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너스: 죄인들’, 뿌리와 전염에 관한 블루스 [임희윤의 ‘영화 (쏙) 음악’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07.04 14:01  수정 2025.07.04 14:01

영화 ‘씨너스: 죄인들’ (쏙) Jerry Cantrell and Ludwig Göransson ‘In Moonlight’

*본문에 영화 ‘씨너스: 죄인들’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이리시 포크로 중무장한 흡혈귀들. ⓒ

블루스 음악에 대해 알고 있어? 아이리시 포크 뮤직은? 몰라도 좋아.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발라드 아니면 댄스’였던 내 음악 취향에도 낯선 장르에 대한 호기심이 움틀 테니까. 무엇보다 언데드 나오는 호러를 좋아한다면 영화 자체만으로도 만족도는 보장해.


그래도 이 영화는 음악 없이는 도저히 완성이 안 돼. 설정, 소품, 이름 등 곳곳에 음악적 언급이나 은유가 가득 박혀있거든. 1932년 미국 미시시피 델타가 배경인데, 주인공 ‘새미’는 늘 기타를 들고 다니는 아마추어 음악가야. 일반적인 기타가 아니라 1930년대에 실제로 많이 쓰인 레저네이터 기타(resonator guitar)야. 전기 앰프가 나오기 전, 통기타는 음량이 작았어. 소리 큰 관악기랑 함께 연주하면 기가 죽었지. 그래서 통기타에 공명통을 박아 넣어 아쉬운 대로 음량을 높인 게 레저네이터 기타지.


영국 록 밴드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1985년 명반 ‘Brothers in Arms’의 표지. 레저네이터 기타다! ⓒ

자, 두 명의 핵심 조연을 소개할 차례야. 핵심 조연은 시카고에서 악명 높은 갱단 생활을 하다 귀향한 쌍둥이, 스모크와 스택이지. 스모크와 스택을 합치면 뭐가 되지? 스모크스택! 이 이름은 전설적 블루스 음악가 하울린 울프(1910~1976)가 1930년대 즐겨 부른 명곡 ‘Smokestack Lightning’에 대한 헌정임이 분명해. 쌍둥이는 새미에게 기타를 주면서 ‘이거 도박해서 딴 건데 원래 찰리 패튼이 직접 치던 거야’라는 설을 풀지. 사실 찰리 패튼(1891~1934)은 미시시피 델타의 전설적 음악가로서 하울린 울프의 직계 선배이자 동료 음악가이기도 하지.


주인공 새미의 기타의 전 주인으로 언급되는 블루스 전설 찰리 패튼. ⓒ

스모크, 스택 형제는 시카고에서 벌어온 돈, 가져온 이탈리아 와인과 아일랜드 맥주 따위를 가지고 주크 조인트(Jook Joint)를 개장하기로 해. 주크 조인트는 그 당시 그 지역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여흥을 즐기던 선술집이자 클럽 같은 거야. 문제는 개장 당일, 불청객이 찾아온다는 거지. 바로 아일랜드계 백인들인데, 아이리시 포크 스타일의 노래를 부르면서 접근해 와. ‘울새를 깨끗이 발라먹는’ 것에 대한 조금 소름 끼치는 가사를 가진, ‘Pick Poor Robin Clean’이란 곡이야.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있어. 음악적 맥락을 알아야 느껴지는 반전이야. 이 곡은 사실 아일랜드 포크 음악이 아니야! 그런 스타일로 편곡해서 들려줘서 그렇지. 원곡자는 루크 조던(1892~1952)이라는 또 다른 전설적 블루스 음악가라고. 그런데 이 사람의 출신이 중요해. 이 영화의 배경이자 블루스의 절대적 성지인 미시시피 델타 사람이 아니라는 거지. 루크 조던은 델타에서 1000㎞ 이상 떨어진 버지니아주 출신이니까. 음색이나 음악 스타일도 미묘하게 델타와 달라. 특히 목소리가 덜 거칠고 좀 부드러운 편이지.


정리해 보자. 아일랜드계 백인들이 아이리시 포크 스타일의 곡을 연주하면서 접근하지. 주크 조인트를 지키는 아프리카계 흑인들은 직관적으로 경계심을 느껴. 하지만 바로 저 아일랜드 사람이 연주하는 음악이 실은 다른 지역의 흑인 블루스 음악이었던 거야.


배우로도 출연하는 또 다른 블루스 전설, 버디 가이. 마지막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가 ‘죠스’(1975)여서 ‘씨너스: 죄인들’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심히 망설였다고. ⓒ

사실 이 영화에는 음악적 레퍼런스가 너무너무 많아.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짚다 보면 책 한 권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어. (진짜로 써 볼까…. 어때.) 네거리에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극강의 기타 연주력을 갖게 됐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레전드 로버트 존슨(1911~1938)의 유명한 블루스 전설이 있지. 그런 이야기들도 부두교에 대한 레퍼런스와 함께 이 영화에 탄탄한 기반이 돼줬다고 믿어.


영화의 음악은 여름에 즐기는 섭씨 200도짜리 잡탕찌개 같아. 블루스가 기반이 되되 때로 래그타임, 힙합, R&B, 하드록, 헤비메탈이 뒤섞여서 그야말로 펄펄 끓어 넘치거든. 음악은 또 다른 언데드 같아. 뱀파이어 액션만큼이나 고막을 후려치며 영혼을 때려 부수려 다가오는 청각적 유령 같은 존재감이라니….


영화 감독은 ‘블랙 팬서’로 유명한 라이언 쿠글러지. 아프리카계야. 그런데 음악감독은 또 북유럽 백인, 스웨덴 음악가 루드비히 고란손이야. 고란손의 아버지가 블루스 광팬이었대. 고란손의 아내는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 고란손 부부는 이 영화를 위해 1930년대 미국 블루스, 아일랜드 포크 음악에 대해 관계자를 인터뷰하고 자료 조사를 하며 연구했어.


악마 이야기와 블루스를 연결시킨 전설의 음악가 로버트 존슨. ⓒ

급기야 브리태니 하워드(밴드 ‘앨러배마 셰이크스’ 전 멤버), 라파엘 사디크, 돈 톨리버, 바비 러시, 제임스 블레이크, 리애넌 기든스, 에릭 게일스 등 R&B, 힙합, 블루스, 블루그래스까지 장르를 아울러 내로라하는 유명 음악가들을 잔뜩 기용했지. 참, 메탈리카의 라스 울리히에게 드럼 연주도 맡겼어.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저 블루스 전설 버디 가이까지….


너무 많은 음악가, 너무 많은 음악에 대한 언급들, 너무 많은 노래들이 스쳐 가는, 음악의 미시시피강 같은 영화야. 그래도 사운드트랙에서 지금 한 곡 골라야 한다면, 로커 제리 캔트럴의 ‘In Moonlight’로 할게. 캔트럴은 ‘앨리스 인 체인스’의 기타리스트였어. 너바나, 펄 잼, 사운드가든과 1990년대 그런지(grunge) 4대 천왕 밴드 중 하나였던 그룹. 끈적한 블루스와 천둥 같은 헤비메탈, 음울한 록을 찰떡같이 겹쳐내던 명밴드지. ‘씨너스: 죄인들’의 음악적 풍경처럼 혼란스럽고 묵직하며 좀 우울하기도 해.


제리 캔트렐(왼쪽). 저 뒤로 건스 엔 로지스의 슬래시가 보여. ⓒ

이 곡, ‘In Moonlight’는 정작 영화에는 흐르지 않는 곡이야. 다만 캔트럴의 보컬이 빠진 버전으로 이 곡의 멜로디가 막판 복수 장면에서 등장하지. 박자가 똑 떨어지지 않는 11박자야. 11이란 숫자, 오묘한 소수(素數)지. 1과 그 수 자신 이외의 자연수로는 나눌 수 없는 자연수 말이야.


이 영화는 뿌리와 배타와 정체성에 대한 우화이자, 전염과 혼종과 변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 아니, 어쩌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봐도 좋은, 그냥 음악이 죽이는 공포 영화로 족할지도.


영화 사운드트랙의 분위기가 트랙별로 너무 중구난방이라면 그냥 차라리 제리 캔트럴의 음반을 한번 들어봐. 작년 10월에 낸 근작이야. 어쩜, 앨범 제목도 ‘I Want Blood’네. 그의 음악이 맘에 든다면 앨리스 인 체인스의 음반들도 추천해. 여름밤이 참 기네. 괜찮아. 우리가 기다리는 새벽은 기어이 오고 말테니까.

소중한 주크 조인트를 지키기 위해 뱀파이어의 침입에 맞서는 스모크(오른쪽)와 친구들. ⓒ

임희윤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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