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첨단 장비로 고위도 빙하지대 탐사
기후변화 예측, 해양자원 분석 등
한 차원 높은 극지 연구 가능해져...
2029년 말까지 한화오션이 건조 예정
“우리가 겪고 있는 이상기후는 북극에서 가장 먼저 감지됩니다. 극지 변화가 전 지구에 미칠 영향을 정밀 분석하고 예측하려면 인공위성 관측만으로는 미흡해요. 북극진동과 수온 변화 등 데이터값 실측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좋은 쇄빙선이 없으면 고위도 빙하지대 접근 자체가 어렵지요.”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극지연구소의 주형민 박사는 지난주 차세대 쇄빙연구선 사업자 선정으로 숙원사업을 해결하게 된 감회와 기대감이 남다르다. 연구선 사업단장을 맡은 그는 해양생물학을 전공한 뒤 23년간 극지탐사에 전념해온 베테랑이다. 2009년 국내 첫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운영되기 전까지 남극기지에서 러시아 쇄빙선 한켠을 빌려 타고 다녔던 고달픈 기억도 생생하다.
그 아라온호의 선령도 벌써 16년이 됐다. 그 사이 극지 온난화로 연구수요는 폭증했고 국가 간 경쟁 가열과 환경규제 강화 등 여건도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쇄빙력이 약하고 장비도 노후화한 연구선 한 척으로 남극과 북극을 번갈아 오가야 하는 현실은 의욕을 따라주지 못했다. 신규 쇄빙연구선에 대한 갈망이 클 수밖에 없다.
“1m 두께의 얼음을 깨는 아라온의 쇄빙 능력으로는 북위 75도가 접근 한계점입니다. 이에 비해 차세대 쇄빙연구선은 1.5m까지 가능합니다. 연구 항해 일수도 현재는 1년 중 85일에 불과하지만 새 연구선이 가동되면 북극을 전담하며 277일로 크게 늘어납니다.”
빠르게 녹아내리는 극지 빙하는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던져주고 있다. 한편으론 지구 전체에 기상이변 재앙을 안기지만 다른 한편에선 잠재력 가득한 미지의 해양 세계를 열어주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은 위기든 기회든 해법을 찾을 실마리는 바로 현장에 있다는 점이다. 극지연구소의 설립 취지도 바로 그것이다.
만약 북극의 융빙 속도가 지금 추세를 유지한다면 차세대 연구선은 취항 첫해인 2030년 하절기를 이용해 북극점 도달도 가능하다. 빙하가 줄어드는 현실은 안타깝지만 북극 선점 경쟁에선 한국이 우위를 점하게 된다는 의미다. 가령 향후 북극해 수산자원 개발이 본격화돼 국가별 어업쿼터가 배정된다면 해양생태계에 관한 과학적 기여도가 기준지표로 사용될 것이다. 다른 천연자원 분야에서도 원칙은 마찬가지다.
차세대 쇄빙연구선은 이런 연구 성과를 담보할 다양한 성능을 갖추게 된다. 쇄빙선 분야에서 독보적 기술력을 보유한 한화오션은 극지연구소의 활동 목표에 부합하는 미래형 연구선 모델을 제시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이달 중 본계약이 체결되면 곧바로 설계에 착수해 2029년 말까지 건조를 완료할 계획이다.
새 연구선 규모는 총 1만 6560톤으로 아라온의 2배가 넘는다. 양방향 쇄빙이 가능하고 영하 45℃에서도 가동되는 내한 성능을 갖춘다. 극지방 환경보호를 위해 LNG이중연료 전기추진체계가 탑재되고, 선형최적화 기술을 적용해 저항을 줄이면서 항속거리도 크게 늘어나게 된다.
쇄빙력 향상과 쌍벽을 이룰 핵심 성능은 첨단 연구시스템이다. 심해 무인탐사장비(ROV)와 문풀(Moon Pool)이 대표 설비다. ROV는 해양생태계 수중 조사를 위해 원격 조종되는 잠수정으로 선박 중앙에 뚫린 문풀을 통해 오르내리게 된다. 선미에서 크레인을 이용하는 재래식 진·회수 방식과 비교하면 안정성과 효율성이 훨씬 뛰어나다. 이외에 수산자원 표본채취를 위한 트롤과 기상조사용 드론 등도 중요한 장비들이다.
특히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최고급 여객선 수준의 편의시설이다. 온통 눈과 얼음뿐인 극한환경에서 장기 근무하는 연구원들에겐 선박 자체가 24시간 생활 터전이다. 개인 건강관리를 위해 침실과 식당은 물론 휴식과 여가 활용 공간까지 세심하게 설계된다.
차세대 쇄빙연구선은 여러 측면에서 극지 연구 수준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게 된다. 해빙 상황과 수온 상승 등 북극발 기후변화에 대한 중장기 예측 능력부터 대폭 향상될 것이다. 해양생태계 및 수산자원 탐사에서 북극 신항로 개척에 이르는 수많은 연구과제도 새 연구선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다.
한화오션에게도 이번 연구선 프로젝트는 새로운 전환점이 된다. 북극 개발이 지구촌 핫이슈로 부상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형태의 쇄빙선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다. 특히 미국은 그린란드 합병이나 알래스카 가스전 개발 등 북극 전략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조선 역량이 부족해 한국과 손잡길 희망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산자부가 ‘고위도 연중 운항을 위한 PC(국제빙상등급) 2급 쇄빙선 개발’ 국책연구 과제를 한화오션에 맡겨 북극 사업 확대를 추진 중이다. 한화오션은 이미 대형 쇄빙LNG운반선 21척 건조 경험을 가진 해양솔루션 전문업체로 국내외 환경변화에 적극 대응할 전략을 마련해놓고 있다. 극지 개척을 넘어 해양과학기술 강국으로 인류 미래에 기여한다는 원대한 비전도 세워가고 있다.
북극과 남극은 여전히 태초의 신비를 가득 품고 있는 미지의 세계다. 그 춥고 적막한 빙하지대 위엔 오늘도 국가의 명예를 걸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의 끝에서 미래를 준비한다’라는 사명감으로 살아가는 극지연구요원들에게 차세대 쇄빙연구선이 보고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길 기대한다. 보이지 않는 그 노고와 헌신에 국민의 따뜻한 응원과 격려가 필요하다.
글/ 이동주 한화오션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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