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F1 더 무비’ (쏙) Led Zeppelin ‘Whole Lotta Love’
노을은 빛나는 낮의 끝이 아니야. 끝내주는 밤의 시작이지. ⓒ
조지프 코신스키라 쓰고 아재들의 희망이라 읽을래. ‘탑건: 매버릭’(2022년)에서 환갑 앞둔 매버릭(톰 크루즈)을, ‘F1 더 무비’에서 환갑의 소니(브래드 피트)를 영웅으로 만들어버린 연출가. 부장급 ‘꼰대들’의 억지스러운 백의종군을 멋진 6교시 수업 같은 걸로 포장해 버린 코신스키 감독은 이제 좋은 연출가를 넘어 아재들의 영웅으로 추앙받아야 마땅해. (물론 크루즈와 피트의 여전한 미모도 한몫했겠지. 세상이란….)
코신스키 감독은 음악을 고르는 귀도 좋은 것 같아. 장편 데뷔작 ‘트론: 새로운 시작’(2010년)에서 다프트 펑크에게 작곡(과 카메오 출연)을 일임하더니, 차기작 ‘오블리비언’(2013년)에는 M83의 앙토니 공잘레스에게 스코어를 맡겼잖아.
핀볼은 중력과 한판 붙는 게임이지. 모든 건 떨어지려 해. 의지가 없다면 말이야. ⓒ
‘F1 더 무비’에서는 첫 장면부터 ‘아재력’과 ‘음악력’을 동시에 뿜어내더라고. 중년의 레이서 소니가 데이토나의 첫 경기에 나서는 내내 영국 록 밴드 레드 제플린의 ‘Whole Lotta Love’가 울려 퍼졌어. 지미 페이지(기타), 존 폴 존스(베이스기타), 존 보넘(드럼)의 연주와 로버트 플랜트의 보컬은 경주용 자동차의 굉음과 함께 영화관 스피커를 거의 찢을 기세였지. 장면, 장면에서 철컹철컹 맞물리는 음향과 화면의 앙상블은 관객의 호르몬 체계를 초장부터 아드레날린 러시로 망가뜨리려는 괴물 같았지, 뭐야.
의욕만 앞서는 애송이. 그건 과거와 현재의 당신이기도 해. ⓒ
왜 ‘Whole Lotta Love’였을까. 일단은 청각적으로 완벽했어. 이 곡은 듣기만 해도 레이싱 같아. 왼쪽과 오른쪽 스피커를 오가며 미끄러지는 음향 효과부터가 그렇지. 테레민, 전기기타, 스튜디오 패닝(panning)으로 만들어 낸 환각적 노이즈 말이야.
브레이크다운(breakdown) 부분들도 절묘해. 이를테면 문득 전기기타의 야단법석이 잦아들고 존 보넘의 드럼 심벌과 하이햇이 라틴 타악기들과 함께 동굴 속처럼 울려 퍼지는 부분. 거기 더해지는 로버트 플랜트의 교성과 기타 노이즈…. 보랏빛 안개 속 모닝콜처럼, 스네어 드럼 연타로 다시 깨어나는 리프까지.
하긴, 이 정도 비주얼이면 중력도 제 할 일 다 못한 거지. ⓒ
단속적이고 몽환적인 로큰롤 강장제 ‘Whole Lotta Love’를 영상과 교차시키면서 코신스키와 편집을 맡은 스티븐 미리오네(‘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트래픽’)는 얼마나 짜릿했을까. 어쩌면 생애 최고의 퍼즐 게임을 앞에 둔 아이처럼 볼이 다 빨개졌을지도 모르지.
‘Whole Lotta Love’는 이야기의 맥락을 놓고 봐도 준수한 선택이었어. 이 곡은 1969년, 레드제플린 2집의 첫 곡으로 세상에 나왔지. 레이서로서 1990년대에 전성기를 보낸 소니는 아마 록 마니아였을 거야. 에어팟 맥스로 여전히 레드 제플린의 곡을 들으면서 워밍업하는 그를 봐봐. 하지만 1969년에 발표된 ‘Whole Lotta Love’는 소니의 나이를 유추해 봐도 동시대의 곡은 아닐 거야. 아마 부친이나 형이 좋아해서 자신도 절로 좋아하게 된 곡일지도 모르지.
‘부장님,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
그래. 소니는 자신도 레드 제플린처럼, ‘Whole Lotta Love’처럼 오랫동안 기억되는 클래식이 되고 싶었을 거야. 그러지 못했지만….
그러다 재기에 도전하고 파트너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20대 슈퍼 루키 레이서 조슈아 피어스(댐슨 이드리스 분)를 만나게 되지. 두 사람은 급속도로 견원지간이 되지만 놀랍도록 닮은 점이 많지. 심지어 열세 살에 부친을 여의었다는 점까지도.
어른으로 대해주길 바라는 피어스의 바람과 달리 ‘꼰대’ 소니는 그를 JP란 애칭으로 부르려고 하지. 마치 아버지가 꼬맹이 아들을 부르듯이 말이야.
오늘부터 몸 만들래. (얼굴은 못 만들어.) ⓒ
록, 힙합, 발라드가 교차하는 이 영화의 수록곡들을 들으면서 어떤 음악의 부재도 상상해보게 되더라고. 이를테면 1990년대의 소니가 좋아했을 동시대의 록. 너바나나 앨리스 인 체인스의 그런지 사운드 같은 것들 말이야. 굳이 그런 곡을 안 넣은 데는 또 ‘아재들의 희망’ 코신스키 감독만의 이유가 또 있겠지.
그래도 하나만 더 상상해 버렸어. 마지막 경기에서 수미쌍관으로 또 다른 레드 제플린의 노래가 나왔으면 하고 말이야. 이를테면, 음…. ‘The Song Remains the Same’(1973년 앨범 ‘Houses of the Holy’ 수록)은 어떨까?
캘리포니아 해변에서도, 인도의 캘커타, 하와이 호놀룰루에서도 세월과 상관없이 강물처럼 유유히 흐르는, 변하지 않는 노래처럼. 클래식이 된 자신을 축하하는 노래 말이야.
좋은 아재는 결코 나이 들지 않아. 클래식이 될 뿐이지. 그리고 그 안에는 아이가 하나 있어. 변하지 않는 노래처럼, 자라지 않는 뜨거운 심장 하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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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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