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부터 10년 간 운영되던 장애 성인권 교육사업이 2023년 갑작스레 종료되면서 교육은 각 센터의 자체 역량에 맡겨졌다. 장애 유형별 맞춤형 교육과 교사 연수, 교재 지원 등 공공 차원의 체계적 지원이 중단되었고, 예산 확보에 실패한 지역에선 교육 자체가 사라지며 장애학생의 성교육이 심각한 공백에 놓였다. 교육 중단의 피해는 학생과 그 가족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특수 교사들과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성교육은 곧 생존과 안전에 직결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24년 동부특수교육지원청 인권지원단의 ‘찾아가는 성인권교육 간담회’에서 청소년성문화센터의 장애학생 대상 성교육 프로그램은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간담회에 참여한 특수교사들에 따르면, 사진 자료와 같은 사실적인 시각자료가 학생들의 이해도를 높이고, 체험형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성에 대한 개념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특히 중증 장애 학생의 경우 ‘선호하는 캐릭터를 활용해 흥미를 유도한 사례’, ‘학생이 직접 몸짓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활동’이 소개되며 성교육이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자기결정권과 신체 안전을 위한 핵심 교육으로 기능해야 함을 강조했다.
간담회에 참석했던 성북청소년성문화센터 임혜경 교육 담당자는 “장애학생의 특성과 요구에 맞춘 성인권 교육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자 하며 이들이 교육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초등학생 발달장애 자녀를 양육하는 장누리 학부모(통합교육학부모협의회 서울위원, 작가, 미술치료사)는 “우리 아이가 낯선 사람의 접촉에 대해 ‘싫다’고 말하려면 몸과 감정, 관계에 대해 반복적이고 구체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교육이 부족한 현실에서 성적 행동을 보인 장애학생이 교실 밖으로 내몰리는 현실에 이제 발달장애 성교육은 단순히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무너진 생존의 문제로 직결된다”고 호소했다.
시립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 은평사무소 이상은 소장은 센터로 발달장애인 성교육의뢰가 들어오면 부모를 포함하여 교사와 복지기관 종사자들까지 발달장애인을 둘러싼 모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성교육을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부터, 성사안에 대한 대처까지 교육의뢰는 끊이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2020년 전국여성장애인폭력피해지원상담소협의회 조사결과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10명중 8명이 지적장애인(전체 장애인 피해자 중 87.9%)이었다. 특히 발달장애인은 피해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피해를 입고도 관계가 끊기는 것이 두려워 “비밀 지켜줄게”라는 가해자의 말에 침묵해 버리곤 한다.
시립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 광진사무소 이민욱 소장은 “발달장애 학생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성행동을 보이지만 이러한 사안은 고의적 가해라기 보다 성에 대해 올바른 지도를 받지 못해 생기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행동이 ‘장애의 문제’로만 인식되면서 적절한 지원 없이 방치되어 피해자는 상처를 입고 발달장애 청소년은 성폭력의 가해자로 낙인찍히기도 한다.
이처럼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가 될 수 있는 발달장애 청소년에게 성교육은 필수적이지만 부모와 교사조차 이를 ‘민감하고 불편한 주제’로 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보수적인 문화와 종교적 이유, 성교육으로 인해 성적 호기심이 커질 수 있다거나 성교육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등의 편견으로 장애 청소년에게 ‘아무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성교육’이 되어버리고 있다.
추상적 개념 이해가 어려운 자폐성·지적장애 학생을 위해선 단순한 커리큘럼 변경이 아닌, 쉬운 언어와 시청각 교구, 반복 가능한 활동, 촉각 모형 등 다양한 교육도구가 필요하지만 현장에선 이러한 교구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청소년성문화센터는 교구를 자체 개발하고 외부 전문가와 협업해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자율과 헌신에 의존하는 구조다.
이러한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서울지역 청소년성문화센터는 2024년 한 해 동안 약 1,200건의 성교육을 진행해 발달장애 청소년 8,700여 명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했다. 강사들은 매월 공동 회의를 통해 교안을 개발하고, 교구를 직접 제작하며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시립성북청소년성문화센터 김보람 센터장은 “장애학생의 성문제를 문제행동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기관이 생활 중심의 맞춤형 교육으로 지원하고 구조를 마련할 수 있도록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이를 위해 “장애학생 성교육을 위한 중장기적 계획과 제도적, 재정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장애학생의 성교육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그것은 ‘장애’라는 이유로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이며, 모두가 함께 책임져야 할 사회적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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