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로 지정된 두 반가사유상이 나란히 섰습니다. 어둡고 고요한 ‘사유의 방’은 우주의 확장을 지나 두 점의 반가사유상의 에너지로 가득 찬 평안의 공간으로 이어집니다. 1미터가 채 되지 않는 청동상에 어떻게 이런 아우라를 집어넣었을까요.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는 사유의 고통을 느꼈다면 이 반가사유상 앞에서는 번민과 깨달음의 교차점에 도달한 듯한 평화와 평안의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사유의 방ⓒ저자 제공
사유는 나를 알기 위해 하는 줄 알았는데 이 ‘사유의 방’ 부제는 ‘Time to lose yourself’. ‘나를 잃는 시간’이네요. 석가모니는 인생을 ‘고’라고 하였고 번민은 평생의 업이었는데 ‘Lose yourself’라는 화두를 품고 반가사유상 앞에 서니 괴로움이 덜어지는 것도 같습니다. 사유가 무엇인지 새겨보게 됩니다.
‘사유의 방’은 원오원 아키텍츠가 디자인했습니다. 방 입구에서 방의 부제를 글로 읽고 그 화두를 입으로 되뇌며 미디어 아트가 흐르는 어둡고 좁은 통로를 걸어봅니다. 복도 끝에서 오른편으로 꺾어 돌면 길쭉하고 붉은 공간. 기울어진 벽과 바닥, 벽의 질감, 천장, 반가사유상의 위치와 높이, 공기와 소리를 느낄 수 있습니다.
기울어진 벽의 끝에 기대어 바라보다 조금씩 앞으로 가 봅니다. 단상의 바로 아래에서 반가사유상을 올려보다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반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탑돌이를 하듯 돌아봅니다. 이유 없이 두 반가사유상의 뒤에 서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유물의 뒤를 보여주는 것, 해외에서는 조각을 이렇게 전시하는데 한국에서는 우리 유물의 뒷모습을 바라볼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다시 두 반가사유상 앞에 서서 뒷걸음질치며 멀어집니다. ‘사유의 방’은 직선이 없는 공간입니다. 단 두 점의 작품을 위해 이 공간을 할애한 데에는, 넓찍하다기보다는 길쭉한 공간을 만든 데에는 기획의 의도가 있겠지요. 내게 주어진 공간을 100% 사용하며 공간 안에 담긴 콘텐츠와 맥락을 누려보시길 바랍니다.
잘 기획된 공간은 단 한두 점의 작품만으로 오랜 시간 머물 수 있게 합니다. 사진 촬영이 금지여도 석굴의 선 하나하나를 따라가거나 그림을 그려가며 몇 시간씩 머물렀던 석굴암에서의 기억이 소환됩니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걸 보면, 단 한점의 유물이라도 가슴속에 남기자 했던 국립중앙박물관의 의도가 적중했네요. 고마운 일입니다.
그런 ‘사유의 방’이 루브르의 모나리자 방처럼 북새통을 이룹니다. 원래도 주말엔 관람객이 많았는데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으로 외국인 관광객과 내국인 관람객까지 수직 상승했습니다. 오픈런에도 주차장 웨이팅이 끝이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좋아서 용산구로 이사까지 한 사람입니다. 한동안 조용한 ‘사유의 방’은 없겠구나 섭섭하다가도 내심 뿌듯합니다. 이 좋은 것을 나만 볼 수 없어 손님들이 올 때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 사유의 방부터 보여줬었거든요. 이곳이 국립중앙박물관의 백미라고 소개하면서요. 이 공간을 안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걸? 자신만만한 날들이었습니다. 나만 아는 멋진 동네 맛집을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것처럼. 가게가 인스타 핫플이 되어버렸지만 섭섭함은 잠시,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 서운함을 달래봅니다. 사유의 방이 오픈했을 때부터 많이 드나들었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그 고즈넉한 사유의 시간을 즐기지 못한 채 북새통만 보고 돌아가신 분들에겐 유감이네요.
멋진 곳은 가장 먼저 가야 해요 그게 남는 겁니다. 한국엔 그런 곳이 많구요. 앞으로 이 칼럼을 통해 하나씩 다정히 소개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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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 Team8 Partners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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