은 재구축 작업(아주 점잖게 표현해서)은 거칠게 추진될 것이다. 민주당 안에 입과 주먹이 근질거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권력의 한계를 확인하고 싶어 안달이다. 대개는 그 권력이 무한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을 법하다. 무리 속에서는 모두가 겁이 없어진다. 일단 거대 집단에 소속되면 그 집단의 윤리에 무조건 순응하게 된다. 권력자가 다루기 아주 쉬운 심리 및 행동 상태가 되는 것이다.
선거는 어떤 의미에서는 극단적 상황, 극단적 행위를 예방하는 민주주의의 면역체계라 할 수 있다. 고비마다 제대로 작동해 주면 민주주의는 건강성을 회복한다. 6월 3일 국민들의 선택은, 그래서 중요하고 소중하다.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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