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데몬 헌터스, 줄여서 ‘케데헌’으로 불리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가 단연 화제다. 이 애니메이션은 일본의 대표기업인 소니(SONY)가 제작해 미국 OTT기업 넷플릭스(Netflix)가 독점 공개, 전세계 41개국에서 1위 흥행을 달성한 작품이다.
한국을 배경으로 K-pop 아이돌이 주인공이고 K-pop과 유사하고 한국어 가사가 사용되는 OST가 특히 전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작품을 시청하며 한의사로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단연 루미가 목소리를 잃고 진료를 받는 장면이었다. 그 속의 한의사는 매우 우스꽝스럽게 진단을 하고 유명 스타와의 친분을 조작, 한약 대신 포도즙을 주는 등 코믹적인 요소가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부분을 치료하려면 전체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 대사는 단순한 대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황제내경’에서는 “상공치병(上工治病), 필치기본(必治其本)”이라 해 병의 뿌리를 다스리는 것이 최고의 의술이라 했고 ‘동의보감’에서도 “병은 비록 하나이나 근본은 반드시 여러 가지에 연유한다(病雖一而本必多端)”고 했다.
즉, 하나의 증상이라도 그것을 낳은 배경에는 신체 전체의 조화와 기운의 흐름, 정신적 요소가 모두 연결돼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이러한 한의학의 전통적인 진단 접근은 ‘전체를 보고 원인을 추론한 뒤 치료한다’는 의학철학에서 출발한다. 이는 단일 장기나 특정 수치에 집중하는 현대의학과는 본질적으로 관점이 다르다.
작품 속에서 루미의 음성 상실은 단순한 후두의 문제로 처리되지 않는다. 오히려 심리적인 벽, 감정적 트라우마라는 배경이 강조되며 한의사는 이를 간파하고 내면의 균형을 회복하려 한다. 이는 실제 임상에서도 자주 마주하게 되는 장면이다.
예를 들어 스트레스가 장 기능 저하로, 감정 억제가 생리불순으로 이어지는 사례들은 결코 드물지 않다. 그러한 연쇄적 반응을 하나의 증상으로만 진단하고 억제하면 반복과 재발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반면, 한의학은 마음과 몸의 연결, 장부 간의 상호작용, 기혈의 순환을 모두 고려해 ‘전인적 치유’를 도모한다.
또 작품 속 한의사가 처방한 ‘포도즙’은 의도한 연출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흥미로운 설정이다. 허해진 폐를 보익하고 진액을 보충해 기침을 멎게 한다는 의미로 보면 이는 ‘본초강목’ 등에서 포도를 생진지갈(生津止渴)하는 약재로 본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물론 대중 콘텐츠라는 특성상 유쾌한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지만 그 속에서도 한의학의 철학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점은 주목할 만하다. 실제로 이 캐릭터에 대해 많은 시청자들이 “엉뚱하지만 핵심을 찌르는 고수”라는 평가를 내렸고 한국한의사협회 역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의학은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을 대하는 관점 자체가 흔들리지 않는다. 증상이 아니라 원인을 본다는 관점, 신체와 정신의 연계를 중시한다는 철학, 개개인의 체질과 환경을 고려한다는 맞춤형 접근은 오히려 현대의학이 놓치기 쉬운 영역을 보완하고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짧은 장면은 그 한 단면을 잘 보여준 사례였다. 단순한 오락 콘텐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의학이 가진 깊이와 조화의 힘이 문화 콘텐츠 안에서 어떻게 살아날 수 있는지를 증명해 보였다. 이러한 방식의 노출은 한의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돕는 동시에 전통 의학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 있고 유효하다는 점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된다.
앞으로도 한의학이 더 다양한 영역과 조우하며, 인간을 전체로 바라보는 이 치유의 철학이 더 많은 이들에게 다가가기를 기대한다.
글/ 이한별 한의사·구로디지털단지 고은경희한의원 대표원장(lhb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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