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뇌-컴퓨터 인터페이스가 여는 내일

유진상 기자 (yjs@dailian.co.kr)

입력 2025.09.06 15:56  수정 2025.09.06 15:56

최형일 숭실대 명예교수. ⓒ

만약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을 조작할 필요 없이, 단지 "뉴스를 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화면이 자연스럽게 켜진다면 어떨까? 손발이 불편한 환자가 팔다리를 움직이고자 하는 생각만으로 의족이 반응하는 모습 또한 상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현재 세계 각국의 연구실과 병원에서는 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바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Brain-Computer Interface) 기술이 있다.


뇌파, 신호등처럼 움직인다


우리 뇌는 수많은 신경세포(뉴런, neuron)가 연결된 신경망 구조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어떤 동작을 하거나 결정을 내릴 때, 신경세포들이 서로 전기 신호를 주고받으며 작동한다. 이는 마치 도시의 도로망에서 신호등들이 빨간불 신호와 파란불 신호를 주고받으며 차량 흐름을 제어하는 것과 비슷하다. 뇌 신경망에 특정한 전기 신호 패턴이 발생해 우리 몸을 움직이고 생각을 표현하게 된다. BCI는 이런 전기 신호 패턴을 읽어 기계가 이해할 수 있는 명령어로 변환하는 '번역기'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사람이 "왼쪽으로 움직이고 싶다"고 생각하면, 뇌에서 특정 전기 신호 패턴이 나타나고, 이를 기계가 포착해 '왼쪽 이동' 명령어로 바꾼다.


생각을 읽는 원리 – 뇌파의 패턴 해석


많은 사람들이 "정말 내 마음을 읽는 건가요?"라고 궁금해한다. 하지만 BCI는 사람의 속마음을 그대로 읽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동작이나 결정을 떠올릴 때마다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전기 신호의 패턴을 해석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먼저, 뇌파(EEG) 신호를 머리에 부착한 전극을 통해 측정한다. 이는 녹음기로 음악을 녹음하듯, 뇌의 전기 신호를 채집하는 과정이다. 다음 단계에서는 잡음을 제거하고 의미 있는 파형만을 추려내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이는 시끄러운 카페에서 친구의 목소리만 집중해 듣는 것과 비슷하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컴퓨터가 특정 패턴을 미리 학습한 명령에 연결한다. 예를 들어, '오른손을 움직이려는 생각'이 일관된 파형을 보인다면, 그 파형이 감지될 때 커서가 자동으로 오른쪽으로 이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즉 '생각을 읽는다'는 것은 생각할 때 발생하는 전기적 흔적을 기계가 해석하여 작동한다는 의미다.


전 세계에서 펼쳐지는 BCI 연구


미국은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다. 일론 머스크의 스타트업 뉴럴링크(Neuralink)는 뇌에 매우 가느다란 전극을 심어, 환자가 머릿속으로 컴퓨터의 커서를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실제로 전신마비 환자 놀런드 아르보는 뉴럴링크 칩을 이식받은 뒤, 생각만으로 온라인 체스 게임을 즐기는 등 다양한 장치를 원격으로 제어하는 사례를 보였다. 미국 국방부도 이 기술의 군사적 활용을 연구 중이며, 언젠가는 조정사가 손이 아닌 의식만으로 전투기를 조종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유럽에서는 인간의 존엄성 회복을 강조하는 연구가 활발하다. 독일 연구진은 의사 표현이 막힌 루게릭병 환자가, '예', '아니요'라는 생각만으로 가족과 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수개월 혹은 수년간 말을 잃었던 환자가 다시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순간의 감동은 과학을 넘어선다. 스위스에서는 척수 손상 환자가 다시 걸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아시아에서도 다양한 도전이 이어진다. 중국은 인공지능과 BCI를 결합해 뇌 신호 패턴을 더 정밀하게 해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은 가상현실(VR)과 게임 산업과의 융합을 시도 중이다. 사용자가 머릿속으로 '앞으로 가라'는 생각을 하면 가상현실 속 아바타가 실제로 움직이는 시연은,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는다.


기술이 열어젖히는 문, 그리고 새로 생기는 질문들


이 기술의 발전으로 장애인은 의사소통과 움직임을 되찾고, 일반인에게도 더 편리한 삶이 열릴 수 있다. 언젠가는 스마트폰, 키보드, 마우스 없이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작동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사고 패턴이 고스란히 데이터화 된다면, 사생활과 개인정보는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을까? "오늘은 집중이 잘 안 되네" 같은 뇌의 상태까지 기계가 알아채는 시대에는 새로운 감시 사회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또한, 뇌에 삽입되는 첨단 임플란트의 가격이 고가라면, 일부만이 미래의 편의와 능력을 누리고 나머지는 소외되는 불평등도 심화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철학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내가 생각한 것"과 "기계가 해석한 것" 사이에 차이가 생긴다면, 어느 쪽의 의도가 더 정확할까? 인간의 자유의지가 기술적 처리과정에서 왜곡되지 않으려면 어떤 장치가 필요할까?


미래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20년 전만 해도, 주머니 속 작은 기계로 전 세계의 정보를 검색할 수 있으리라고 상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지금은 스마트폰 없는 하루를 보내기 힘들다. 마찬가지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역시 머지않아 우리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지 모른다. 오늘은 실험실 한쪽에서 조심스럽게 쓰이고 있지만, 내일은 우리가 아침에 커피를 내릴 때나 지하철에서 기사를 읽는 순간에도 자연스럽게 쓰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다음 질문을 함께 생각해 보자. "나는 기계와 직접 연결된 인간으로 살아갈 준비가 되었는가?" 그 답은 곧 우리 사회가 만들어갈 미래의 모습이 될 것이다.



<약력>

최형일 숭실대학교 명예교수

(전) 숭실대 IT대학 학장

(전) 숭실대 정보과학 대학원 원장

(전) 컴퓨터사용자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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