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신속 보호·불공정 경쟁 차단 기대”
산업계 “과도한 보호, 시장 경쟁·혁신 저해”
베이커리·장류 규제 대표적…소비자 선택권도 축소
식품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소상공인 보호를 내세운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요건 완화가 추진되면서, 베이커리·장류처럼 대기업 진입이 막힌 업종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업계는 과도한 보호가 산업 성장 동력을 떨어뜨릴수 있음을 우려하는 눈치다.
1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더불어민주당 송재봉 의원은 소상공인단체가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여부와 무관하게 직접 생계형 적합업종을 신청할 수 있도록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법은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당 업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됐거나 그 지정이 추진 중인 경우에만 소상공인단체의 신청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이 같은 규정이 현장의 시급한 보호 요청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았다. 대기업 진입으로 피해가 예상되는 업종이라 하더라도, 절차상 선행 요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신청조차 할 수 없어서다. 이에 제도 접근 문턱을 낮춰 보호가 시급한 업종에 대응 속도를 높이고자 했다.
소상공인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특종 업종 위기 상황에 보다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고, 대기업과의 불공정 경쟁으로부터 생계 기반을 지킬 수 있다는 점에서다. 절차 간소화로 보호 장치가 빨리 작동하면 시장에서 갑작스러운 대기업 진입에도 최소한의 방어막을 확보할 수 있다.
또, 기존 제도에서 느꼈던 ‘사각지대’가 줄어들면서 업계 스스로 권리를 지킬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도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부 소상공인단체는 이번 개정안이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제도 개선이라는 점에서 “실효성 있는 보호의 첫걸음”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반면 기업들은 우려가 크다. 생계형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대기업·중견기업의 신규 진입이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글로벌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국내 시장만 지나치게 보호하면 국내를 넘어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장기적으로 산업 전반의 혁신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소상공인 보호라는 명목 아래 생계형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사례가 무수히 많다. 생계형 적합업종은 한 번 지정되면 사실상 무기한 유지된다. 법적으로는 일정 기간마다 재심의를 거치도록 돼 있지만, 소상공인단체의 요구와 정치적 부담 탓에 해제 사례는 드물다.
현재 베이커리 업계는 출점이 가로 막힌 상황이다. 대기업 베이커리 프랜차이즈의 출점 규제는 지난 2013년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시작됐다. 이후 제과점업이 중소기업적합업종에서 제외된 2019년부터는 제과협회와 민간 합의를 통해 동일한 규제를 받고 있다.
이 규제는 시장 상황과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지난해 대한제과협회와 대형 제과·제빵 프랜차이즈, 동반성장위는 제과점업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약을 5년 연장하기로 했다. 이에 2029년 8월 6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지난해 규제가 일부 완화되긴 했다. 과거 대기업 프랜차이즈는 동네빵집 반경 500m 이내에 매장을 열 수 없고, 신규 점포는 전년 말 점포 수의 2% 이내로 출점이 가능했으나, 수도권에 한해 400m, 신규 점포 수는 5% 이내 범위로 확대됐다. 다만 실효성엔 의문보호가 붙는다.
베이커리 업계는 여전히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10년간 국내 시장이 급변하면서 동네 빵집을 가지 않고도 집 근처에 있는 카페나 편의점에만 가도 빵을 구매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외국계 빵집을 비롯해, 곳곳을 파고든 동네 빵집까지 경쟁사가 크게 늘었다.
특히 최근 편의점이 양산빵 만들기에 집중하면서 위기는 더욱 높아졌다. 과거 양산빵은 맛없고 저렴한 빵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나 색다른 경험을 찾는 고객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으로 떠오르면서 편의점업체들은 ‘디저트’를 성공 방정식으로 점찍은 상황이다.
장류 역시 생계형적합업종에 지정된 대표 사례 중 하나로 손꼽힌다. 장류 제조업은 2020년 생계형 적합업종이 됐고, 올 초 재지정했다. 지난 1월 중소벤처기업부는 ‘간장·된장·고추장·청국장 제조업’ 4개 업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재지정했다. 지정기간은 오는 2030년 1월31일까지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간장·된장·고추장 제품의 출하 허용량의 총량 범위 안에서 생산방식 전환을 허용하기로 했다. 대기업의 신규 출하허용량(2025∼2030년) 총합은 기존 허용량(2020∼2024년)보다 10%가량 감소할 예정이다.
문제는 베이커리업계와 장류업계처럼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장기간 묶이면 시장 경쟁이 위축되는 부작용이 뒤따른다는 점이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신규 진입이 사실상 차단되면서 가격·품질·서비스 혁신이 정체되고, 소비자 선택권도 좁아질 수 있다.
장류의 경우 올해 들어 생계형적합업종으로 재지정하면서 소스류·혼합장 등 신제품 개발·수출 등에 대해서는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하지만 국내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질 경우 해외에서의 선순환적 재투자도 불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우려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보호 효과 역시 제한적이다. 소비 트렌드가 편의점·카페·외국계 브랜드로 빠르게 이동하는 상황에서 규제가 기계적으로 연장되면 소상공인 보호라는 취지도 무색해진다. 업계에서는 투자와 연구개발 동력이 떨어져 산업 경쟁력이 약화되고, 규제를 둘러싼 이해관계 갈등만 장기화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소상공인 보호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규제가 장기간 고착화되면 결국 시장 활력만 떨어뜨릴 수 있다”며 “업계 경쟁력을 높이고 소비자 후생을 지키는 방향으로 제도가 운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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